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나 하면서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본 적이 있다. ‘카페 하나 하면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직업의 실상은 잘 모르는 채 막연한 동경에서 비롯된 바람이다.
그러나 갤러리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화랑일이라는게 겉보기만 우아하지 업무의 반 이상은 ‘노동’이라고 한다. 작가들 만나서 그림 감상하고 팔기만 하는게 아니라, 벽에 못 박고 그림 걸고 작품 설치하는 일은 기본이고, 작품 패킹‧선적‧운송 등 중노동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작품들은 맞춤 제작된 크레이트에 담겨 운송되는데, 경비도 경비지만 넣고 꺼내고 닦고 설치하기가 힘들어서 직원을 뽑을 때는 젊고 힘 좋은 사람을 선호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작년에 LA 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한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던 안영일 화백은 주류화단이 작품 운송에 얼마나 만전을 기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랐던 경험이 연방국무부의 ‘미술대사’로 선정됐을 때라고 자서전(‘오늘도 그림이 내게로 온다’)에서 쓰고 있다. 미술대사는 해외 미국대사관에 미국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문화외교를 겸하는 프로그램. 안 화백은 2002년부터 4년동안 오스트리아 빈의 미대사관에 작품 두점이 걸린 적이 있는데 그때의 운송작전이 기록영화로 남겨도 될만큼 대단했다고 한다.
작품 2점을 실어가려고 온도와 습도 조절장치가 완비된 초대형 트럭이 동부 끝에서부터 서부 끝까지 며칠동안 대륙횡단하여 스튜디오 앞까지 왔다. 거기서 내린 직원들은 수많은 도구를 갖고 들어와 작품을 꼼꼼하고 완벽하게 패킹한 다음 다시 대륙을 건너 워싱턴 DC로 가져갔다. 거기서 패킹을 풀고 큐레이터의 검사를 받은 작품은 또다시 완벽포장을 하여 비행기로 빈의 대사관으로 보내졌으며, 4년 후 정확히 똑같은 과정을 거쳐 돌아왔다고 한다.
작품 운송의 극단은 2012년 라크마의 ‘공중의 뜬 돌덩어리’(Levitated Mass) 수송작전일 것이다. 대지예술가 마이클 하이저가 리버사이드의 채석장에서 찾아낸 340톤의 화강암을 도심의 뮤지엄으로 옮겨오는 일은 남가주 전체가 들썩거린 큰 소동이고 화제였다.
바퀴가 196개나 달린 특수제작 운송차량이 밤에만 시속 7마일의 속도로 22개 도시를 거쳐 106마일을 지나오는 동안 길거리에 서있던 수많은 나무를 잘라냈고, 불법주차된 차량들이 토잉됐으며, 신호등을 떼내야 했던 곳도 적지 않다. 11일 만에 한인타운 웨스턴 길에 도착하여 새벽 1시 넘어 윌셔로 좌회전하던 순간을 직접 현장에서 지켜보았는데, 그때의 느낌은 고대 인류의 ‘영차영차’ 거석 옮기기가 이보다 더 유난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난 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보내온 보도자료가 눈길을 끌었다. 1층에 설치돼있던 리처드 세라의 작품 ‘시퀀스’(Sequence)가 2년간의 전시를 마치고 올 연말 해체되어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리처드 세라는 거대한 청동구조물이 유명한 작가로, 라크마의 BCAM 갤러리 1층의 한쪽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밴드’(Band)가 바로 그의 것이다. 녹슨 강철벽면을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굽어지고 휘어지고 열리고 닫히는 공간 속에서 자연과 건축물,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경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SFMOMA가 떠나보내는 ‘시퀀스’는 사실은 ‘밴드’와 함께 라크마에 전시됐던 작품이다. 2008년 BCAM이 개관했을 때 건물 1층 양쪽을 두 개의 청동건축물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밴드’는 라크마가 구입한 소장품이어서 지금까지 그 자리에 서있는 반면, 작가에게 대여받아 전시했던 ‘시퀀스’는 유명 콜렉터인 피셔 패밀리가 구입함에 따라 2011년 라크마를 떠났다. 이후 한동안 스탠포드 대학에 전시됐다가 2016년 SFMOMA의 확장개관을 기념하여 설치됐던 것이 이제 다시 스탠포드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라의 작품은 제작도 어렵지만 언제나 운송과 설치가 더 큰일이 되곤 한다. 무게가 보통 수백톤에 달하기 때문에 건물 밖 설치도 쉽지 않지만 건물 내부로 집어넣는 일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장비와 인력이 소요되는 것이다.
12개의 패널로 제작된 250톤의 ‘시퀀스’는 12개의 플랫베드 트럭으로 옮겨진 후 건물 꼭대기에 설치된 기중기를 사용해 조립되고 설치되었다. 라크마에 설치할 때는 ‘3일밖에’ 안 걸렸는데 해체하여 빼낼 때가 훨씬 더 힘들어서 10일 넘게 진땀을 뺐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SFMOMA는 이달 26일부터 해체작업을 시작한다. 내 눈 앞에 놓인 예술작품은 아티스트의 작업만이 아니라 운송과 설치라는 또 다른 작업의 결과라 해도 좋을 것이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