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출생 대략 600여 년 전쯤의 일이다. 지금의 인천 건너편에 산동반도에는 당시 제나라 환공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에게는 역아라는 요리사가 있었는데 어느날 역아가 끓여온 고깃국을 드시며 환공이 웃음 가득 한마디 하셨다. “ 짐이 여태까지 사람고기만 빼고 모든 고깃국을 다 먹어봤지만 오늘 고깃국은 아주 유별나구나” 하며 주방장 역아를 추켜세우며 인사치레를 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환공이 또 다시 역아가 마련해온 고깃국을 먹는데 그 맛이 참으로 특이했다. 육질은 새끼 양 같으나 국물이 맑은 것이 딱히 그것은 아니어서 역아에게 물었다. “그래 이 고기는 무슨 고기인고?” 역아가 대답한다. “ 주군께서 인육을 못먹어 보셨다고 해서 제가 세살난 저희 아들을 삶아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환공이 먹던 숟가락을 놓으면서 갑자기 속마저 불편해졌다. 그러나 한편 자신을 위해 아들을 잡아 고깃국을 마련한 그의 충성심만큼은 가상하여 말없이 상을 물렸다.
이후에도 거푸 반복되지만 환공이 역아를 대할수록 모르는 게 그 자였다. 한낱 요리사에 불과했으나 자신을 대하는 역아의 극진함과 충성스러움 하며 그가 시중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곡진함과 그 진정성까지도 마음으로 전해져 사람을 몇 번이나 살피게 하는 그런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당연히 환공이 더욱 역아를 아끼게 되는데 훗날에는 일개 요리사에서 일약 내시총관까지, 오늘날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그런 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그런데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환공이 말한 “사람 고기만 빼놓고”의 해석 차이로, 환공은 단지 “내 다 먹고 섭렵해봤으나 역아의 국 끓이는 솜씨가 좋았다”는 말을 한 것인데 달라도 너무 다른 역아의 자의적 해석과 제 아이를 삶아온 과잉한 행동으로 결과적으로 그것이 극도로 정치화 되는 순간이 문제였다. 돌이킬 수 없고 누가 봐도 과잉충성이었으며 동기가 순수해도 결과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 행위는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재상이던 관중이 역아의 인물됨을 죽어가면서까지 유언으로 남겨 환공을 경계시켰던 것이 바로 이 같은 이유였다.
같은 행위이지만 환공은 인륜도 뛰어넘는 역아의 충성심에 매료되어 좋게만 해석했고 관중은 바로 자식마저 버리는 역아의 마음이라면 하물며 피도 섞이지 않은 왕에게야 어떻겠는가 하는 기본적인 인성에 관한 의구심이 있었다. 훗날 관중의 이런 예상은 불운하게도 틀리지 않아 환공은 역아에 의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궁궐에 갇혀 쓸쓸한 말로를 보내다 굶어 죽었다. 병중에 정신이 혼미하여 죽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나중에는 간청하는 물마저 무시당해 결국 아사했다.
절대적 악과 절대적 선을 걷어내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조금 다른 조명으로 들여다 보자. 사람의 본성이 고작 2,600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아서 하는 얘기다. 그 믿음에 의지해 상황을 유추해보면 당시의 역아가 왕에 대해 느끼고 품었을직 한 감정이 어느 순간에는 충성심이고 그 곡진함도 사실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퇴색되고 한번 권력의 미각에 홀린 자가 되어 보면 절대 권력이 사람에 대해 부리는 억압과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의 변절이나 아첨 따위가 어떤 것인지 우린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을 할 수 있다.
어느 시대든지 역아처럼 극진한 간신은 그때도 지금도 존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배움도 많고 모두 잘난 사람들이었지만 너무 처신에 능한 나머지 결국 스스로를 쓸쓸한 몰락의 구렁텅이로 내몰아 버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역사가 주는 교훈마저도 뒷세대에게 구석구석 전달되지 않았고 거기에 다시 오기 어려운 개인의 영달이 엉겨 붙으면 역사는 어김없이 반복 되었다. ‘그네 타는 최여인’과 ‘기춘대원군’이니 ‘또병우’니 하는 것도 사람만 바뀌고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제 또 다시 최고 권력자의 그 잘드는 칼이었고 한 때는 모두 “뜨르르”하던 참모들이 붙잡혀 들어갔다. 마지막 남은 자도 그가 허락하고 팔짱끼고 즐긴 지난 날 정치의 섭리대로 필경 관 속의 시체가 될 것이다. 물론 간언과 교언으로 아부하는 수하를 적어도 구별할 줄 아는 나라 지도자였다면 좋았겠지만 그 보다 더 좋고 근원적인 것은 국민도 그런 밝은 최고권력을 선택할 줄 알아야 했다.
우리가 겪고 처한 이곳 사회도 되새겨 배우는 바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생각할 수록 섬짓 섬뜩 하지만 자기의 이권과 허명을 위해 자식을 삶아오는 역아가 비단 그들뿐이었을까. 아파도 우리 모두 그렇게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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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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