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생인 나는 그날 흑석동 한강에서 친구들과 수영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북한이 남침했다는 긴급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3년 피난살이를 시작했다. 오는 25일은 그날 일어난 6.25전쟁이 63주년을 맞는 날이다. 참 긴 세월이다. 그래서 6.25는 ‘잊혀진 전쟁’ 또는 ‘오해받는 전쟁’으로 우리 기억 속에서 흐려져 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때가 되면 내 반 학생들에게 ‘6.25가 어느 해에 일어났는가?’라고 묻는다. 40명 가운데 정답자는 5명 남짓이다. ‘중고등 학생 60%가 6.25를 북침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주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한탄했다. 국사교육이 오도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젠가 통일은 해야겠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헤어져 왔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고르바초프씨, 이 벽을 허무시오” (tear down this wall)라고 외친 그 유명한 연설이 지난 주 24주년을 맞았다. 때는 1989년 6월 12일, 나는 TV를 통해서 그의 연설장면을 보면서 레이건 대통령의 말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연설이 있은지 5개월도 못된 11월 9일, 나는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을 같은 TV를 통해서 목격했다. 동·서독사람들이 일제히 망치와 곡괭이를 들고 베를린 벽을 허무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것이 가능 할까? 서독은 통일준비를 어떻게 한 것인가? 한반도의 통일도 이렇게 갑자기 오는 것일까? 아니다. 한반도는 독일과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과연 불가능 할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언젠가는 우리도 동서독 시민들처럼 남북한 동포들이 망치와 절단기를 들고 휴전선 철조망을 끊어버리고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날이 곧 오리라. 우리는 다만 그 날을 위해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더 큰 문제는 통일 후다. 그 교과서는 독일의 예다. 남북이 갈라선지 68년이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긴 세월이다. 이 지상에 동족이 갈라져 사는 나라가 어디 또 있는가?
동·서독은 통일 전에 소통이 있었다. 상호방문에 의한 소통, 편지를 통한 소통, 전화를 통한 소통, 문화교류를 통한 소통, 뉴스 미디어를 통한 소통들이다. 그래서 서로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이 벽을 허무시오’의 연설은 TV를 통해 동독시민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이 연설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마음도 움직였다. 동독 통일은 동·서독 시민들이 함께 준비했다. 통일열망은 오히려 동쪽이 더 강했다. 그들은 통일의 가능성을 여러 소통 망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1989년 11월 독일통일 당시 서독인구는 6,300만, 동독은 1,600만, 전체인구 7,900만이었다. 서독은 1인당 GDP 1만5,000달러인데 비해 동독은 반에도 못 미쳤다. 그래도 동독은 공산국가 가운데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통일 후 지금까지 들어간 통일비용은 약1조800만 유로(약2천595조원)이지만 통일과정 완성은 75%에 머무르고 있다. 생산성 임금에서 큰 차이가 있다. 통일직후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인구는 약 200만, 지금은 약 500만에 이른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지금 남한은 5,000만, 북한은 2,500만 인구다. 북한은 통일당시 동독보다 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경제사정은 2대1이었던 서독 동독의 비율과 비교가 안된다. 북한통계를 믿는다 하더라도 남북한 경제차이는 30대1이다.
지난 달 2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남북한경제통합연구, 북한경제의 한시적 분리운영방안’이라는 논문은 한반도 통일직후 남쪽으로 이주 할 북한주민을 110만으로 전체인구의 4.5%로 보고 있다. 이 숫자는 한국거주 외국 노동자수와 비슷하다. 결론은 북한에서 이주한 노동인구가 남한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장애는 남북간의 소통이다. 어떻게 하든 소통의 길을 열어야 한다. 북한과의 모든 교섭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소통의 길을 여는 쪽으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랜만에 가능성이 비쳐졌던 남북한 고위직 회담도 수석대표자리 기싸움으로 구름 속에 있다.
지난 주 북한은 미국과 협상하자고 카드를 내밀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또 한번 속는 셈 치고’ 응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소통을 통해 한반도의 벽인 휴전선을 허물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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