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로(綻露)’는 감추었던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탄(綻)은 ‘옷이 터지다’는 뜻으로 굳이 뜻을 풀이하자면 ‘옷이 터져서 몸이 밖으로 드러난’ 것을 ‘탄로’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몸은 보온문제도 있었겠지만 감추어야 되는 것이고 노출이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자연주의 사조 열풍이 고전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노출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벌써 진부한 담론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한쪽에서는 감출 것도 말 것도 없는 듯 당당한(?) 행동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모르거나 드러나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 현상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인문학적 연구영역을 너머 자연과학분야에까지 광범위해 지고 있다.
극히 부분적인 내용에 속하겠지만 ‘관음증’같은 일탈적 심리도 이제는 ‘문학과 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사방에 깔려있는 CCTV에는 범죄의 단서는 물론이고 사고나 일상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구글(Google)에 접속되는 개인 핸드폰을 통해서 당사자는 상상하지도 못할 사생활까지도 노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탄로’는 국문학적 쓰임새는 ‘명사’이다. 그에 해당하는 동사로는 우리말에 ‘들통 나다’라는 말이 있다. 평소에 들통 때문에 안보이던 곳을 ‘들통을 들어내고 나면 그 밑을 볼 수 있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비슷한 말로 ‘발각되다’라는 말도 있다. 위에 열거한 ‘탄로’, ‘들통 나다’ ,‘발각되다’라는 말들을 수식하는 앞뒤 내용들은 대체로 ‘거짓말’, ‘음모’, ‘비밀’ 등 감추거나 숨기고 싶은 내용들로 둘러싸여 있다. 옛말에 ‘알면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은 작금의 심각한 사태에 적용하면 그야말로 ‘애교’정도이다.
내부자에 의한 ‘폭로’가 아닌 ‘탄로’는 고발영화나 추리소설에서는 개연성과 맞물려 영화의 소재로서도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탄로’는 거의 치명적일 수가 있다. 영원히 묻어버리려는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에 비하면 일반대중들은 ‘관심’자체가 아닐 수도 있지만 들통 나거나 발각되어 탄로가 나게 되면 실체적 진실과 함께 법적, 도덕적 책임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지난 년 말부터 ‘다스(DAS)는 누구 겁니까?’에서 시작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권과정부터의 의혹들이 박근혜정부에서 감추어지는 듯 했다. 탄핵사태가 거의 마무리되는 최근에는 거의 날마다 수많은 ‘의혹’들이 하나씩 ‘폭로’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국민들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그런 박근혜정권을 탄생시켰던 일들은 물론(국정원 댓글 사건), 이명박 집권기간 소위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국유화’에 철저했던 이른바 ‘이완용식 국가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이 발각되고, 들통 나고, 저절로 ‘탄로’까지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잊히기를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이명박정부 5년간 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에 투자한 국고가 계산이 불가능한 천문학적인 액수들이다.
그 중에서 극히 일부이지만 아랍에미레이트 연방(UAE)과의 원전 수출계약과 관련해서 지극히 비정상적인 계약조건들이 ‘탄로’나고 있다. 약 20조원의 원전 수출계약을 맺으면서 숨기고 감춘 경악할만한 ‘이면계약’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60년간 가동 보증’을 하겠다는 것이나, 발생한 핵폐기물은 한국에서 역수입하기로 한 것, 건설자금 중 11조원을 금융지원하기로 한 것 등 개인이나 기업이라면 상상도 못할 조건들이 숨겨져 있었다. 얼마나 얼토당토않았으면 이 건에 대해서는 심지어 박근혜 정부에서조차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지난 9일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은 기절초풍할 기자회견을 한다. UAE에 유사시 한국군이 자동개입하는 ‘비밀 군사협정’을 맺었다고 해 버린다. 이 사태가 어떻게 정리될 지는 두고 볼 일이고 필자의 상상범위 밖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짓말’이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접근은 ’원천봉쇄’나 다름이 없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정치인이나 공인들이 ‘대중들은 금방 잊는다’고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학자나 논객들이 과거에 썼던 ‘말과 글’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거의 여지가 없어져 버렸다. 국민들로서는 아주 기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탄로 날 것이 없는 사회’, 탄로가 나더라도 ‘모르는 게 약’일 정도의 애교스런 사회, 좀 재미는 없을 것 같지만 ‘아주 편안한 세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한국은 이미 그런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탄로의 역설이자, 아름다움이다. 감출 것 많은 사람들에게는 고역이겠지만 말이다.
<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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