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 시상시즌이 되면 필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주말도 없이 매일 같이 배우와 감독을 인터뷰하고 영화를 봐야(하루에 두 편 볼 때가 허다하다) 하는가 하면 뉴욕과 라스베가스와 런던으로 프레스 정킷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HFPA는 매년 1월에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주관처여서 시상시즌이면 이렇게 바쁜 것이다.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상의 길잡이요 일단 한 작품이 상을 받게 되면 해당국의 명예와 함께 영화 흥행에도 큰 영향을 줘 영화사들의 로비가 치열해진다.
골든글로브가 아카데미상과 다른 점 중의 하나가 외국어 영화상 부문이다. 아카데미는 이 부문 출품작을 나라마다 1편으로 제한한 반면 HFPA는 편수에 제한이 없다. 그래서 매년 여러 나라에서 수상 후보작으로 2~3편씩 출품하는데 올해 경우 핀란드가 3편 헝가리는 2편을 각기 내놓았다.
특히 필자는 HFPA의 외국어 영화위원이어서 전 세계 각국에서 출품한 영화들을 가능하면 전부 보려고 애를 쓰나 수십 편에 이르는 외국어 영화들을 다 본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어느 한 나라의 작품이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게 되면 거의 대부분 오스카상도 받게 돼 있어 각 나라들은 오스카상 후보 출품작을 골든글로브에도 출품한다. 따라서 상을 노린 출품국가의 로비가 심한데 매년 이 로비에 앞장서는 것이 각국의 LA 주재 총영사관이다.
로비행위는 주로 시사회에 총영사가 참석해 인사말을 한 뒤 영화가 끝나면 와인을 곁들인 리셉션을 갖는 것이다. 이 자리에는 보통 해당 영화의 감독이 참석한다.
10일에도 3시간 반짜리 체코영화 ‘타오르는 관목’ 시사회에 체코 총영사와 함께 영화를 감독한 폴란드의 여류 명장 아니스카 홀란드가 참석했다. 필자는 작달막한 키에 인자하게 생긴 홀란드와 악수를 나누면서 “이렇게 직접 만나 보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더니 홀란드는 “지난해에 부산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좋은 시간을 보냈다”며 미소를 지었다.
또 13일에는 헝가리의 라즐로 칼만 총영사가 참석한 가운데 출품작 ‘아글라야’의 시사회와 리셉션이 있었고 15일에는 그리스의 출품작 ‘웟 이프’ 시사회 후 역시 총영사 관저에서 리셉션이 있었다.
프랑스 총영사도 매년 관저에서 리셉션을 연다. 또 얼마 전에는 영국의 총영사관저에서 감독과 출연진이 동석한 중에 TV 미니 시리즈 ‘백장미 여왕’(우리는 TV 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을 위한 리셉션이 있었고 앞으로도 독일, 스위스, 루마니아 및 멕시코 총영사 등이 마련하는 리셉션이 있을 예정이다.
이들이 이렇게 로비를 하는 까닭은 상을 받으면 자기 나라의 명예일 뿐 아니라 영화를 통한 국가 선전과 함께 관광수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영화 때문에 한 나라의 관광수입이 부쩍 늘어난 경우가 우디 알렌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와 ‘파리의 자정’이다. 이 두 영화가 개봉된 뒤 바르셀로나와 파리의 관광객이 예년에 비해 부쩍 느는 부수입이 있었다.
그러니까 총영사가 자국의 출품작을 위해 별로 큰 돈 안들이고 리셉션을 여는 것은 국익을 위한 홍보활동인 셈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필자가 HFPA 회원이 된 지난 6년간 아직까지 LA주재 한국 총영사관이나 문화원에서 골든글로브를 위한 본격적인 로비활동을 벌인 것을 본 적이 없다.
올해 한국의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 출품작은 강이관 감독의 ‘범죄소년’(Juvenile Offenderㆍ사진)이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서 버림받고 범죄소년이 된 아이가 뒤늦게 나타난 어머니와 함께 재생을 시도하나 실패하는 유럽풍의 예술적 영화다. 연기도 좋고 잘 만든 영화이긴 하나 상을 받기엔 너무 소품이라는 핸디캡이 있다.
그러나 ‘범죄소년’은 제작사인 남원과 해외 판매사인 화인컷이 소규모의 회사여서 예산 부족으로 골든글로브는 제치고 오스카상에만 치중하기로 했다고 황수진 영화진흥위 미국소장이 말했다. 따라서 다행이도 총영사관이나 문화원이 로비 수고를 안 해도 되게 됐다.
물론 총영사나 문화원장이 공사다망한 줄은 알지만 우리나라 영화가 골든글로브 나아가서 아카데미상(유감스럽게도 한국 영화는 일취월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한 번도 이 두 개의 상 수상은커녕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후보에 오르도록 운동을 하는 것도 하나의 공적인 일임을 깨달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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