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맞이하는 날이지만 새해 첫머리는 늘 특별한 의미로 다가 온다. 이 날만큼은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축복의 마음을 담뿍 담아 무병장수나 다복건강 혹은 소원성취 등의 인사나 덕담을 나눈다. 이와 함께 새해를 맞는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는 설렘 속에 마음을 새로이 하여 새해의 좌우명이나 삶의 원칙, 새해의 목표 등을 세우는 희망의 다짐이 아닌가 한다.
제대로 정한 좌우명이나 목표는 한 해의 삶을 의미 있게 이끄는 좋은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의 경전이나 고전 혹은 수상록(隨想錄) 등에서 교훈적 문구를 빌려 오기도 하고, 한 눈에 쏙 들어오는 톡톡 튀는 창의적인 문구를 내걸기도 하고, 실속 있는 구호도 등장한다.
새해를 맞아 늘 옆에 두고 소중히 지키며 살아야 할 마음의 경구(警句)로 “사람의 길”을 정했다. 널리 알려진 성어(成語)도 아닌 평범한 문구이지만, ‘사람의 길’만큼 그렇게 모두에게 중요하고 모두를 아우르는 말도 별로 없을지 싶어, 이것을 새해 마음의 길잡이로 정했다.
‘사람의 길’을 마음에 두고 살자고 하면 혹시 하늘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살자는 것이냐 혹은 자연을 무시하고 인간중심으로 살자는 말이냐 하는 오해를 받을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람의 길이란 한 개인의 육체적 욕망이나 야망, 혹은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위한 특혜를 초월하는 공공선(公共善)의 개념을 뜻한다. 사람의 길이란 개인(낱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와 상생의 세상을 살아감을 뜻한다.
사실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은 사람의 길에 있다. 기독교의 경전인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가르침인 산상수훈(山上垂訓)을 보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한다. 모두 ‘사람의 길’에 대한 가르침이다. 자비(慈悲)를 강조하는 불교의 가르침 역시 사람의 길에 대한 가르침이다. 공자께서도 제자들이 유교의 핵심인 인(仁, 어짊)과 지(知, 앎)에 대하여 묻자 “인이란 애인(愛人)이요, 지란 지인(知人)이다.” 어짊과 앎이란 곧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는 것이라 답했다. 사람의 길이다. 묵자(墨子)의 천하에 남이 없다는 천하무인(天下無人)의 정신이나 서로 사랑해아 한다는 겸애(兼愛)의 가르침 역시 사람의 길을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학문도, 철학도, 과학도 사람의 길을 묻고 있다. 우리가 가까이 두고 늘 물어야 할 길은 사람의 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사람에 이르는 길이 날로 험해지고 멀어지고 황폐화되어 간다. 어린 자녀가 학대 받고 연로한 부모가 냉대 받는 일이 다반사다. 천륜이라 일컫던 부모와 자녀의 길이 흔들린다. 대통령, 공직자, 정치인, 종교인 가운데 자신이 가야 할 대통령의 길이나 정치인의 길 혹은 종교의 길을 잃고 어려운 처지에 빠진 모습을 본다. 모든 길의 바탕인 사람의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유교의 덕목인 충(忠)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하나의 방법이다. 참다운 충이 되려면 조직이나 대상을 넘어 ‘사람을 섬기는 것’ 이 되어야 충이다. 법과 양심 곧 사람의 길에 벗어난 충성은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많은 이를 아프게 하는 한갓 조직을 위한 충성이요 위험하고 무익한 충성일 뿐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라 퐁텐의 말을 빌린다면 모든 길은 ‘사람의 길’로 통해야 한다. 사람의 길은 모든 길의 출발점이요 종착지이다. 고국의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고 기원하는 것도 그 길이 분단의 모순을 뛰어 넘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의 길도 인류의 삶과 국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의 길’과 동떨어진 길이라면 의미가 없다. 종교도 교회도 사람을 바르고 선하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의 길을 가야한다.
‘사람의 길’은 종교, 국가, 민족을 무론하고 지구촌 촌민이 함께 가야 할 길이다. 사람의 길은 도처에 있으며 없는 곳이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사람의 길로 이어지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자리다. 말 한마디에도, 작은 나눔에도, 공직 수행에도, 종교인의 행동에도, 노동에도, 정치에도, 과학에도 사람의 길이 있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여 남녀노소, 정치인, 경영인, 학자, 종교인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겸손하고 진지하게 ‘사람의 길’을 묻고, 찾고, 걷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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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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