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일요일. 헬기가 프랑스의 레오에 있는 교도소 마당에 내린 뒤 헬기에서 복면을 한 괴한들이 튀어나와 연막탄과 철문커터를 사용해 교도소 내로 진입했다. 이어 이들은 강도미수 죄로 25년형을 살고 있는 악명 높은 갱스터 르드완 화이드(46·사진)를 교도소에서 빼내 헬기에 태운 뒤 사라졌다.
마치 특공대작전이나 찰스 브론슨이 주연한 스릴러 ‘브레이크아웃‘(Breakout)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탈옥에 걸린 시간은 10분 미만. 화이드 일당은 이 시간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그런데 화이드는 2013년에도 복역 중이던 리유 인근의 교도소에서 간수들을 인간 방패로 삼고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해 탈옥한 경력이 있는 프로 범죄자다.
흥미 있는 사실은 화이드가 영화광이라는 점이다. 그는 특히 범죄영화를 잘 만드는 마이클 맨의 열렬한 팬으로 로버트 드 니로가 범죄자로 나온 ‘하이스트 영화’(털이영화) ‘히트’(Heat)를 극장과 집에서 수밴 번 봤다고 르 피가로지가 보도했다. 신문은 화이드가 영화의 도주 장면을 자신의 강도질에 이용했고 이와 함께 이 영화에 보내는 헌사 식으로 영화 장면처럼 범행 시 하키 마스크를 썼다고 덧 붙였다.
화이드가 맨에게 매료된 첫 작품은 맨의 데뷔작으로 제임스 칸이 나온 ‘도둑’(Thief). 그 뒤로 화이드는 맨을 우상처럼 섬기게 되었는데 2009년에는 맨을 파리에서 열린 영화 토론회에 찾아가 질문까지 했다. 화이드는 자니 뎁이 미 갱스터 존 딜린저로 나온 ‘공공의 적들’(Public Enemies)의 개봉에 맞춰 있은 토론회에 참석, 맨에게 질문을 던졌다.
화이드는 그 때 무장강도와 보석강도 죄로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소했을 때였다. 화이드는 먼저 맨에게 자신을 전직 갱스터라고 소개한 뒤 “당신의 범죄영화들은 내겐 사실보도이자 가록영화다. 당신은 나의 기술자문이요 대학교수이자 사부”라고 찬양한 뒤 “당신은 갱스터들이 당신의 영화들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맨은 매우 당황해 하면서 “고맙지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화이드는 범죄를 저지를 때 맨의 영화뿐 아니라 다른 범죄영화도 모방했다. 보석상을 털 때는 퀜틴 타란티노의 보석상 털이영화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에서처럼 범행동지들의 이름을 ‘미스터 와이트’ 등 본명 대신 색깔 이름으로 불렀다.
또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강도영화 ‘포인트 브레이크’(Point Break)에서 영감을 얻어 행한 은행강도 때는 프랑스 대통령들인 샤를르 드골과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얼굴가면을 쓴 뒤 영화의 대사까지 인용했다. ‘포인트 브레이크’에서 범인들이 은행강도를 할 때 레이건과 닉슨과 존슨 및 카터 등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가면을 쓴 것을 모방한 것이다.
화이드는 2010년에 낸 자서전 ‘갱스터:슬럼에서 큰 범죄로’에서 자신의 범죄와 영화에 대한 똑 같은 사랑을 고백하면서 범죄로 부터의 은퇴를 선언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 경험을 토대로 “영화가 없다면 범죄도 50%가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드는 허구와 사실의 혼돈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보겠는데 그의 범죄는 어떻게 보면 꼬마가 서부영화를 본 뒤 장난감 총을 빼들고 사격하는 흉내를 내는 것의 성인판이리고 하겠다. 화이드 못지않게 영화광인 나도 어렸을 때 웨스턴의 건맨 흉내를 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본 프랑스 영화계 누벨 바그의 효시적 작품인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가 끝난 뒤 극장 밖에 나와서 주인공 장-폴 벨몽도처럼 하늘에 뜬 눈부신 태양을 쳐다보면서 인상을 쓰기도 했다.
영화의 힘이란 막강한 것인데 유감스런 것은 가끔 범죄나 폭력영화를 모방한 범죄가 저질러지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스탠리 쿠브릭의 ‘클라크워크 오렌지’(A Clockwork Orange)다. 이 영화를 본 영국의 10대들이 영화에서처럼 ‘빗속에 노래하며’를 부르면서 소녀를 강간했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선 역시 영화처럼 10대들이 재미로 노숙자를 불태워 죽였다. 이에 쿠브릭은 자기 영화의 영국 내 상영을 오랫동안 금지한 바 있다.
조승희의 버지니아텍 총기 살육사건 때는 조승희가 손에 망치를 든 사진 때문에 이 사건을 최민식이 망치를 휘두른 ‘올드 보이’와 연결시키려 했다. 콜로라도주 오로라극장 내 총격사건 때는 범인이 ‘다크 나잇’(Dark Knight)의 조커처럼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경찰에 체포될 때 “나는 조커다”:라고 말해 그가 영화의 조커 흉내를 냈다는 말을 들었다
화이드를 영웅으로 여길 범죄자들이 그를 모방한 범죄를 저지르고 화이드의 이번 탈옥을 계기로 그의 범죄인생이 영화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경찰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을 화이드와 그의 일당은 지금 어딘가에 숨어서 맨 감독의 영화를 자신들의 범죄 교본으로 보면서 다음 범죄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와 범죄의 순환 고리가 과연 언제 끊어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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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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