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사흘간 패티 페이지의 ‘테네시 월츠’가 흐르는 테네시주의 로버트 알트만이 감독한 ‘내슈빌’엘 다녀왔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동료들과 함께 ABC-TV가 매주 수요일 밤에 방영하는 컨트리 뮤직 세계의 치열한 경쟁과 야심을 다룬 시리즈 ‘내슈빌’(Nashville)의 세트 방문차였다.
카우보이모자와 부츠가 LA의 티셔츠와 편상화처럼 흔한 내슈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공기를 느끼게 하는 푸른색이 가득한 전원도시다. 미남부의 친절과 쾌적을 말하는 ‘서던 하스피탤리티’와 ‘서던 컴포트’를 만끽하고 돌아왔다.
코맹맹이 소리로 심한 액센트를 써가며 말끝마다 “예 서”를 붙이는 우리를 태운 버스의 할머니 운전사 바바라의 어조가 멜로디처럼 정답다. 그런데 무슨 소린지 잘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술집마다 컨트리 송을 연주하는 바가 즐비한 브로드웨이를 지키는 모터사이클 경찰이 “여기는 내슈빌입니다”라며 자기 모터사이클에 올라 타 사진을 찍으라고 해 시키는 대로 했다. 근처의 소방관들도 “웰컴 투 내슈빌”이라며 인사를 하고 행인들도 “헤이”하며 아는 사람처럼 반긴다.
‘아, 이런 것이 서던 하스피탤리티로구나’하면서 바에 들러 싸구려 위스키 ‘서던 컴포트’를 마셨다. 달짝지근하니 맛이 별로다. 이보다는 보드카 칵테일 테네시 티가 술맛 난다. 내슈빌의 브로드웨이는 재즈를 컨트리 송으로 대체한 뉴올리언스의 프렌치쿼터다.
도착 첫 날 저녁 코리안스 베테런스 불러버드를 지나 컨트리 뮤직의 전당인 그랜 올 오프리 하우스의 전신으로 19세기 말에 교회로 세운 라이만 오디토리엄에서 시리즈 배우들과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들이 부르는 컨트리 송을 즐겼다. 테네시주가 원산지인 위스키 잭 대니얼스를 마시면서.
혹자는 컨트리 송을 ‘상민의 노래’라고 깔보기도 하나 난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 그것은 컨트리 송이 문자 그대로 소박한 서민들의 한 많은 사연들을 읊조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 입고 상심한 사람들의 일상사와 애환을 얘기하듯이 불러 애착이 간다. 에디 아놀드, 짐 리브스, 레이 프라이스, 바비 베어, 마티 로빈스 및 팻시 클라인 등이 내가 즐겨 듣는 가수들이다. 요즘 유명한 컨트리가수 키스 어반은 니콜 키드만의 남편으로 둘도 다른 많은 가수들처럼 내슈빌 인근에 산다.
라이만 오디토리엄에서 노래를 부른 젊은 시리즈 배우 조나산 잭슨은 프로가수인데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 나는 그를 만나 “난 컨트리 송을 들으며 자랐는데 노래들이 모두 슬퍼서 좋다”고 했더니 조나산은 “그래, 언제나 슬픈 노래들이 좋다”며 동의한다.
둘째 날 세트 방문에 이어 시리즈를 찍고 있는 셔만혼 심포니 센터에서 두 주연여우를 인터뷰 했다.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비바람이 치면서 남부 날씨의 변덕을 부렸다. 인터뷰 후 우리가 탄 버스에 뒤늦게 시리즈에 나오는 파워스 부스가 올라와 “하이” 하며 인사를 했다.
난 연기파로 바리톤 음성이 듣기 좋은 파워스에게 다가가 “당신과 꼭 악수를 해야겠다”면서 “서던 컴포트”라고 했더니 그는 반갑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한 ‘서던 컴포트’는 술 이름이 아니라 파워스가 나온 남부를 무대로 한 적자생존의 동명 액션 스릴러다.
저녁에 그랜 올 오프리를 구경했다. 이 쇼가 진행되는 그랜 올 오프리 하우스는 컨트리가수들의 메트 오페라로 여기서 노래를 불러야 본격적으로 컨트리가수의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컨트리 뮤직의 성소인 그랜 올 오프리 하우스에 앉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 무대에서 노래 부른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가수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랜 올 오프리는 장기 라디오 생방송으로 유명한데 이날 뜻밖에도 잿빛 머리의 베테런 릭키 스캑스의 노래를 들었다(사진). 열광하는 청중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신나게 즐겼다. 릭키도 말했듯이 컨트리 송은 신앙에 대한 얘기가 많다. 테네시주가 바이블 벨트인데다가 상처 받고 피곤한 사람들이 위안을 찾을 곳은 결국 신앙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구 70만인 내슈빌에 교회가 무려 1,200개가 있다.
돌아오는 날 컨트리가수들이 많이 사는 내슈빌 교외를 버스로 둘러봤다. 넓은 녹지대와 앤티벨럼 스타일의 저택에 이르는 긴 입구가 스칼렛 오하라의 타라를 연상케 했다. 내슈빌에 교회처럼 많은 것이 레코딩 스튜디오다. 1,200개 정도가 있는데 이는 뉴욕과 LA의 것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안내원이 자랑한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내슈빌에 정이 흠뻑 들었다. 서던 하스피탤리티의 마법인가 보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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