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보고 멋있다고 하면 좀 어폐가 있겠지만 도둑 중에 매력적이기까지 한 도둑이 보석도둑이다. 보통 사람들이 거액의 보석도둑 사건이 생기면 ‘거 안 됐네’라고 여기기보다 재미있는 일이 터졌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우선 그런 고가의 귀금속들은 특수층용으로 일반 서민들에게는 화중지병과도 같은 물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인명피해가 없는 한 도둑맞은 보석은 보험으로 보호가 되기 때문에 그냥 물건의 소유주의 이동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우리가 보석도둑을 로맨틱하게 취급하는 또 다른 까닭은 그들을 멋있는 신사도둑으로 묘사한 영화들 때문이다. 내가 지난달 프랑스의 해안 도시로 매년 5월 세계 최대의 영화제가 열리는 칸의 칼튼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발생한 보석강도 사건을 보고 대뜸 생각난 것도 히치콕의 로맨틱 스릴러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ㆍ1955)이다.
지난달 28일 대낮 호텔 내 보석 전시실에 캡을 쓰고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단신 권총강도가 들어와 순식간에 보석류 1억3,6000만달러어치를 털어 달아났다. 인명피해는 없었는데 이 털이는 사상최대의 보석강도 사건이다.
나도 몇 년 전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이 호텔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자태가 아주 장엄하다. 이 호텔은 ‘나는 결백하다’에서도 중요한 장소로 등장해 이번 보석강도 사건이 마치 영화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런 영화들을 ‘하이스트 무비’ 또는 ‘케이퍼 무비’라고 한다.
흔히 보석도둑을 보고 ‘캣 버글러’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들이 주로 밤에 고양이 걸음처럼 기민하게 벽을 타고 올라가 그들이 노리는 집의 지붕이나 위층 창을 통해 침입,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칸을 무대로 한 ‘나는 결백하다’에서 은퇴한 캣 버글러 존(케리 그랜트)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모방한 연쇄 보석털이가 일어나자 누명을 벗기 위해 진범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존은 보석을 치렁치렁 몸에 걸고 다니는 미국서 놀러온 금발미녀 프랜시(그레이스 켈리)와 은근짜 섹시한 로맨스를 불태운다. 여기서 별명이 ‘캣’인 존은 검은 스웨터를 입고 밤에 지붕 위에서 잠복해 진범을 기다리는데 그 모양이 검은 고양이 같다.(사진)영화를 보면 프랜시가 존을 자기 옆자리에 태운채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절경의 언덕길을 고속으로 달리다가 멈춰 피크닉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켈리는 1982년 바로 영화에서 달리던 그 길을 차를 타고 달리다 사고로 사망했다. 52세였다.
나도 칸에 갔을 때 칸 부근 니스에 사는 나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 동료 에르베와 같이 모나코의 켈리 무덤을 방문한 뒤 칸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로 그 길을 답사하면서 삶의 아이러니를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히치콕은 영화에서 성적 의미가 함축된 농담이나 장면을 집어넣기를 즐겼던 괴짜다. 뚱보 단구에 못 생겼던 그는 자기가 영화에 쓰는 그림의 떡인 금발미녀들을 죽여 버리거나 학대했던 새디스트였다. 그가 영화에서 상징적인 대사나 장면으로 성적 농담을 즐긴 것도 이들 금발미녀들에 대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대리 분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결백하다’를 보면 칼튼 호텔방 소파에서 존과 프랜시가 뜨거운 키스를 하면서 눕는 장면이 있는데 이 때 카메라가 둘을 떠나 창밖의 명멸하는 불꽃놀이를 보여준다. 또 이런 장면도 있다. 존과 프랜시가 피크닉을 할 때 프랜시가 바구니에 담아온 프라이드치킨을 존에게 권하면서 “다리를 드릴까요, 아니면 가슴을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이에 존은 “당신이 골라 주구려”라고 말하는데 나이 지긋한 매력적인 두 남녀의 은근한 성적 농담이어서 자극성이 한층 더 진하다.
히치콕은 역시 그랜트가 나온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라스트 신에서도 짓궂은 성적 농담을 하고 있다. 달리는 열차의 침대칸에서 잠옷 바람의 그랜트와 그의 연인 에바 마리 세인트가 포옹을 하면서 드러눕자 열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한편 칸 보석강도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 사건이 전 유고 출신의 보석도둑들로 구성된 범죄단체 ‘핑크 팬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핑크 팬서’란 블레이크 에드워즈가 감독한 동명영화(1964)에 나오는 커다란 분홍빛 다이아몬드 이름이다.
헨리 맨시니의 음악과 분홍 표범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오프닝 장면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핑크 팬서’를 노리는 보석전문 털이 신사도둑 ‘팬텀’(데이빗 니븐)과 이를 잡으려는 파리의 실수연발 형사 클루조(피터 셀러즈)가 서로 쫓고 쫓기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 코믹한 하이스트 무비다. 그런데 아직까지 칸 보석강도가 잡혔다는 소식이 없다. 영화감이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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