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모두에게 공평이 흘러 참으로 힘들던 2016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갔다. 한해가 바뀌었다고 크게 달라질게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2017’이란 새이름으로 배달된 일년에 희망을 걸고 싶다. 정유년 붉은 닭띠에 거는 소망의 메시지들이 신문과 방송에 가득하고, 카드와 e메일과 휴대폰을 통해 날아오는 파랑새 같은 덕담들과 새해 인사들이 고맙고 정겨운 1월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인사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 곁에 차곡차곡 저금되는 무수한 복들이 2017년에 겪을 고통과 시련을 거뜬히 날려주길 소망한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으니 우리는 새 희망을 품고 새 꿈을 꾸어도 좋으리라. 그러나 '좋아지겠지’ 혹은 ‘잘 될거야' 등의 막연한 희망이나 근거없는 낙관은 오히려 큰 절망과 지독한 우울함과 견딜 수 없는 자책을 안겨줄 수 있다.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하는 희망은 ‘여기에서 지금 (Here & Now)’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바라보는 건강한 희망이어야 한다.
2차 세계 대전 중 아우슈비츠에 수용됐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그의 책 ‘포로수용소에서’에서 막연한 희망의 위험성을 소개한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1944년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일주일 사이 전례 없이 재소자 사망률이 높아졌다. 갑자기 중노동이 늘었거나 전염병이 돌아서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던 많은 유대인들이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극심한 절망에 시달리다가 결국 사망까지 이르게 되었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소개된 '스톡데일 패러독스' 사례 또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지나친 낙관주의에 사로잡힌 사고방식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 때 8년간 포로로 잡혀있다가 석방된 뒤 전쟁영웅이 된 미국의 스톡데일 장군에게 누군가 "감옥에서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근거 없이 낙관과 비관을 오간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막연히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다가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절망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맙니다"라 답하였다.
그렇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발은 땅을 딛고 서서 현실을 인정하고 ‘여기에서 지금 (Here & Now)’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아무 힘을 가지지 못하고 아무 것도 바꿀 수가 없다. ‘후회’는 정신적 에너지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걱정과 불안’은 정신적 에너지가 미래에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과거와 미래에 현재의 에너지를 쏟는 일은 현실의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helpless & powerless)에 깔려 죽게 하는 행위이며, 결국 우울증이나 두려움에 스스로를 결박하는 일이다. 'Here & Now'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과거나 미래에 가있는 생각을 현재 (Here & Now)로 끌고오는 방법 중의 하나는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귀에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보고, 숨을 깊이 들이 마시며 냄새도 맡아보고, 먹을 때 맛과 음식의 질감을 음미해 보고, 손으로 자신과 가까이 있는 것을 만져봄으로써 과거나 미래에 가있는 정신과 마음을 현재의 나로 가지고 오는 것이다.
자식이 뜻대로 안된다면, 배우자와 의견이 너무 달라 외롭고 힘이 든다면, 지금 하는 일에 만족을 못 느끼고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버겁다면, 가슴 아프지만 그게 지금 나의 현실임을 겸허하게 인정하자. '언젠가는 변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나를 좌절하게 하는 건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나 바꿀 수 없는 현실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든 막연한 희망과 남이 바뀌길 바라는 나의 기대임을 인정해야 한다. 대신, 이 현실 앞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Here & Now'를 살아가는 힘있는 새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counseling@fccg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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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가정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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