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테 안경 속에 겁먹은 토끼눈을 한 우디 알렌(78)은 리셉션장인 뉴욕의 런던 호텔에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나타나서도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우디는 “러시아워에 차를 타고 오는데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길을 막아 늦었다”면서 시치미를 뚝 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모습이 천진난만한 아이 같아 기다리다 피곤한 마음이 볕에 눈 녹듯 풀렸다.
이달 초 ‘아메리칸 허슬’ 등 몇 편의 영화 프레스 정킷차 뉴욕엘 다녀왔다. 우디를 만난 것은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그를 2014년도 골든 글로브 생애 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 수상자로 선정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우디를 만나기는 이번이 세 번째로 나는 우디가 리셉션장에 들어서자 그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덥석 붙잡고 “나 한국인인데”라고 자기를 소개하자 우디는 구면인 탓인지 “알아 알아”라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사진)우디는 이어 대뜸 내게 “나 마침내 내년에 한국에 갈 거야”라면서 “순이가 한국에 가고 싶어 죽겠다고 보챈다”며 은근히 아내 사랑을 과시했다. 비행기 타기를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우디로서는 대단한 자기희생(?)이다.
난 우디의 손을 계속해 붙잡은 채 “야 정말 반가운 소식이네. 가면 멋진 구경하게 될 거야. 약속하는 거지”라고 다그치자 우디는 “간다니까”라고 응수했다.
난 한국 부인과 살면서도 평소 한국 음식 안 먹는다는 우디가 늘 마음에 안 들어 이번에도 또 “당신 한국 음식 여전히 안 먹느냐. 먹어 보려고 시도라도 해 봤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우디는 “야, 내 손 좀 돌려 줘”라며 자기 손을 내 손에서 빼낸 뒤 “먹으려고 해 봤어. 그런데 너무 맵고 무미건조해 못 먹겠어. 그러나 순이와 내 딸들은 한국 음식을 무척 좋아하지”라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시늉을 지었다.
우디가 내년에 한국에 가면 진수성찬으로 차린 한국음식을 먹을 것이 뻔한데 이를 계기로 그의 한국 음식 기피증이 치료되기를 바란다.
우디는 이어 “내게 생애 업적상을 주다니 내가 죽음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간 기분이네”라며 뼈 있는 농담을 했다. 잠깐이었지만 즐거운 만남이었는데 우디가 떠날 때 “순이에게 안부 전해 줘”라고 했더니 우디는 “그럴 게”라며 다짐했다.
우디의 리셉션에는 그의 영화 ‘푸른 재스민’에 나온 바비 카나발리와 샐리 호킨스 및 이 영화의 배급사인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의 공동사장인 마이클 바커와 탐 버나드 등도 참석했다. 우디는 얼마 전에 자기 영화 잘 봐 달라고 친필 서명한 영화의 포스터를 보내 왔다.
그런데 할리웃과 함께 LA를 싫어하는 우디가 내년 1월12일에 열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리셉션에서 바커 사장은 내게 “우디는 시상식에 자기 대신 다이앤 키튼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귀띔해 줬다. 키튼은 ‘애니 홀’과 ‘맨해턴’ 등 우디의 영화에 출연한 스타로 그의 과거 연인 중 한 사람이다.
우디는 작년 자기가 쓰고 감독한 ‘파리의 자정’이 오스카 각본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을 때도 LA에 오지 않은 앤타이-할리웃 뉴요커다. 그는 LA를 문명의 불모지로 여기는 사람으로 “LA에서 문명적으로 딱 한 가지 좋은 것은 빨간 신호에도 우회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비아냥댄 바 있다.
우디가 순이(42)를 극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2010년 토론토 영화제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인터뷰를 통해 알았다. 내가 그 때 순이의 근황을 묻자 우디는 “순이 잘 있어. 내가 아내로 순이를 얻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면서 “순이는 매력적이요 지적이며 친절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여자”라고 순이를 찬양했다. 순이와의 결혼이 우디에게는 세 번째 결혼으로 우디는 “이번에야 말로 운이 잭팟을 터뜨려 이뤄진 결혼”이라고 행복해 했었다.
철저한 도시인인 우디의 얼굴을 보면 실존적 고뇌의 상징과도 같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슬픈 미소를 짓는 피에로를 연상케 된다. 유머가 원래 습기의 의미를 지닌 것일진대 우디야 말로 완벽한 유머리스트다. 우디는 영화에서 현대 도시인들의 불안과 아픔과 고독을 신랄한 위트와 냉소적인 지성 그리고 멜랑콜리한 낭만적 터치로 그려 시대병에 시달리는 도시인인 나는 그의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우디는 또 유명한 클래리네티스트로 그가 이끄는 뉴올리언스 재즈밴드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맨해턴의 칼라일 호텔에서 연주를 한다. 우디가 1997년 이 밴드와 함께 유럽 순회 연주하는 모습을 찍은 영화가 ‘와일드 맨 블루스’로 여기서 순이가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적으로 소개됐다.
이 밴드가 23일 하오 8시 UCLA의 로이스홀에서 연주한다. ‘웰컴 투 코리아, 우디.’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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