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포대로 외양이 화려하다. 세계를 주름답는다고 각 나라의 모습을 조각에 넣었다. 외양만 화려하다 하여 마누엘 왕의 이름을 따서 마누엘 식이라 부른다.
포르투갈을 아주 옛날 방문한 적이 있다. 약 20년 전이었나? 그러나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전혀 기억이 없어 처음 방문하는 기분이다.
국제공항에서 내려서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시내 중심에 있는데 그 곳까지 걸리는 시간이 고작 약 10분, 택시비가 10유로가 못 되니 편하기는 하지만, 보통 전 세계가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더 커다란 공항을 신축하는 추세와 달라 포르투갈의 국제공항이 바로 10분 거리에 있어 현 포르투갈 경제의 정체를 대변하는 듯하다.
-아니, 인도의 봄 축제가?
비행기에서 밤을 홀딱 뜬 눈으로 왔기에 몹시 지쳐 잠간 누어 잠을 청하려니 창문 넘어 보이는 공원에서 무슨 축제라도 벌이는지 사람들 떠드는 소리, 음악소리가 요란했다. 그만 낮잠을 포기하고 그곳으로 가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도사람들이 이곳에서 인도의 봄 ‘색의 축제’라고 불리는 홀리(Holi Festival)를 벌이고 있었다. 여러 가지 물감을 아무에게나 뿌려대는 것으로 3월 음력 보름에 열리며 이날만은 카스트 계급을 무너트리는 축제이다. 나도 물감을 좀 얻어맞았으나 무슨 염료인지 1-2시간이 지나니 자연히 없어졌다.
리스본 시가는 로마처럼 7개의 언덕으로 된 도시인데 그 공원 오른쪽 언덕에 인도인들의 촌이 있다고 했다. 젊은 인도 여인들의 관능적인 춤 구경을 한참 하다가 호텔로 돌아와서 가이드와 포르투갈의 인구 구성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침대에 누어서 포르투갈에 대해서 나의 인상과 인식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돈 주앙 1세의 동상이 있는 픽데이라(Figueira) 광장. 호시우 광장 바로 옆에 있다(왼쪽). 전차
-언어 그리고 사람들
리베리아 반도에는 본래 켈트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리베리아 반도를 한반도로 비교 하자면 스페인을 서울로부터 경상도, 전라도라 할 수 있겠고, 포르투갈은 강원도쯤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홀대받은 유태인, 무슬림 등 소수 족들이 섞여서 살고 있다. 지금은 또 중동의 소용돌이에서 난민들이 슬그머니 포르투갈에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기원전 3 세기쯤에 오늘날 튀니지아에 있었던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아프리카에서 리베리아 반도, 프랑스, 그리고 알프스 산을 넘어 로마를 쳐들어 간 적이 있다. 그 후에 전략적인 중요성을 느낀 로마가 이 리베리아 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는데 스페인 쪽에는 나중에 황제를 몇 명 배출한 군단 본부를, 그리고 포르투갈 지역에는 야전군 병졸들을 주둔시켰다. 이것이 오늘날에 스페인어와 포르투갈 언어의 갈림이다. 물론 초기에 페니키아 사람, 로마 멸망 후 반달족, 그리고 이슬람의 무어인등 많은 인종이 뒤섞기는 했지만 이것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언어와 종족의 뿌리이다.
-왜 IMF 구제금융을 받을 만큼 오그라들었나?
한때 교황이 ‘스페인은 서쪽으로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하면서 경쟁을 피하도록 할 만큼 포르투갈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인도에서는 향료를, 중국에서는 비단과 도자기를 수입하기도 하고 그리고 일본까지 진출하였다.
그런데 이러하던 포르투갈이 IMF에서 받은 구제금융을 2년 전에야 겨우 갚고 정상화 되었지만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왜 이 꼴이 되었는가?
내가 가이드에게 스페인은 역사에서 보자면 중미, 남미에서 죽이고 약탈하고 또 메스티조, 즉 원주민과 혼혈족을 낳는 등 맹렬했던 것과 달리 당신들은 그저 무역이나 하며 돈만 벌었지 좀 잔인(?)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브라질도 정복이 아니라 망명정부가 아니냐 했더니, 가이드가 싱긋 웃더니 말했다.
“일리는 있다. 사실 마야와 잉카 족들은 매우 호전적으로 스페인 군대와 싸웠다. 그러나 브라질 지역 아마존의 인디언들은 매우 양순해서 그냥 그들과 어울러 살았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앙골라, 모잠비크, 적도 기니 사람들에게 잔인한 살육도 벌였고, 노예시장을 처음으로 폐기는 했지만 사실 노예시장을 처음 벌린 것도 포르투갈이다. 나의 생각은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식민지를 원료 공급원으로 하여 산업화를 못 이룬 것이 원인일 것이다. 사실 스페인도 별별일 없지 않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진정 그 이유는 좁은 땅덩어리 그리고 세계를 제압할 인구가 못 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또한 같은 켈트족 후예지만 스페인은 활기찬 플라멩고 춤을 즐기지만 포르투갈은 검은 옷을 입고 어둡고 애절한 파두(fado)를 즐기는 것처럼 밝고 활기찬 생동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파두의 골목이라고 하는 알파마(Alfama) 거리 풍경. 착 가라앉은 노래가 나올 만하다(왼쪽). 뚝뚝이 택시.
-뚝뚝 오토바이
다음날 아침부터 리스본 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내가 그 동안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서 눈높이가 높아졌나? 유럽 어디서나 보이는 성당, 플라자, 왕궁 등 모든 것이 은메달이나 동메달이라고 할까. 아니면 지금까지 보아온 것들과 비교하자면 무언가 2%가 부족한 것 같았다.
가장 화려하다는 Liberty Ave는 규모가 조금 작기도 했지만 프랑스의 상젤리제 거리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람불라스 거리가 연상 된다. 깨끗하기도 하다. 그러나 거리에 사람들이나 상가가 좀 한산했다.
시내 중심에 아비스 왕가를 세운 돈 주앙 1세의 동상이 있는 피게이라 광장(Prasa Figueira) 과 동 페드루 4세의 동상과 분수가 있는 호시우 광장(Rossio Square)은 그런대로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떠들썩했다.
물론 관광용 마차도 있었지만 태국에서 보았던 삼륜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소위 ‘뚝뚝 오토바이’가 이곳에 있어 흥미로웠다. 그런대로 성당을 구경하고 바다처럼 넓고 옛날에 해외로 진출했던 강가에 지진 해일로 새로 건축된 선착장에 필립 2세의 동상이 서있는 광장, 그리고 강가에 해적 등 외침을 막으려고 세워진 포대 그러나 한참 항해 무역으로 돈이 넘쳐나서 외형을 화려하게 지으라는 마누엘 왕의 명령으로 조각품으로 쌓여진 건물, 그리고 아프리카의 항로를 열어 포르투갈이 해양왕국으로 우뚝 세운 아비스 왕 돈 주앙 1세의 셋째 아들 엔리케 왕자를 기려서 만든 엔리케 해양 대학교 기념탑, 그리고 인도까지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의 이름을 딴 17킬로미터가 넘는 리스본의 타그스 강 위에 샌프란시스코 다리를 연상시키는 고가교 등을 둘러보았다.
-해물 라이스
늦은 저녁이 되었다. 피곤한 몸이었으나 뚝뚝 오토바이를 타고 알파마(Alfama) 골목을 찾았다. 관광객을 위한 파두(fado) 음악 연주하는 곳이 있었으나 비싸기만 하고 재미가 없다하여 그 골목의 자그마한 식당을 찾았다.
스페인의 빠에야 비슷한 해물라이스(해물 꿀꿀이 죽 같았다)를 먹으면서 파두 그리고 포르투갈 대중가요(?) 비슷한 노래를 부르고 박수치고 떠들썩한 이곳 현지인들이 즐기는 대중식당 같은 곳에서 밤을 즐겼다.
<다음에 계속>
<
이영묵 전 워싱턴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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