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주의 댈러스 시에서 여자 기성복 회사 사장으로 성공한 애브라함 자프르더 씨가 손자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영화기록으로 남기려고 당시에는 꽤 비싸다는 벨 앤드 하웰 영화 카메라를 산 게 1962년이란다. 1963년 11월22일 12시25분경 자프르더는 케네디 대통령의 댈러스 방문 자동차 행렬을 보러 운집한 관중 가운데서 바로 그 카메라로 대통령이 탔던 무개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12시30분에 총성이 두 발 들리고 대통령의 머리가 만신창이 된 것을 재클린 영부인이 “하나님! 맙소사”라고 외치면서 끌어안는 장면이 그대로 자프르더의 영화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바로 3일 뒤에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사진 잡지였던 라이프지가 15만 달러에 자프르더 필름 판권을 사들였다. 그러나 당시 연방 대법원장 얼 워런을 위원장으로 한 케네디 암살 사건 조사단 등의 조사 연구 자료로는 자프르더 필름과 인화된 사진들이 수시로 제공되었었다. 예를 들면 자프르더 필름의 화면 171부터 334까지가 워런 위원단의 26권으로 된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다.
라이프 잡지가 연방 문서 기록청에 자프르더 필름을 무상으로 기부하겠다는 제의를 했고 오랜 세월의 협상 끝에 그 소유권은 정부로 넘어갔다. 그리고 1999년에 미 법무성의 특별조정위원회는 미국 정부가(자프르더 씨는 1970년에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유가족에게 그 필름 값으로 1,600만불과 더불어 이자를 지불하라고 명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일어난 아시아나 여객기의 경착륙 사고 직후에 보도되었던 트위터 등 SNS 사용자들의 거의 실시간 짤막한 보도와 사진이나 영상물을 접하게 되면서 40년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다. 1963년에는 자프르더가 성공적으로 영화를 찍었던지 자체가 그날밤에서나 코닥 필름 인상소에서의 확인으로 밝혀질 때까지 미지수였다.
이제는 우리의 셀폰으로 고화질(HD)의 영상이 순식간에 찍혀지며 이메일 트위터 그리고 유튜브 등 SNS로 실시간에 전세계적으로 파급될 수 있게 되었다. 데이비드 은이라는 삼성전자 미국 수석부사장이 “이제 막 비행기 추락에서 살아남았다. 나도 괜찮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듯하다. 초현실로 느껴진다”라는 트위터 발신이 모든 매스 미디어를 앞섰다. 사족을 달자면 나중에 한국일보 보도를 보고나서야 데이비드는 우리가 버지니아 비치에 살았었던 1970년도 중반에 자주 왔다 갔다 했던 은봉수 박사의 첫 아들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필름 인상소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코닥 회사 자체가 문을 닫은 상태다. 또 하나 다른 것은 SNS에 전파되는 정보나 사진이 거의 다 무료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300여명이 넘는 승객들과 승무원들이었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사망자 수는 두 명이었다는 게 놀랍다. 승무원들과 승객들이 헌신적으로 서로를 도와 불타는 비행기로부터의 탈출을 이루었기에 인명 피해가 훨씬 클 수도 있었던 것을 미연에 방지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 착륙사고 원인을 규명중인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활동을 보도하는 뉴욕 타임스, CNN 등의 미 주요 언론이 사고원인을 조종 과실로 단정하는 듯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는 비난을 한국 언론이 비추고 있다. 항공 사고의 원인 규명은 길면 몇 년 씩 걸리는 것이 관례인데 데보라 허스맨 NTSB 위원장이 몇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경험이 없는 기장’이나 “샌프란시스코 첫 비행” 등을 강조한 것을 미국 언론들이 대서특필한 것은 사고 기종인 B777을 만든 보잉 회사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잘못은 없다는 식의 ‘애국주의적‘ 보도 경향이라는 것이다. 허스맨 위원장 자신은 아시아나 사장 등의 기자회견은 자제해달라면서도 NTSB 조사의 투명성 때문에 사실에 입각한 발표들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40대 중반의 버지니아텍 공대 출신인 허스맨 위원장은 위원시절부터 현장 진두지휘로 명성을 쌓아온 베테랑이라는 데야 이론이 없지만 위원장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실무진을 지휘하는 것이 어느 정도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국적기의 미국 공항 내에서의 사고라서 양국 정부기관이 조사를 해야 하는 원천적 복잡성 때문에 오해와 충돌이 가능하다. 두 나라 다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상태로 정확한 원인 규명에 매달려야 함은 물론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조종사들의 한국 국적 때문에 혈액 검사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승무원들이 기장에게 비상 탈출을 건의했을 때 처음에는 기장이 거절했다는 보도이다. 1997년 승객과 승무원 225명이 사망한 KAL기의 괌 추락 사고에 대한 2년 6개월에 걸친 NTSB의 조사 결과 악천후와 착륙장치 결함에 더해 상급자에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권위주의적인 조직 문화도 사고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었다. 그같은 조직 문화는 옛 얘기일까? 정확한 조사를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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