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주말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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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지게 생긴 데보라 보다는 큰 누나 같았고 동안에 수줍어하는 구스타보 두다멜은 남동생 같았다(사진). 4월29일 할리웃 보울에서 있은 시즌개막 축하파티에 먼저 등장한 데보라 보다 LA필 사장은 “오늘은 여름밤을 즐기는 날”이라고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었다.
뉴욕 필의 사장을 오래 지낸 보다는 뛰어난 사업가로 LA필을 미 굴지의 오케스트라로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했다. 파티에는 칵테일과 함께 일식ㆍ미국식 진수성찬이 제공됐는데 난 한국 소주와 맛이 비슷한 일본 쇼추 칵테일을 즐겼다.
시즌 내용 소개는 보다가 질문하고 LA필 상임지휘자인 두다멜이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보다는 두다멜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얘기를 나눴는데 두다멜의 영어가 아직 완전치 못해서 그런지 두다멜의 발언에 바짝 신경을 쓰면서 틀린 말은 즉시 수정하곤 했다. 두다멜이 좀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두다멜은 두 이탈리아 오페라 ‘팔리아치’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오케스트라 공연(7월 27일)에 관해 설명하면서 할리웃 인근 정경이 이탈리아와 비슷해 이들 오페라 연주가 잘 어울린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지휘자 칼로 마리아 줄리니가 LA필의 지휘자 직을 수락했을 때 사람들이 “아니 어쩌자고 LA필을 맡느냐고” 의아해 하자 줄리니는 “LA의 정경이 이탈리아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두다멜은 이어 자신의 첫 영화음악도 연주된다고 말했다. 두다멜은 스페인으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영웅 시몬 볼리바(에드가 라미레스)의 삶을 그린 영화 ‘해방자’(The Liberator-8월22일 개봉)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이 곡은 7월 31일에 연주된다.
조국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한 두다멜은 “할리웃에 살면서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것은 있을 만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단지 소량의 음표를 지었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그는 이어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8월29일과 30일 공연)를 찬양하면서 “내가 영화음악을 또 작곡할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두다멜은 과거 몸에 꼭 끼는 새빨간 짧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중국의 젊은 여류 피아니스트 유자 왕(7월17일 연주)의 출연을 얘기할 때는 눈알을 굴려가면서 “뷰티풀”이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다.
난 이날 내가 늘 벼르던 두다멜에 대한 질문을 할 기회를 노렸으나 놓치고 말았다. “당신은 해리 벨라폰테가 부른 ‘베네수엘라’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칵테일 바에 있는 보다에게 다가가 우선 날 소개했더니 보다가 내게 “당신 뭐 마시느냐”고 묻는다. 내가 “쇼추 칵테일인데 맛있다”고 했더니 보다도 “그렇다”고 동의했다.
이어 내가 그에게 “누군가 두다멜에게 내가 묻고자 하는 이 질문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보다는 “난 그 노래 모르지만 두다멜은 아마 알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보울의 흰 조가비 지붕 아래 무대에 서니 고교생 때 할리웃 보울 오케스트라의 사진이 찍힌 해적판 LP의 재킷을 보면서 현실이 아니라 마치 영화 속의 장소와도 같았던 할리웃과 음악을 동경했던 기억이 난다.
할리웃 보울은 세계적 명소여서 영화와 TV에도 자주 나온다. 휴가 받은 수병인 프랭크 시내트라와 진 켈리가 춤추고 노래하는 즐거운 뮤지컬 ‘닻을 올려라’(Anchors Aweighㆍ1945)가 그 대표적인 영화다. 여기서 둘은 보울 무대에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제2번’을 연습하는 저명한 피아니스트 호세 이투르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보울이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들로는 프레데릭 마치와 재넷 게이너가 공연한 ‘스타 탄생’( A Star Is Bornㆍ1937)과 프레드 맥머리와 바바라 스탠윅이 나온 걸작 필름 느와르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ㆍ1944)이 있다. ‘이중 배상’에서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보울에서 연주된다.
보울이 나오는 TV 드라마로 멋있는 것은 콜롬보 시리즈 ‘에튀드 인 블랙’(Etude in Black). 탁월한 지휘자인 존 캐사베티스가 보울 연주 중간 휴게시간에 장소를 떠나 자신과의 혼외정사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여류 피아니스트를 살해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와 지휘봉을 잡는다.
보울은 현재 1981년에 개수한 벤치를 새 것으로 교체 중에 있다. 보울시즌은 6월21일 불꽃놀이로 말미가 장식되는 ‘홀 오브 페임’ 콘서트로 시작된다. 3일에는 제12회 할리웃 보울 한국일보 음악대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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