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A 노부부들, 미 대륙 일주 꿈 이뤘다
▶ 패밀리 밴 빌려 한달간 1만1천여마일 황혼빛 동행
왼쪽부터 신휘재, 김영선, 우정례, 우병은 씨.
그들은 마크 트웨인의 말을 떠올렸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실망할 것이다/ 돛을 풀어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전하라!”
■여정 계획, 숙소 예약
3년 전, 콜로라도 덴버로 떠난 길 위에서였다. 그들은 의기투합했다. “좋아! 다음엔 미국의 광활한 대륙을 일주해보자.”
버지니아 맥클린한인장로교회에 출석하는 이들 부부의 길 위의 언약은 지난여름부터 맹하(孟夏)의 태양 아래서 달궈졌다.
스털링에 거주하는 우병은(76), 우정례(70) 부부와 페어팩스의 신휘재(67), 김영선(64) 부부. 기획과 길잡이 역은 신휘재 씨가 맡았다. 한 달 전부터 체력에 맞게끔 이동거리와 여정을 짜고, 들를 코스를 골랐다. 인터넷을 통해서 숙소도 미리 예약해놓았다.
“출발 1주일 전에 도안을 만들어 네 사람이 서로 상의했어요. 각자 꼭 가보고 싶어 하는 코스가 있어 추가하고 조율을 거쳐 최종 여행 계획서를 완성했습니다.”(신휘재 씨)
■오대호 거쳐 시애틀로
드디어 9월3일 대장정에 올랐다. 첫날 이리 호수(Lake Erie)에서 가을이 깃드는 오대호의 서정에 넋을 잃었다. 그리고 미시건, 사우스다코다, 와이오밍, 몬태나를 거쳐 9월11일 시애틀에 당도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맥은 한 폭의 절경이었다.
“산정에서 신발과 양발을 벗어 던지고 산하를 하염없이 내려다봤습니다.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 그리고 저 운해와 숲의 풍정(風情)에서 앞만 보며 바쁘게 달려오던 여정에 작은 쉼표를 찍는 기분이 들었어요. 사소하지만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 느꼈습니다.”(김영선 씨)
자식걱정 내려놓고 집안 살림살이 뒤로 미루고 떠난 길이었다. 잠은 예약한 모텔에서 방 2개를 얻어 잤다. 하루 70불 가량 들었다. 아침은 모텔에서 해결하고 전기밥솥에 밥을 한 다음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났다. 점심은 가져간 밑반찬에 밥이나 라면,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저녁은 공원의 피크닉 에리어에서 ‘부루스타’에 요리를 해서 먹었다. 그 지역과 동네에서 잘 한다는 별식도 맛보곤 했다.
“여행은 잠자리가 편해야 몸도 마음도 가볍기에 돈은 좀 들었지만 부부마다 방을 따로 썼어요. 왕후의 밥, 걸인의 찬보다는 나은 수준이었지만 모두 입이 까다롭지 않아 잘 먹고 다녔어요. 체력이 좋아야 여행길도 수월하니까요.”(우병은 씨)
■도중 개스 떨어져
처음 계획대로 하루 평균 7시간을 달렸다. 그러나 시행착오도 거쳤다. 와이오밍의 산중에서 개스는 떨어져 가는데 주유소는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을 겪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로 인해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차도 도중에 말썽을 일으켰다. 렌트카 회사에서 패밀리 밴을 빌려 갔는데 텍사스에서 경고등이 커졌다. 2만 마일마다 정기 점검하라는 표시였다. 같은 렌트카 회사를 찾아가니 다행히 다른 밴으로 교체해줬다.
시애틀에서 태평양을 끼고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LA를 거쳐 애리조나 피닉스, 산타페, 텍사스의 샌 안토니오로 달리고 달렸다. 냇킹 콜, 밥 딜런이 추억의 노래를 만든 루트 66이었다.
“산타페에 들렀는데 푸에블로 인디언과 알라모 전투에 대해 들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에 장벽을 건설한다는데 원래 그 곳은 인디언과 멕시코인들의 땅이었어요. 그들의 입장에서 불법 체류자는 오히려 미국인들이겠죠.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신휘재 씨)
■여행이 준 선물
길은 다시 시작됐다. 뉴올리언스와 조지아, 미국의 최남단 플로리다의 키웨스트를 거쳐 사바나, 머틀 비치, 그리고 마침내 제임스타운을 지나 출발지로 돌아왔다. 10월3일이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이민자의 나라의 대지 위에 긴 족적을 남겼다. 29박30일에 한국과의 거리보다 먼 1만1,116마일의 여정이었다.
“미국의 속까지 들여다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뭐 그런 감상이었지요.”(우정례 씨)
유방암 수술을 받은 우정례 씨에게는 깊은 숙면이란 선물이 덤으로 찾아왔다. 평소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이루다 여행을 돌아와서는 약을 버렸다 한다.
은발의 인생길에서 만난 황혼빛 동행. 여행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충만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에너지를 되찾아줬다.
신휘재 씨는 “이번 대륙일주로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졌다”며 “어떤 일을 하든지 두려움을 갖고 포기할 필요가 없다. 용기는 그것을 극복하는 힘이며 여행은 우리에게 그 용기를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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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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