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처음 꿈은 책방의 주인이었다. 그 꿈은 교사와 작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거치며 변해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꿈들과는 무관한 세탁소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요일과 법정공휴일 7일을 뺀 나머지 날들을 수많은 세탁물과 씨름하며 살아간다.
내가 처음 해본 빨래는 마루걸레였다. 옆집에 살던 친구 봉순이를 흉내내어 빨아본 것이다. 봉순이는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을 했다. 우리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개울물에 봉순이가 빨래를 하고 있다는 건 서툰 방망이 소리로 알아챌 수 있었다. 심심해진 내가 슬며시 우리 집 걸레를 들고 개울로 가면 으레히 봉순이가 거기 어린 등을 구부리고 앉아 빨래를 하고 있었다. 호박잎에 싸들고 온 빨래비누를 치대어 작은 손가락을 오무렸다 폈다 하면서 빨래를 했다. 개울물에 헹궈낸 걸레나 기저귀를 야물게 비틀어 짠 후 할 일 많은 봉순이는 다시 집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봉순이가 떠난 개울엔 정적이 맴돌고 봉순이가 앉아 있던 자리로 소금쟁이 몇 마리가 재빠르게 다시 모여들었다. 나는 봉순이가 떠나버린 그 개울에 앉아 처음으로 외로움이란 감정을 맞닥뜨렸다.
첫아기를 낳았던 뉴욕의 낡은 아파트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나는 아기의 빨래를 공동세탁기에 넣고 싶지 않아 날마다 욕조에 쪼그리고 앉아 손빨래를 하면서 서툰 엄마가 되어갔다. 손바닥만하던 배냇저고리로부터 시작한 아이들의 빨래감은 키가 자라며 크기를 키워갔다. 아이들이 대학으로 떠나면서 줄어든 빨래감은 그들이 돌아오면서 다시 늘어났고 이제 딸아이는 배우자를 만나 내 곁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 나는 딸아이가 밖에서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빨래감들을 더는 만져보지 못할 것이다. 남은 식구들의 옷을 마루에 앉아 개키면서 그 아이의 부재를 느낄 것이다. 내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빨래를 하며 떠난 딸의 빈자리를 느끼고 툼벙, 눈물도 몇 번 떨구셨을 것이다.
누구나의 고향집 마당에는 빨래줄이 매여 있다. 좁은 방에 어깨를 겯고 잠들던 식구들의 수수한 일상이 마당 한가득 빨래로 걸려 있던 풍경은 평화였다. 햇빛에 스미고 바람이 흔들어 말리던 그 빨래에서는 향기가 났다. 바람의 향기, 햇빛의 향기가 났다.
삶아서 두드리고, 치대어 헹구고, 다시 비틀어 짜서 빨래를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빨아주고, 두들겨주고, 헹궈주고, 삶아주기까지 하는 세탁기가 출현하고 부터 사람들의 수고로움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추억도 줄어든 건 아닐까. 바지랑대 높이 올려 빨래를 말리던 풍경, 빨래줄에 걸린 이불호청 사이로 드나들며 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햇살이 퍼지는 아침나절이면 들려오던 동네 아낙들의 엇박자 빨래방망이 소리, 그 모두 그리운 것들이 되었다. 이제 부지깽이와 함께 말썽장이들을 향해 휘두르기도 하던 빨래방망이는 보기 드문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그 푸르고 완강한 팔뚝을 가졌던 어머니들은 자꾸 떠나시고 계시다. 그분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리움이 통증처럼 방망이질을 해댈 뿐이다.
몇 년 전, 한국 방문 길에 그 봉순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난 건 찰박찰박, 봉순이의 서툴던 방망이질 소리였다. 빨래비누 담을 그릇 하나가 없어 호박잎에 싸들고 다니던 가난했던 봉순이를 향한 까닭없는 미안함이 개울물처럼 가슴 한복판을 지나갔다. 창밖에는 하늘이 잔뜩 내려와 있다. 비라도 내릴 심산인가보다. 퇴근길의 손님이 한바탕 줄을 서고 난 뒤 한가해진 가게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빨래란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향해 꾸는 꿈 같은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게는 할 수 없는 젖은 수고이다. 어제라는 시간이 묻히고 온 먼지와 얼룩을 지워낸 뒤 내일이라는 시간을 향해 산뜻하게 걸치고 나갈 준비를 하는 일이다.
삶은 빨래줄과도 같다. 한낮의 빨래줄은 젖은 빨래의 무게로 긴장된 시간을 지나기도 하고 바람에 소요스럽게 뒤채이기도 한다. 사랑채 기둥과 감나무 둥치 어디쯤에 매어 있던 빨래줄은 끊어질 듯 팽팽한 시간을 살아낸다. 빨래를 가득 걸고 바지랑대가 받쳐주는 완만한 곡선의 힘으로 버티며 빨래를 말린다.
저녁이 되면 빨래줄은 비어 버린다. 헐렁한 두 개의 곡선으로 허공에 내걸린다. 더는 팽팽해지지 않는 두 개의 곡선, 빈 빨래줄은 나이 든 사람과 같다. 하지만 빗방울이 매달리고, 눈송이의 의자가 되어주고, 달빛의 그네가 되어 주는 것은 빈 빨래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유리창 너머로 급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문득 등 뒤로 먼 기억 너머의 익숙한 목소리 하나를 들은 듯도 하다. “비 온다. 빨래 걷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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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미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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