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이란 책이 있다. 어느 날 지구상에서 인류가 싹 사라져버리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를 상상해본 환경과학 넌픽션이다. 언론인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이 책에 따르면 인류가 멸종했을 때 도시가 숲으로 변하고, 건물과 교량이 붕괴되고, 농작물과 식물이 야생잡목으로 돌아가고, 멸종위기였던 동물들이 번성까지는 불과 100년도 걸리지 않는다.
저자는 과거에 인간이 살았으나 지금은 전쟁과 재난 등의 이유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한반도 DMZ, 체르노빌, 터키와 키프로스 유적지, 폴란드 원시림, 아프리카, 아마존 등)을 찾아다니며 인간이 없어지면 자연이 어떻게 스스로를 복원하는지, 상처 입은 지구의 경이로운 자기치유의 모습들을 그려 보인다.
이 책의 내용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변화의 초기진행을 살짝이나마 일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이다. 팬데믹에 놀란 사람들이 활동을 멈추고 집에 들어박히자 지구가 깨끗해지고, 조용해지고, 건강해지고 있다. 코비드-19 셧다운 한달반 만에 세계 곳곳에서 감지된 놀라운 변화다.
많은 대도시에서 스모그가 없어져 하늘이 청명해졌다. 차량 운행이 줄고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한 결과다. 이산화질소 수치가 가장 높은 ‘세계의 굴뚝’ 중국은 물론 ‘가스실’로 불릴 만큼 대기오염이 심각했던 인도 하늘도 푸른빛을 되찾았다.
사람들이 불필요한 이동을 멈추자 땅의 진동도 줄었다. 자동차, 버스, 트럭, 지하철, 기차, 비행기가 멈춰서고 일상생활에서 만들어내는 소음이 줄었기 때문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진 후 인간 활동으로 인한 지진소음(seismic noise)이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벨기에 왕립천문대 과학자들에 따르면 수도 브뤼셀의 지진진동 주파수가 30~50% 줄었고, 네팔의 학자들과 프랑스 파리 지구물리학연구소, LA의 칼텍 대학도 지진활동이 급격하게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자 야생동물들이 나오고 있다. 시카고 도심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근처에서 코요테가 돌아다니는 모습이 목격됐고, 애리조나의 한 쇼핑센터에서는 멧돼지 비슷한 페커리 떼가 모여있는 모습이 찍혔다. 칠레의 산티아고에서는 퓨마가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호주 도심에도 캥거루가 출몰하며,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공원에는 한 무리의 자칼 떼가 나타나기도 했다. 인간과 동물의 구역이 원래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풍경들이다.
매일 수많은 사람과 차량에 몸살을 앓던 LA의 그리피스 팍은 지금 야생동물의 세상이 됐다. 인적 끊긴 도로에 야생칠면조가 나타나고 산사자, 토끼, 너구리, 사슴, 오파섬이 불쑥불쑥 먹이 사냥을 다닌다는 소식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요즘 역사상 전례없는 평화와 휴식을 만끽하고 있다. 일년에 460만명, 4월 한달에만 30여만명이나 방문하는 이 서부지역 최고 인기 국립공원은 지금 너무 조용해서 귀가 다 먹먹하다고 공원관리자들이 전한다. 차로 가득했던 도로, 사람들이 줄을 잇던 트레일, 텐트가 빼곡했던 캠프그라운드가 3월20일 폐쇄된 후 텅 비어버리자 원래 이곳 거주민들이던 곰, 사슴, 밥캣, 카요티들이 빌리지, 캐빈, 주차장에서 어슬렁대며 노닌다는 소식이다. 공원은 이전에도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폐쇄된 적이 네번 있었지만 이렇게 오래 인적이 끊긴 적은 없었기 때문에 변화가 더 극적인 모양이다.
지난 4월22일은 ‘지구의 날’ 50주년이었다. 그리고 4월18일부터 26일까지는 연례 ‘국립공원 주간’(National Park Week)이다. 매년 이 주간에는 미국의 419개 내셔널 파크 및 모뉴먼트들이 무료 개방되고 여러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모두 문을 닫은 올해는 많은 국립공원들이 집에서 컴퓨터로 경험할 수 있는 버추얼 웹캠 투어나 자연의 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사운드 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를 멈춰 세운 코로나 사태는 미증유의 재난이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깊은 숨을 쉬고 휴식을 취하는 기회다. 또 인간들은 문명이란 이름으로 우리가 그동안 이 땅과 하늘에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위기는 하루 빨리 지나가야겠지만 앞으로 우리의 집, 지구를 소중하게 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2008)에서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가 하는 말이 있다. “지구가 멸망하면 인간도 사라지지만 인간이 사라지면 지구는 살 수 있다” 지구와 인간이 함께 오래도록 살 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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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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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때문에 지구가 잠시나마 쉴 수 있어 다행이다. 요즘 하루중 제일 중요한 나의 일과는 1시간의 산책.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와 산보하느라 서로(?)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맑은 공기가 반갑고 고맙다. 코로나때문에 수지맞은 우리집 강아지를 비롯, 수 많은 동물들이 모처럼 맞이한 망중한을 잘 즐겼으면 좋겠다~
원도사님도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계시잖아요. 그러면서도 너무 남탓만 하시는것아닌가요? 맞는말도 여러번하면 잔소리로 들리는겁니다....
사람도 동물도 자연도 같이 각자의 자유를 누릴때 모두는 즐겁고 행복하지만 자기만 살겠다는 인간의 욕심이 용망이 멸망을 불행을 만드는 걸 지금 보고 겪고있는걸 알수있군요, 그런데도 아직도 남탓으로 돌리는 자들이 있다는건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것이며 그 런 이들이 있는한 장래는 밝지만은 않을거라는 생각이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