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학교 교직원들이 총을 차고 출근하게 됐다. 최근 플로리다 주는 학교의 코치와 카운슬러 및 사서들의 교내 총기 휴대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얼마 전 파크랜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대형 총기살상 사건에 대응한 조치다. 이 참사를 계기로 지난 24일에는 미 전국에서 젊은 학생들이 강력한 총기규제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석, 다음 선거에서 총기규제에 미온적인 정치인들을 갈아치우겠다고 선언했다.
플로리다의 법안이야말로 근시안적이요 가히 희극적인 조치다. 코치나 카운슬러가 부부싸움이라도 하고 출근해 아직도 화가 안 풀려 소지한 총을 쏘면 어떻게 하겠는가. 간디는 “눈에는 눈으로는 온 세상을 눈멀게 만든다”고 말했는데 이런 ‘총에는 총으로’ 식의 대처야 말로 또 다른 총기참사를 불러올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미국에서는 학교뿐 아니라 교회에도 총을 차고 들어가 예배를 볼 수 있다. 2016년 미시시피 주는 훈련을 받은 특정인들이 총을 소지하고 교회에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텍사스 주에서는 대학교에 총을 갖고 들어가도 되는 법안이 통과됐다. 바야흐로 미국은 서부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서부시대는 총으로 개척된 시대다. 개척자들이 미 대륙의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살육하고 서부를 정복하는데 일등공신 노릇을 한 것이 연발장총 윈체스터다. 윈체스터는 그래서 미국을 상징하는 무기로 취급된다.
많은 웨스턴에 나오는 장총이 다 이 윈체스터인데 이와 반면 서부시대 건맨들이 차고 다니다 결투할 때 쓰던 권총으로 유명한 것이 콜트다. 현대에 들어와서 제조된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권총은 ‘더티 해리’(Dirty Harry)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쓴 .44 매그넘(사진)이다. 윈체스터를 찬양한 걸작 웨스턴이 제임스 스튜어트가 나온 ‘윈체스터 ’73‘(Winchester ‘73)다. 윈체스터 ’73는 1873년에 제조된 것으로 역대 그 어느 총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녔는데 ‘서부를 쟁취한 총’으로 불리고 있다.
이 영화는 스튜어트가 캔자스 주 다지 시티의 미 독립기념일 사격시합에서 1등 상품으로 탄 윈체스터를 라이벌로부터 강탈당한 뒤 총을 되찾기 위해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하는 액션 웨스턴이다. 영화에서 사람들이 윈체스터를 손에 들고 바라보면서 감탄하는 모습이 마치 맘몬을 숭배하는 사람들처럼 황홀무아지경이다.
미국사람들은 총을 물신숭배 하듯이 섬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는 2억6,000만 정도의 총이 있는데 매년 1만 명 이상이 총에 의해 생명을 잃고 있다. 또 하바드대 조사에 의하면 미국 아이들은 15세가 되기 전 총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5배 이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크랜드 사건의 범인인 18세난 틴에이저가 중화기 살상무기를 장난감 가게에서 딱총 사듯 했으니 이런 통계가 나옴직도 하다
미국에서 총에 의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강력한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운동이 일고 있지만 매번 유야무야 식으로 끝이 나고 말곤 한다. 미 헌법이 시민의 무기 소지를 보장하고 있는데다가 500만여 명의 회원을 가진 미 총기협회(NRA)의 막강한 세력과 자금과 로비 탓이다.
파크랜드 사건 후 트럼프가 마지못해 총기규제안을 내놓으면서도 당초 말한 것과 달리 총기구입 연령을 21세로 상향하는 내용을 뺀 것도 NRA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총은 영화에서 사람 못지않게 중요한 구실을 해왔는데 특히 웨스턴과 범죄영화인 필름 느와르에서 필수품으로 쓰이고 있다. ‘건’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명작 웨스턴으로는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건화이터’(The Gunfighter)와 버트 랭카스터와 커크 더글러스가 공연한 ‘O.K.목장의 결투’(Gunfight at O.K. Corral) 그리고 글렌 포드가 주연한 ‘필살의 일발’(The Fastest Gun Alive) 등이 있다.
존 웨인이 주연한 ‘리오 브라보’(Rio Bravo)에서는 딘 마틴과 릭키 넬슨이 라이플을 이렇게 노래로 찬미하고 있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소떼는 냇가로 내려가네/개똥지빠귀가 둥지에 몸을 풀면 카우보이가 꿈을 꿀 때지/진홍빛으로 물드는 계곡이 내가 머물 곳이지/내 좋은 세 친구들인 내 라이플과 내 말과 그리고 나와 함께.” 노래 잘 부르다가 곧 이어 라이플과 권총이 동원된 결투가 벌어진다.
권총이 살육과 성애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영화가 허무하고 폭력적인 흑백 소품 느와르 ‘건 크레이지’(Gun Crazy)다. 젊은 부부 강도 바트(존 달)와 애니(페기 커민스)의 강도와 살인 행각을 그린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소녀 모습의 애니가 도발적인 자세로 한 손으로 6연발 권총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자동차 연료통에 개스를 넣는 모습은 남녀 간의 섹스를 묘사한 자극적인 장면이다. 고도로 강력한 총기규제법이 마련되지 않는 한 파크랜드와 같은 대형 참사는 언제라도 다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미국은 참으로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건 크레이지 아메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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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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