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집필한 ‘미국사’(김영사 간)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신대륙 발견부터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500년 미국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신용석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이 번역을 맡아 원작의 미문과 의미를 충실히 살려냈다는 평이다. <편집자 주>
-제대한 군인들의 아픔
비록 승리를 챙겼지만 링컨이 남기고 간 정세는 위험천만했다. 흑인은 이제 노예가 아니고 연방 결속이 확고해졌다는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된 듯 보였다. 이 소극적인 결과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 할 수 없었다.
해방된 노예 처리와 승자와 패자로 구성된 연방 운영 같은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남부 주에는 합법적인 주정부가 존재하지 않았고 연방군이 무정부 상태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다 떨어진 회색 군복을 입은 채 제대한 군인이 고향에 돌아와 만난 것은 불타버린 가옥과 농장, 황폐한 도시, 황무지로 변한 농장 등 가슴 아픈 폐허뿐이었다. 그토록 아름답던 집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굴뚝밖에 없었다. 과거에 부유한 생활을 하던 부인들이 자식을 위해 구걸을 했고, 농장주들은 당밀과 꽃을 이전에 자기 노예이던 흑인들에게 팔고 있었다. 대단치도 않은 간단한 물건조차 구할 수 없었으며 강냉이 자루로 실꾸리를 만들 정도였다. 길에는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급진파들의 반발
흑인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 정부가 그들에게 농토와 가축을 분양해주리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농장 안을 서성거리거나 연방의 막사로 기어들어가 그들에게 무슨 기적 같은 소식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바라고 있었다.
농장주 사이에는 양키에 대한 반감이 극심했고 부인들의 감정은 한층 더 격했다. 극도의 증오심 때문에 협조 같은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단결하지 못했다. 북군에 참가한 한 버지니아 출신 병사는 고향에서 배척당했다. 집이 테네시에 있는 남군 병사는 감히 귀향할 마음조차 먹지 못했다.
북부에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급진파들이 반역자 처벌, 재산 몰수, 주모자 사형 등을 요구했다.
자신을 기독교도라 부르고 기독교도라 믿어 의심치 않던 목사들까지도 곤궁함에 허덕이는 남부인을 냉정하게 방관했다.
급진파의 희망은 이 나라가 입은 상처에 붕대를 감고 통일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남부의 거만한 소수 지배계급을 모욕하고 그들이 그들의 압제에 허덕이던 흑인의 지배를 받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링컨의 관용
이것은 링컨이 전후 문제를 처리하려던 방식이 분명 아니었다. 링컨의 구상은 전시에도 테네시, 아칸소, 루이지애나에 적용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계획은 어느 주든 1860년도 선거 때 등록한 유권자의 10퍼센트가 노예해방을 승인하고 연방에 충성을 서약한 뒤 정부를 수립하면 언제든 이를 주정부로 인준하고 군정을 해제하며, 연방의회는 이 새로운 주에서 선출된 상하의원의 인준을 행사할 권한을 보유한다는 것이었다.
링컨은 반란에 가담한 사람 중 주모자를 제외하고 모두에게 사면령을 내렸고 주모자들도 사형시키거나 투옥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들이 국외로 망명하거나 사면 청원을 제출하게 하여 청원을 허락할 작정이었다. 본래 남부 주민은 이 절차를 통해 공민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링컨은 어제의 과오보다 내일의 충성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이 현명하고 관대한 태도에 의회의 급진파들은 분노를 터트렸다. 그들은 ‘반역자에 대한 유화정책’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남부 대통령 데이비시의 운명
제퍼슨 데이비스는 먼로 요새에 갇혀 있었다. 얼마 후 그의 부인은 유력한 공화당원이자 저명한 언론인 호러스 그릴리에게 남편의 사면을 주선해주기를 부탁했다. 그는 기꺼이 과거의 적이고 남부동맹의 전 대통령이던 데이비스의 신원보증인이 되어주었다. 이 관대한 행동으로 그의 인기는 약간 추락했다. 데이비스는 곧 자유의 몸이 되어 캐나다를 거쳐 유럽으로 옮겨갔고 이후 아메리카로 돌아와 자신이 경험한 대사건에 관해 회고록을 저술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숲 속의 은신처로 들어가려던 리 장군은 워싱턴 대학(현 워싱턴앤리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해 버지니아 출신 청년들에게 모범적인 미국인이 되도록 가르쳤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스티븐스는 굉장히 분노했다. 리 장군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는 이 나라를 부흥시키고 평화와 협조를 재건하기 위해 일치단결하는 것이 만인의 의무라고 확신한다.”
<
신용석 번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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