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꽃으로 진달래와 개나리도 있으련만 이 봄의 화사함을 빚어내는데 벚꽃을 당해낼 피움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한인들끼리 서로 꽃피던 봄날을 이야기하면서 이곳의 벚꽃을 빼놓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단번에 그가 이미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출신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바람에 흩날리는 교태스런 꽃가루며 연분홍 팝콘이 터지는 봄날의 들뜬 아우성과 사람들의 고양된 정조와 홍조 섞인 당황함을, 풀밭 가득 낙화한 워싱턴 모뉴먼트는 물론이요 포토맥 강 양쪽의 타이들 베이신과 하인스 포인트를 입에 올리지 않고 어찌 이곳의 봄날을 말하리요.
이민생활의 구비를 돌며 그 꽃피는 어느 날에 우리는 어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업을 일구며 예쁜 집을 장만하기도 했을 것이며 다시 어느 꽃 지는 봄날에 겨우내 자주 앓던 부모를 눈물로 차례로 보내고 어깨를 흔들며 울던 날도 아마 이쯤이었으리라. 타주의 대학을 향해 떠나는 아이와 작별을 하던 즈음도, 또 삶의 새삼스런 매듭을 짓고 새로운 각오로 길을 떠나던 그 어느 날도 어쩌면 우리가 찾았던 곳은 이곳이었을지도 모른다.
해거름 지던 강 언덕, 멀리 굽어보던 벚꽃은 어찌 그리도 아름답던지 자개처럼 물비늘을 반짝이며 그 사이를 흐르는 강물이 어느덧 휘돌아 두 눈에 빨갛게 차오르는 눈물로 번지고 그것이 문득 스치는 후회일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의 세월이며 추억으로 뭉쳐진 세찬 그리움이었음을, 이국에서 일군 가정과 생업과의 한바탕 시름으로 잠못 이루다 우린 또 얼마나 그 장한 결심과 각오로 그 벚꽃 피던 언덕을 서성였던지…..그러면서도 봄비 젖은 낙화가 바람을 탓하지 않듯 어쩌면 우린 그렇게 묵묵히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세금보고 준비를 하다 무심코 올려다본 창문엔 아직까지 벚꽃 몽우리가 애처롭다. 아마도 저 처연과 가련함 속에 숨겨놓았을 화사한 요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이다.
봄날의 흥취를 줄이는 말 같지만 사실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그 원리가 이렇다. 원래 지구의 자전축이 오른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지지 않았더라면 태양의 남중고도는 늘 같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밤낮의 길이 변화와 하지와 동짓날의 개념도 애초에 그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 지구상의 계절 변화 따위는 없었을 것이며 마치 오늘날의 적도처럼 대체로 같은 온도, 같은 계절이 그리고 동일한 밤낮이 지속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자연의 섭리였는지 기적처럼 23.5도가 기울어져 그 상태에서 자전과 공전을 하다 보니 태양열을 받는 범위와 정도가 다양해져 결국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계절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신비한 것은 오랜 세월동안 그런 지구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한 꽃과 식물이 그리고 동물들마저 그 일조시간과 온난에 따라 상이하거나 매우 다양한 생체리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봄에는 진달래로 가을엔 국화로, 강남갔던 제비와 경칩의 개구리가 겨울 동면에서 깨어나 기량껏 먹이활동을 한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견뎌낸 인류도 예외 없이 마찬가지다. 문명의 혜택으로 비교적 환경의 지배를 덜 받는다는 현생 인류마저 철마다 남중고도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기운과 생체리듬을 아우르며 먹이 활동을 한다. 우리가 변온동물이 아니므로 철마다 입성치레를 달리 하면서 바뀌는 계절에는 삶의 유한함을 철학하며 살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른 동물과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그래서 봄철의 낮잠마저 일장춘몽이요, 대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며, 다가올 봄날의 가출을 이야기하며 햇볕을 쬐던 어린 청춘들의 기억들이 여기 있다. 산너머 봄이 오는 조붓한 길목과, 우수와 경칩이 지나고 새학기가 될 때면 삼월 삼짇날 답청을 한답시고 새 풀이 난 푸른 들을 하얀 운동화를 신고 걸었던 그 풋풋한 추억들을 우린 아직 잊을 수 없다. 그러다보면 무슨 기지개와 같이 ‘깨어남’ 그리고 어떤 ‘들린’ 현상 같은 것이 어린 영혼에게도 전해져 쑥향기를 품은 출발로서의 봄이라든지 길 떠남이 아직도 아지랑이 지는. 그래! 시절은 분명코 봄이렷다!
우린 이제 바로 그 봄에 위 서 있다. 필경 계절은 갈 것이나 우리는 당분간 이곳에 남아, 푸른 연잎에 밥을 싸고 버들가지에 물고기 꿰어 눈부시게 하늘을 우러르는 날도 있으리니, 속절없이 가버린 요 앙큼한 세월아! 내 묻노니 그래 꽃이 피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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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부동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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