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앵카(72)가 15세 때 작곡해 불러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다이애나’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이 나 역시 15세 때였다. 고1 때 학교를 땡땡이 치고 자주 가던 명동의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에서였다.
내게 연상의 여인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준 이 노래는 앵카가 동네 경찰서에서 일하던 4년 연상인 여비서 다이애나 아이웁에게 바친 구애의 노래. 그런데 앵카는 아이웁으로부터 어리다고 퇴짜를 맞았다.
난 이 노래를 들은 지 근 반세기만인 2000년과 2005년에 세리토스 공연센터서 앵카의 공연을 관람했었다. 그와 악수를 나누면서 내 10대 시절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레바논계인 앵카는 캐나다 오타와가 고향인데 너무 추워 어릴 때부터 집 떠날 생각만 했다. 12세 때 음악계에 나갈 마음을 먹었을 정도로 음악에 재질이 있었던 앵카는 꼬마 때부터 언젠가 베가스의 ‘랫 팩’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의 꿈은 후에 이뤄져 앵카는 시내트라가 리더인 ‘랫 팩’의 한 패가 되는데 앵카는 이 얘기와 함께 자신의 인간과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최근 나온 자서전 ‘마이 웨이’(My Wayㆍ사진)에서 상술하고 있다.
책은 그런대로 재미는 있지만 너무 가볍고 자화자찬 중구난방식인 데다가 같은 얘기를 중복하고 있다. 자기 친구는 지나치게 칭찬하고 라이벌은 은근히 헐뜯고 있는데 여자관계를 비롯해 솔직하긴 하나 깊이가 아쉽다.
앵카의 음악계 진출을 적극 지원한 사람이 그의 어머니. 그의 노래 ‘마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얘기다. 앵카는 ‘파파’도 불렀다. 14세 때 친구들과 밴드를 조직, 카니벌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처음 무대에 선다. ‘다이애나’로 틴에이저들의 열화와 같은 인기를 얻은 앵카는 이어 작곡한 ‘텔 미 댓 유 러브 미’와 ‘돈 갬블 위드 러브’를 들고 뉴욕으로 간다.
앵카는 자신의 음악인으로서의 장수비결은 작곡이 먼저고 노래는 그 다음이라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가 작곡한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시내트라, 프레슬리, 앤디 윌리엄스, 엥겔버트 험퍼딩크, 탐 존스 및 소니와 셰어 등.
시내트라의 빅 히트곡으로 시내트라와 앵카의 생에 새 전기가 된 ‘마이 웨이’도 앵카의 것. 앵카는 1967년 프랑스 칸 인근의 한 작은 마을에 묵을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애즈 유주얼’이라는 프랑스 노래를 듣고 그 판권을 사 ‘마이 웨이’로 편곡을 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앵카는 새 것을 수용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재능을 지녔다.
앵카는 10대 때부터 순회공연을 시작했는데 아침 9시에 시작해 하루 5~6회 노래하고 받은 돈이 달랑 300달러. 그와 같이 버스를 타고 공연 다닌 가수들로는 오티스 레딩, 에벌리 브라더스, 패츠 도미노, 버디 할리 등이 있다.
앵카는 고되나 즐거웠다고 기억하는데 그는 당시 고독의 경험을 ‘풋 유어 헤드 온 마이 쇼울더’같은 노래에서 한숨짓고 있다. 앵카는 이러느라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잃었다고 말한다. 앵카의 라이벌은 역시 10대들의 우상이던 바비 라이델과 프랭키 아발론. 그는 특히 제리 리 루이스를 싫어했고 바비 다린은 오만하다고 비난했다.
빅 히트곡들인 ‘유 아 마이 데스트니’와 ‘크레이지 러브’ 및 ‘마이 하트 싱즈’ 등으로 명실 공히 틴에이지 소녀들의 우상이 된 앵카는 일본 공연 때 자기에게 몸을 던지는 소녀 팬들과의 섹스와 함께 잦은 해외여행으로 알게 된 스튜어디스들과의 관계까지 낱낱이 고백하고 있다.
앵카는 10대에 백만장자가 됐는데 18세 때 모든 가수들의 꿈의 무대인 워싱턴 DC의 로터스클럽과 뉴욕의 코파카바나 무대에 섰다. 자기도 놀랐다고 자랑했다.
그는 영화에도 여러 편 나오고 영화음악도 작곡했는데 10대 영화의 단골인 배우 겸 가수 아넷 푸니첼로와 공연하다가 애인 사이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앵카는 자기가 출연도 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지상최대의 작전’의 음악을 작곡했다.
앵카는 자신의 노래는 사랑과 인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딸 다섯을 나아주고 38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 앤과의 이혼을 섭섭해 했다.
지나치게 장황한 것이 ‘랫 팩’과의 베가스 시절 얘기. 시내트라의 고약한 성질에서부터 베가스의 갱 세계 그리고 베가스를 가족타운으로 만든 스티브 윈과의 관계 등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있다.
아직도 연 100회 공연을 하면서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며 자신의 현재를 ‘내 생의 가을’이라고 부른다. 앵카는 자신의 생의 여정이 끝날 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잡다한 것들과 집과 자동차 그리고 상들도 아니요, 이 여정이 끝날 때 나를 따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각해 줄 내가 남겨둘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며 글을 맺었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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