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인 나는 거의 매일 같이 영화와 TV 스타들을 인터뷰한다. 영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인간으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보고 또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들을 수 있는 기회여서 인터뷰 때마다 작은 흥분감과 함께 즐거움을 경험하곤 한다.
배우들이 영화에서 다양한 인물들로 변모하듯이 실제의 그들도 가지각색에 천차만별이다. 인터뷰가 즐겁다는 듯이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구시렁대면서 대답하는 심술꾸러기가 있고, 정색에 새침을 떨면서 마치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듯 하는 심각형도 있고, 제 성질을 못 견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자도 있으며, 인터뷰가 죽기보다 더 싫다는 듯이 아주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배우도 있다.
이런 천태만상의 배우들 중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젠틀맨 호인 조지 클루니다. 그는 인터뷰장에 들어오면서부터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하이”를 반복하면서 마치 친정에나 돌아온 듯이 행동, 클루니와의 인터뷰는 늘 초만원을 이루곤 한다. 클루니는 유머와 위트가 풍부한데다가 무슨 질문을 해도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답을 하는데 지극히 사적인 질문에도 지혜롭게 피해 갈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다.
이와 반면 해리슨 포드는 마음에 안 드는 질문에는 “다음 질문” 하면서 대답을 회피하는 심술첨지요, ‘매드 닥’ 멜 깁슨은 자기 비위를 건드리는 질문에는 황소 눈알을 굴려가며 씩씩거리면서 “이봐 친구야, 난 그런 것에 아랑곳 안 해”라며 고함을 지른다.
또 코미디언 벤 스틸러는 설에 따르면 우리가 한 번도 골든글로브상 후보에조차 올려주지 않았다고 뿔이 나 오랫동안 인터뷰를 거절해오다가 최근 ‘월터 미티의 비밀의 인생’으로 우리와 다시 만났다. 수줍음 많은 키다리 니콜 키드만은 키 작은 사람을 생각해 인터뷰에 맨발로 나오는 사려 깊은 여자인 반면 (우리는 인터뷰 후 배우와 사진을 찍는다), 카트린 드뇌브는 우리와 악수조차 안 한다.
션 펜은 자기가 감독한 영화 외에는 아예 우리와 인터뷰를 안 하나, 굉장히 유식한 로버트 다우 주니어도 만나면 즐거운 사람이고, 안젤리나 졸리는 매우 진지한 형이나 그의 파트너 브래드 핏은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사람 같다.
인터뷰 때마다 내가 놀라는 것은 배우들의 유창한 말솜씨와 해박한 지식이다. 말 잘하는 것이야 배우들의 직업적 조건이라 치고 그들의 국제, 정치, 사회, 환경 및 인권문제 등에 대한 거침없는 대답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단순히 ‘딴따라’들만은 아니다.
그런데 스타들 중에 내가 가장 싫어하고 역겨워하는 사람이 오스카상을 탄 연기파 로버트 드 니로(70ㆍ사진)다. 지난 주말 라스베가스에 그와 마이클 더글러스, 모간 프리맨, 케빈 클라인이 공연한 서푼짜리 심심풀이 땅콩용 코미디 ‘라스트 베가스’의 정킷 차 다녀왔다. 이 영화는 노인판 ‘행오버’로 4명의 거물 스타들이 나온 영화치곤 수준 미달의 유치한 것이다.
드 니로는 인터뷰장에 들어오기를 소가 도살장에 들어오듯이 하는 배우로 인상을 잔뜩 쓰면서 입장한다.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시종일관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오만상을 찌푸려가면서 쓴 맛을 다시곤 하는데 몇 년 전의 인터뷰에서는 제작자와 함께 나와 모든 대답을 “나보다 이 사람이 더 잘 아니 그에게 물어보라”며 떼어 넘기다시피 했다.
우리와 사진을 찍을 때도 마지못해 찍는다는 듯이 인상을 쓰는데 질문에 대한 대답도 아주 불성실하고 짧다. 오히려 질문이 더 길고 그의 대답은 한두 마디 정도다. 이번에도 드 니로는 그런 태도로 인터뷰에 나왔는데 난 그런 그를 보면서 자꾸 그가 영화에서 자주 연기한 성질 고약한 갱스터가 연상돼 기분이 매우 나빴다. 이 날도 더글러스와 프리맨 및 클라인 등은 모두 즐겁게 우리와 인터뷰를 했는데 유독 드 니로만 혼자 심통을 부렸다.
그가 우리들의 질문에 보낸 대답을 열거한다. “누가 알아” “대츠 오케이” “좋았어” “예스” “노” “음” “그것엔 답 못하겠어” “기억이 안나” “잘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겠지” “그 건 말 하기엔 너무 복잡해” “잊어 버렸어” “자세히 말하기 싫어” “메이비” 등이다. 물론 이런 ‘전치사’ 다음에 지극히 간단한 몇 마디가 있다. 과연 과묵한 사나이라고 하겠는데 계약 때문이긴 하겠지만 이러자면 왜 구태여 인터뷰에 나왔는가 묻고 싶다. 인터뷰 후 “X릭” “X스타드”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난 사실 이번 인터뷰 전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하려고 준비했었다. “당신은 인터뷰를 마지못해 하는데 이왕 나온 김에 좀 기분 좋은 척 할 수는 없는가. 척하는 것이 배우의 전문 아닌가.” 그런데 차마 묻지를 못했다. 다음에 묻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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