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네들의 천 몇백년 역사에 비해 일천(日淺)하다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역사와 그 사실은 동반하는 예술 문화의 유산의 차이 때문인지 불란서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 불란서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미국의 영화배우가 바로 제리 루이스다. 조금은 바보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루이스는 무성 영화 시대의 희극배우들을 연상시키는 어색한 몸짓과 그에 뒤따르는 작은 사고들로 사람을 웃기는 특이한 재주꾼이었다.
어쩌면 불란서 사람들이 루이스를 명배우로 꼽는 이유도 그들의 문화 우월감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좌우간 그의 영화들 중 하나는 루이스가 신데휄라(cinderfella)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계모와 계모의 두 딸에게 새벽부터 밤까지 하녀처럼 부림을 받다가 극적으로 왕자비가 된 신데렐라의 남성 대칭이랄 수 있는 그 영화에는 루이스가 그 특유의 표정과 동작으로 부엌일 등 가사 전반을 돌본다기보다 망가트리는 과정이 흥미있게 묘사된 것으로 기억된다.
갑자기 ‘신데휄라’라가 생각나는 이유는 최근 나의 몰골이 영락없이 그와 비슷한 식부생활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집 앞마당에 여기저기에 파놓았거나 네모꼴의 나무틀을 만들어 일구어놓은 손바닥 만한 밭에서 채소 길러먹기를 좋아하거나 심지어는 잡초 뽑기라도 안하고는 못 배기는 내 아내가 자기 나이 생각을 잊고 무리를 했기 때문에 약 3주 동안 허리를 못 쓰게 되었고 통증이 허리에서 넓적다리로 오르내리는 바람에 집안에서조차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휠체어까지는 아니지만 아들을 시켜 사온 네 바퀴 달린 보행 보조기구에 의존해야 간신히 설 수 있는 아내가 가사를 돌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부엌 설거지나 가끔 해줄 뿐 집안이나 부엌일 특히 음식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나로서는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마련이라는 게 엄벙덤벙 실수의 연속으로 꼭 신데휄라 꼴이었다. 아침은 캠블 회사의 청키 숩(Chunky Soup)을 이것저것 바꾸어 가며 데워서는 빵 잔 조각들을 넣어 먹으면 간신히 해결되곤 했었지만 며칠을 한 회사제품만 먹다보면 역겨워지는 게 사실이었다. 점심은 라면이나 냉면 종류가 다양해서 별로 싫증이 안 났지만 제일 큰 문제가 저녁식사였다. 두 서너 번은 자식들이 사왔거나 만들어주었지만 아이들도 바쁜 생활이라 오지 말라고 얘기하고는 아내가 의자에 앉아서 지시하는 대로 오븐에 불을 켜고 냄비를 올려놓은 다음 아내가 썰어 놓은 재료들을 넣고 볶자니 그 서툴기가 여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파가 안 들어갔으니까 파를 뽑아다 씻으라면 물에 씻은 다음 가위를 그것도 어색하게 들고 파를 짤라 넣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의 행동거지가 워낙 느리고 게으른 편이라 집안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아내가 심하게 아프기 전에 해놓은 빨래거리들을 정리해서 치우는데 며칠이 걸릴 정도였으니까. 강력한 소염제와 스테로이드 등 약물을 먹고는 어느 정도 차도가 있었지만 혹시 척추에 이상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해서 과거에 몇 번 갔었던 정형외과에도 다녀왔다. 의사는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척추에는 이상이 없노라고 안심을 시키고 좌골에 소염제 주사를 놓아주었기 때문에 며칠 사이에 많은 진전이 있어 다행이다.
그러면서 두 늙은이가 같이 살면서 노후의 건강관리 아니면 병 관리의 당면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가 아파도 배우자가 건강하면 그나마 내가 두어 주 동안 엉터리일망정 보행보조 기구를 아래 층 위층으로 나르며 칫솔에 치약을 묻혀 주는 등 조금만치라도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할 수 있겠지만 둘 다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 어찌할 것인지 답답한 생각이 든다.
자식들이야 자기들집 지하실로라도 들어오라고 하겠지만 그들에게 짐을 지우기가 선뜻 내릴 결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양로원에 들어가자니 노인들 특히 치매 현상의 노인들에 대한 폭력이나 학대가 사회 화제로 등장되는 현시점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다. 우리집 옆의 Mrs. 휴즈처럼 간병부를 24시간 상주시키는 마련도 있지만 적어도 하루에 200불씩 한 달에 6,000불 이상 되는 경비로 볼 때 튼튼한 장기 요양 보험이라도 있기 전에는 어려운 일이다.
나의 주변 사람들이 더러는 70대 그리고 80대에 하나 씩 둘 씩 사라지거나 또는 가족들이 돌볼 수 없는 처지라서 양로원에 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솟는다. 또는 아내가 나보다 먼저 죽는 경우 내 몰골이 얼마나 흉할 것인가도 걱정된다. 캘리포니아의 어떤 노부부가 75년 동고동락하다가 하루 이틀 사이에 죽어 사이 좋은 부부로 사람들 입에 회자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어려서부터 외우던 주기도문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왕국)이 임하여 계시록 21:4 대로 죽음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새 세상을 살아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자꾸 잡념이 생기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탓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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