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저녁이었다. 교육위원회 정기회의가 있었다. 비공개 회의는 오후 5시부터, 그리고 공개 회의는 저녁 7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날 밤 8시 반, 그러니까 한국 시간으로는 금요일 오전 9시 반부터 남북 정상이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TV 생중계를 꼭 보고 싶었다. 역사적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컴퓨터에 회의자료 화면과 함께 중계되는 TV 방송도 소리 안 나게 켜 놓았다.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정기회의 장소로 루터 잭슨 중학교 강당을 사용한다. 교육위원들은 회의를 참관하는 일반 대중을 마주 본 채 회의를 진행한다. 그래서 다행히도 참관인들이 내 컴퓨터 화면은 볼 수 없다. 그리고 내 컴퓨터 스크린에 프라이버시 보호 커버가 씌워져 있어 옆자리 동료 교육위원들도 내 스크린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남북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다른 교육위원들에게도 좀 보여 주고 싶었다.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왔다. 프라이버시 보호 커버를 떼어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회의장을 둘러 보니 부교육감이 보였다. 그래서 그에게 내가 보고 있는 TV 중계 링크를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꼭 보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부교육감은 작년 가을에 나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 때 같이 판문점에도 다녀 왔다. 그런데 사실 당시에는 부교육감이 판문점 방문을 꺼려 했다. 괜히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교육위원의 권유를 무시할 수는 없었고, 다녀 온 후에는 오히려 남북의 분단과 긴장된 대치 상황을 볼 수 있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한국과 한국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번 남북정상회담 장소가 눈에 설지 않았고 좀 더 관심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다음 날 동료 교육위원 두 명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한 명은 신문 기사를 읽었다며 진정으로 축하하고 모든 것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동료 교육위원은 영국 BBC 방송 뉴스 클립 하나를 보내 오면서 자신은 그 클립을 몇 번씩 보면서 울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 정도인데 나 처럼 실향민 아버님을 둔 사람을 포함해 수 많은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상상조차 어렵다며 위로의 말을 덧붙였다. 평소에 교육 이슈를 놓고 곧잘 나와 의견 대립을 보여왔던 그의 위로가 고마왔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부터 시작해 남북대화의 물꼬가 급격히 터지는 것을 보며 나에게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을 물어 보는 미국인들이 제법 있다. 사실 내가 남북 문제 전문가도 아니고 오랫동안 미국에 살면서 언론에 보도되는 정보 외에는 특히 더 아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한인이고 교육위원 자리에 있기 때문인지 미국 사람들이 내 얘기를 경청한다. 그럴 때마다 앞으로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의 역할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여망이나 평화 정착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진행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시각이 모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상반된 시각들이 어쩌면 동전의 양면 같기도 하며, 우리가 주위에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미국 내의 여론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과거에도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효과가 오래 가지 않았고 여러 차례의 핵동결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의 정상회담에 대해 무조건 장밋빛 시각으로 보아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대화 외의 다른 선택은 대체안이 되지 않는다. 나로서는 이번처럼 남북 대화에 흥분되어 본 적이 없다. 정상회담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특히 이번이 북한 고향 방문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마 아버지의 심정은 그 이상이셨을 것이다. 지난 주 일요일 저녁 아버지는 따뜻한 칼국수, 그리고 나는 냉면을 먹으면서, 고향 방문 기회가 언제 갑자기 있을지 모르니 부디 평소에 하시던 운동을 계속 잘 하시고 건강하셔야 된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가 상기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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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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