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만 개의 보름달만한 꽃들이 해를 향해 동쪽으로 일제히 도열한 것이…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우병은(76), 우정례(70) 씨 부부와 신휘재(67), 김영선(64) 씨 부부가 지난 9월4일부터 10월3일까지 29박30일간 미국 대륙 일주를 성공적으로 다녀왔다. 이들은 오하이오, 사우스다코다, 몬태나를 거쳐 서부의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LA를 지나 남부의 애리조나, 텍사스, 플로리다를 돌아 동부를 거쳐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이들의 대륙일주기를 소개한다.
■이리 호변에서 생각난 메기의 추억
교우인 신휘재 집사, 김영선 집사 내외가 몇 달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짜놓은 계획대로 우리 내외가 4일 오전 9시 버지니아 스털링 집을 나섰다.
메릴랜드를 지나고 펜실베이니아를 지나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이리(Erie) 호변에 이르러 한국 사람들이 많이 부르는 ‘메기의 추억’을 더듬어 봤다. 1976년 브라질에 이민 가서 미싱 2대 사놓고 자수를 놓았다. 이제 6살, 4살 된 아이들이 나가 놀지도 못하고 수놓은 걸 뒷정리하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처절했다.
아내는 “옛날에 패랭이 강둑에 병은이와 앉아서 놀던 곳 한강물 푸르게 선하다 병은아---.” ‘메기의 추억’을 개작해서 노래를 불렀다. 얼마나 힘들고 처절했으면 결혼하기 전 자주 만나던 패랭이 피던 한강물이 생각났을까!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편지로 알려 드렸더니 패랭이 씨를 보내 오셔서 40년째 우리 집 마당에서 어머니날 조금 지나 꽃을 피운다. 1987년, 미국에 오자마자 ‘메기의 추억’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뒤졌다. 물레방아가 있었을 토론토에서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고 클리블랜드에서 학교 선생으로 살다가 1년 만에 메기가 세상을 떠나 상심한 남편 존슨은 다시 토론토로 갔다고 한다.
신혼부부가 행복에 가득 차오고, 상처해서 슬프게 갔을 바닷가(5대호가 바다로 보여)를 나도 가슴을 저미며 돌아보고 톨레도(Toledo)에 있는 호텔에 가니 저녁 9시였다. 지금은 쇠락한 과거 산업중심지에 원자력 발전소에서 증기가 하늘로 치솟아 미국의 강한 근육질을 보았다.
■9만리 길을 언제 다돌까
다음날 8시에 서쪽으로 행군하는데 어제 12시간을 달려 시카고에도 한참 못 미친 톨레도에 왔다. 이 넓은 나라 한 바퀴가 9만 리나 되는 걸 언제 다 돌까?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그렇다고 같이 가는 신 집사에게 말도 못하고 운전하면서 찬송가를 부르면서 가다 보니 시간은 나도 모르게 흐르고 거리도 단축됐다.
시카고를 지나면서 고향친구에게 전화가 안돼 카톡 문자를 보내고 곡창지대를 계속 달리니 미시시피 강 맑은 물에 저녁놀이 황홀하다. 이로써 신 집사네와 우리는 지난 5월에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바다같이 넓은 중부 미시시피 강을 보고 신 집사가 짜놓은 계획대로 달리다 보면 뉴올리언스에서 남부 미시시피 강도 보리라.
■삼계탕과 들소들
호수가 많은 미네소타 주를 지나 사우스다코타에 와서 저녁으로 삼계탕을 해먹었다. 다음날 아침 보스턴에서 시작해서 시애틀에서 끝난다는 I-90번 도로에서 서쪽으로 달리는데 길은 직선이고 활주로 같았다. 허용 속도가 80마일이라서 이렇게 빨리 가도 차 그림자는 차 앞에만 있어 100마일로 달려도 그림자를 따라 잡지 못했다. 빛의 속도+알파가 아니고야 그림자를 따라 잡는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곡창지대는 남쪽에 있고 북쪽엔 산악지대로 알고 있는 한국인인 나는 사방을 둘러 봐도 산이 보이지 않는 곡창지대가 북쪽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적으면 수십 마리, 많으면 몇 백 마리의 소가 들에서 풀을 뜯으며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한국의 소들은 좁은 칸에 운동도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는 게 가련하게 떠오른다.
넓은 들에 곡식은 황금물결을 치니 저절로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며---” 찬송가가 흥얼흥얼 나왔다. 콩밭은 누렇고 수수밭은 빨갛고 멀리 보이는 밭은 황금모포를 펼친 것처럼 노래서 “저건 농사 잘 지은 콩밭이다” 하고 가까워 보니 해바라기 밭이었다. 수만 개의 보름달만한 꽃들이 해를 향해 동쪽으로 일제히 도열한 것이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 때 태양을 향해 도열한 인민군처럼 보였다.
■데블스 타워의 위용
꼭 보고 싶던 데블스 타워(Devil’s Tower)에 이르렀다. 260m나 된다는 엠파이어스테이트 같은 바위가 위용을 보여 우리 모두 놀라 입이 벌어져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근처에 보리, 밀이 황금 물결쳐서 가을보리가 다 있다는 걸 알았다.
하루에 두세 시간마다 서로 교대로 운전하다가 신 집사 얼굴이 사색이 돼서 개스 걱정을 하신다. 420마일을 달리는 개스 중 남아 있는 양은 60마일분인데 이걸 채우려면 왔던 길로 30마일을 되돌아가야 한단다. 아직도 9만 리나 남은 길을 가야 하는데 한 발자국도 되돌아간다는 게 온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사는 워싱턴 지역에서는 아무리 먼 교외에 나가도 10마일이나 20마일 가도 개스 스테이션이 있다. 인구가 희박한 이 곳은 100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어 태운 것만큼 그때그때 채워 넣고 용변도 봐야 한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다행히도 신 집사 부인이신 김 집사가 스마트 폰으로 알아내어 근처 산속에 찾아가 폐허에 하나 남은 듯한 개스 스테이션에서 넣었다.
들녘에 들양과 들소가 보였다. 각자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데 들소가 누워 있는 몸을 뒹굴더니 일어나서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 진기한 면을 봤다. 들소는 비스듬한 산을 발로 작업해서 평평하게 하고서 드러누워 되새김질을 한다. 그러면 들소의 IQ는 얼마입니까?
■월마트에서의 한국말에 '
사우스다코다 주 빌링스(Billings)라는 데서 월마트에 들어가 시장을 봤다. 우리 집 사람과 김 집사가 물건을 고르면서 한국말을 하는 걸 듣고 주변 사람들이 놀라서 휙휙 돌아보며 외계인을 보듯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시간에 거기에 흑인도 없었고 중남미인도 없었고 우리 말고 아시아인도 없었다. 다만 인디언과 혼혈인 듯한 사람들이 조금 있어 외국에서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 같다.
캐나다 영토에도 분포된 글레시어 내셔널 파크(Glacier National Park)에 가는 길에 웬 검은 큰 차가 신 집사가 운전하는 우리 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우리가 그 차를 피하려고 전속력을 내어 달리자 그 차도 전속력을 내어 우리 앞에 달려 마치 산적을 만난 기분에 무서웠다. 결국 우리가 1차선에서 정상 속도로 달리니 그 차는 2차선에서 백미러를 통해서 우리를 감시하듯 보고는 멀리 뒤쳐져 안심이 됐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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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병은, 사진/ 신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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