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일으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한달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주요 언론들은 매일 흑인 인종차별 사건과 이슈들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이제껏 들어본 적도 없는 ‘준틴스 데이’(Juneteenth day, 노예해방일 6월19일)의 공휴일 지정이 논의되는가 하면, 트럼프가 유세지로 택한 오클라호마 털사는 ‘블랙 월스트릿’ 인종학살 흑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연방의사당에서는 남부연합 출신 하원의장 4명의 초상화가 제거됐고, 미군의 남부연합기 사용이 금지됐으며, 곳곳에서 남부군 장군들의 동상이 철거되거나 이름을 딴 거리명칭이 변경되고 있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는 조지 워싱턴의 동상이 끌어내려졌고, 뉴욕 자연사박물관 앞에 서있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동상과 뉴욕시청 내 토머스 제퍼슨 동상도 곧 철거될 운명이다. 바야흐로 건국 영웅들까지 심판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진행중이다.
그러면 이제는 좀 달라질까? 이번은 진짜인가? 인종차별은 종식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약간의 진전은 있겠지만 차별종식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본다.
올해는 미국에 노예가 수입된 지 401년이 되는 해다. 1619년 8월, 아프리카흑인 20명을 태운 네덜란드 선박이 영국령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닻을 내린 것이 미국 노예제도의 시작이다. 이것은 영국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하기 1년 전의 일이고, 미합중국이 독립을 선언하기 157년 전의 일이다. 노예제는 미국 역사보다도 뿌리가 깊다.
1808년 노예무역이 금지될 때까지 200년 동안 아프리카인 약 1,000만명이 미국에 노예로 팔려왔다. 미국에서 처음 인구조사를 실시한 게 1790년인데, 이때 남부 5개주의 노예인구가 전체의 25~42%에 달했다. 2019년 현재 흑인인구가 13.4%이니 당시 얼마나 노예가 많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역사에서 노예역사를 빼면 남는 것이 얼마 없다. 400년이라는 오랜 세월도 그렇고, 건국초기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던 광산과 목화밭의 노동력을 모두 노예들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빠른 시간에 경제 부국으로 올라선 것은 어마어마한 노예 노동력 착취 덕분이었다.
노예제는 1865년 남북전쟁 후 폐지됐지만 백인들이 흑인을 평등한 인간으로 대해줄 리는 만무했다. 1965년까지 100년 동안 ‘짐 크로법’ 아래 합법적인 차별이 자행됐다.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유색인을 분리하는 이 법은 흑인을 교육, 경제, 사회전반의 기회들에서 원천봉쇄했다. 흔히 “흑인은 게으르고 야만적이며 지능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들먹이는 인종주의자들이 있지만 사실은 학교, 직업, 주거지, 대출 등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모든 선택에서 차별받고, 가난과 무지와 분노가 세대에 걸쳐 대물림한 악순환의 결과일 뿐이다.
미국에서 아시안 및 라티노에 대한 차별과 흑인차별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민 왔지만 이들은 노예로 끌려왔던 자들의 후손이다. 우리에겐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흑인들에게는 N워드의 욕을 내뱉는 것도 노예제가 남긴 유산이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흑인 대통령이 나왔어도 사라지지 않는 미국의 ‘원죄’가 낳은 고질병이다.
노예제가 아니라도, 원래 타인종에 대한 혐오는 원래 현생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다. 인류가 수백만년 진화해오는 동안 호모사피엔스는 비슷한 시기에 세계 여러 지역에서 진화한 다른 호모속 인간종들(네안데르탈렌시스, 에렉투스, 데니소반스 등)을 모두 멸종시키고 지구의 유일한 인류종이 되었다.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대량학살을 유발해 인종청소로 이어졌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3만년전 우리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이유, 지금도 피부색이나 종교, 이념의 작은 차이만으로도 곧잘 다른 집단을 몰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세기에만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해 보스니아, 캄보디아, 아르메니아, 르완다에서 자행된 인종말살 사건을 우리는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차별한다. 인종과 민족은 물론이고 성별, 종교, 빈부, 가문, 외모, 학력, 출신지, 직업, 성적취향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건들로 차별한다. 다른 집단에 대한 이질감과 거부감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차별본능’을 제어하고 평등과 화합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노력과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대대적인 수술과 치유의 노력이 뒤따라야한다. 그러한 의지와 노력도 자칫 느슨해지거나 위기가 닥쳐오면 차별본능이 뛰쳐나와 수포로 돌아가곤 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인종차별이 기승을 부리고, 코로나 사태 이후 아시안 증오범죄가 급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끊임없는 교육과 법적 장치가 필요한 이유, 경찰개혁은 물론 혐오범죄에 대한 엄중대처가 빨리 이루어져야하는 이유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8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일단 11월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뒤집어 놓으면 훨씬 더 좋은 세상이 올 것 입니다..교육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는 일세들의 꿈이 이루워질때 점점 해결되지 않을까요?
정숙희위원 덕분에 또 하나 배웁니다. 코로나 사태, 경제 위기, 인종 갈등등 삼중고를 당하고 우리들에게 인종 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케 하는 컬럼입니다. 위기 속에서 사람 본성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우리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지 아니면 “본색”을 드러내고 더 분열할지 잘 지켜볼 수 밖에 없을듯 싶군요..
이런 분들이 논설워원으로 계셔서 그래도 미주 한국일보는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의 부족이 문제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 합니다.
원죄? 몇백년 동안 보상도 지속적으로 많이 했는데도 노력하지 않는 쿤타킨테가 문제인 곳이다. 극 소수의 잘못된 경찰 때문에 경찰개혁 하자? 깜깜한 밤에 강도 강간하려 덤벼드는 대다수의 흑인들은 개혁대상이 아닌가? 누굴 부를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