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별명이 그 사람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듯이 나라의 성격을 잘 말해 주는 별명을 가진 국가들이 있다. 인도의 별명은 ‘인크레더블 인도(Incredible India)’이다. 54개국 전체 아프리카 인구보다 많은 엄청난 인구와 수십 개의 민족, 언어, 종교, 다양한 기후와 생태계를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믿을 수 없을만큼 굉장한 국가라는 의미와 동시에 신뢰하기 힘든 나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인도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이 애먹는 이유 중의 가장 중요한 점이 계약이 잘 이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정부나 시장과 계약을 끝내고 공장을 지으려고 시공을 해도 마을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면 공사는 기한없이 중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싱가포르는 ‘파인 칸추리(Fine Country)’라는 별명이 있다. Fine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좋다는 뜻과 함께 작다는 것과 벌금이라는 의미가 있다. 싱가포르는 살기 좋은 작은 국가이면서 법을 어기면 벌이 상당하다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별명이다.
한국을 나타내는 유명한 별명 중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역동적인 한국(Dynamic Korea)’일 것이다. 아마도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가진 나라는 한국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유럽이나 중남미, 아프리카를 여행해 보면 이삼십 년이 지나도 큰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타국에 오래 살다가 한국을 십년에 한번 정도 찾아 간 경험을 가진 분이라면 정말로 강산이 변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단순히 외형적인 것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한국의 역동적인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태극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국기는 세계 200개 국가의 국기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아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태극기의 모양을 살펴보며 그 상징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국제적인 상황을 미리 예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극을 둘러싼 사괘는 태극기가 탄생한 19세기 말 이후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 등 한국의 정세를 좌우한 4대 강국을 의미하고 가운데 태극은 남북한으로 분단된 한반도로 볼 수도 있다. 경이롭게도 해방후 남북으로 나뉘었다가 625전쟁 이후 38선을 중심으로 동쪽은 북으로 올라가고 서쪽은 반대로 남으로 내려와서 절묘하게 태극무늬를 닮게 된 것이 반세기전에 한반도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태극이라는 것은 동양철학의 중심사상인 음과 양이 회전하는 모양이다 태극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마치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착시를 경험하게 된다. 2차원적인 국기에서 이런 동적인 모습을 나타낸 국기는 태극기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은 1948년에 처음으로 헌법을 제정한 후 다섯 번의 개헌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1987년에 5년 단임대통령제로 개헌했다. 이후 33년동안 7명의 대통령을 선출했는데 약속이나 한 듯 매 10년마다 보수와 진보의 정권이 바뀌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선거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큰 혼란없이 정치 경제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태극의 빨강과 파랑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처럼 보수와 진보가 과거 조선의 훈구와 사림 세력이 정권을 놓고 머리 터지게 싸운 역사에서 보듯이 선명경쟁을 했던 전통이 있고 중도가 자리잡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선거결과에 승복하는 전통을 쌓은 것은 또 하나의 우리의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몇 해 전에 한 지인과 한국의 정치가 소란스러운 것이 대화와 타협의 전통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그의 답이 타협이라는 것이 마치 야합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좋지 않게 느껴진다고 한 적이 있다. 필자도 정의에 불타던 청년 시절에 정의라고 생각했던 사상에 충성하지 않고 진영을 이탈하는 사람을 변절자로 비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정의라는 것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에 따라 정의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바나에서 사슴이 사자의 공격을 피해 도망에 성공하는 ‘동물의 왕국’ 다큐를 보면서 그것이 사슴의 입장에서는 정의일 수 있지만 집에서 먹이를 기다리며 굶고 있는 새끼들을 위해 사냥하는 어미 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절대로 정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경제에서도 짚신장수와 우산장수를 동시에 만족시켜줄 수 있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익집단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것은 허구일 수밖에 없고 가장 잘된 정책은 양쪽이 모두 불만족한 상태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인 제시 잭슨의 명언 중 “새는 좌우의 양쪽 날개로 난다”는 것처럼 보수와 진보가 경쟁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반이다. 한쪽만이 진리이고 다른 쪽은 거짓이고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며 독선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진보세력이 과반을 훨씬 넘는 승리를 성취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보수세력은 국민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고 앞으로 정국은 진보세력이 주축이 되어 진행될 것이다. 정치를 계속해서 주도하게 된 진보진영은 자만하지 말고 40퍼센트가 넘는 표를 준 보수진영의 의견을 존중해서 국정을 운영하기 바라고 보수진영은 한번의 선거 패배에 절망하지 않고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지도자를 키우고,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이 있는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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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 재미한국학교 워싱턴 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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