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 ‘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쇼팽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여성 한 명을 뽑자면 그보다 6살 연상인 소설가 조르주 상드(Georges Sand, 1804~1876)이다. 그녀는 당대 최고 인기 소설가였다. 첫 작품 <앵디아나(Indiana)>가 많은 인기를 얻으며 단숨에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인이라 불어로 소설을 썼지만 영국어로도 번역되어 영국 등지에서 인기를 누렸다. 두 사람은 1836년, 프란츠 리스트의 연인인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살롱에서 우연히 만난다. 쇼팽은 시가를 피우는 남장을 한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먼저 호감을 느낀 상드가 장문의 편지로 쇼팽에게 자신의 사랑을 호소한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다른 성향을 가진 서로에게 끌렸던걸까? 두 사람은 9년이란 시간을 함께한다.
마요르카, 그리고 노앙에서의 생활
상드는 쇼팽의 건강과 작곡 생활을 위해 그에게 스페인 마요르카 섬으로 휴양 가기를 권했다. 그녀는 쇼팽을 돌보기 위해 파리 사교계를 떠나는 큰 결심을 했다. 쇼팽이 작곡을 할 때 상드는 옆에서 그의 음악을 들으며 소설을 쓰곤 했다. 마요르카 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쇼팽은 24개의 전주곡 (Preludes)을 완성한다. 하지만 반듯한 가구 하나 없이 변변치 않은 식사를 이어가야 했던 생활은 예민한 성격을 가진 쇼팽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결국 그의 병세가 악화되자 그들은 마요르카 섬을 떠나 상드의 고향인 프랑스 중부의 노앙(Nohant)으로 이주한다. 이 곳에서 대작인 피아노 소나타 2번과 3번이 쓰여졌다.
쇼팽의 또 하나의 로맨스, 조국
특히 피아노 소나타 2번의 3악장인 ‘장송행진곡’이 유명하다. 폴란드에 대한 애국심을 품은 쇼팽은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애도로 장송행진곡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B플랫단조 주제 선율을 통해 어둡고 장엄한 장송의 행렬이 묘사된다. 작곡된지 10년 후인 1849년 쇼팽의 장례식에서 그의 장송행진곡이 연주되기도 했다. 이 선율은 당시 유럽인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고, 장례식에서 사용하는 일상적인 음악이 되었다. 1907년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잉마르 베리만 (Ingmar Bergman)의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의 장례식 장면에도 이 음악이 삽입되었다. 대중적으로도 널리 유행하여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를 위한 ‘장송행진곡’도 많이 등장하였다.
이렇게 쇼팽은 상드와 함께하며 많은 대작을 작곡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의 사랑은 지치고 변색됐다. 그녀의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쇼팽이 사랑한 여인은 오직 그의 어머니 (조국)이었다”라고 말하며 조국을 그리워하던 쇼팽을 이해하고 폴란드 혁명을 지지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도 가녀린 여자였다.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편지 한 통으로 쇼팽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그 후 병세가 더 악화된 쇼팽은 결국 숨을 거둔다. 이렇게 그는 상드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어쩌면 쇼팽이 죽는 순간까지 한없이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것은 조국 그리고 첫사랑인 그와트코프스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 가운데 대부분의 대작들은 상드와 함께 한 9년동안 만들어졌기에, 만약 상드가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지 않았더라면 쇼팽은 더 오래 살아 더 많은 대작들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의 유언대로 유해는 파리에 남겨졌으나 심장은 폴란드의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다.
“여기 파리 하늘 아래 그대가 잠들고 있으나, 그대는 영원히 조국 폴란드의 땅 위에서 잠들어 있노라.” - 쇼팽의 비문 중에서
문의 bhlee0908@gmail.com
*오늘의 추천 감상 목록: 낭만주의 시대 대표적 작곡가 쇼팽
1. Waltz No. 19 Op. Posth. (3분) : 조국 폴란드를 그리워했으나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에 묻힌 쇼팽을 그린 예르치 안차크 감독의 영화 ‘쇼팽 사랑의 열망’ (2002)의 주제곡이다.
2. Waltz Op. 42 (4분) : 1840년 봄, 상드의 프랑스 노앙(Nohant)의 저택에서 작곡되었고, A플랫장조를 통해 노앙으로 이주한 후의 행복한 삶이 연상된다.
3. Polonaise in A flat Major, Op.53 (8분) : 폴란드 대표적 민속 춤곡으로 그의 7개의 폴로네이즈 중 특히 웅장한 구성과 표현 때문에 ‘영웅’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4. Etude Op.10 No.5 (2분) : 오른손은 검은 건반만을 위주로 한 셋잇단음표가 특징이며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2008)의 피아노 배틀의 곡 중 하나로 유명하며 극 중 백건으로 편곡한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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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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