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일룡 칼럼
▶ 변호사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나는 한 10년간 내가 졸업한 대학에 입학 신청한 학생들 인터뷰 하는 일을 해 보았다. 워낙 많은 학생들이 지원을 하기에 제한된 숫자의 입학사정관들이 모두 직접 인터뷰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미 졸업한 동문들이 자원해서 인터뷰를 맡아준다. 인터뷰를 하면서 학생들의 특별활동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런데 내가 항상 부러워 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 뮤지컬이다. 뮤지컬만큼 자신의 몸 전체로 남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예술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뮤지컬을 해 본적이 없다. 노래와 연기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대체 춤이 안 된다. 음악의 비트에 맞추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이 지역에서 뮤지컬이나 연극을 하는 고등학생들이 최고 영예로 여기는 상이 캐피스 상(The Cappies Awards)이다. 이 상의 워싱턴지역 시상식이 지난 일요일 저녁 케네디센터에서 열렸다. 나는 40개 정도의 부문으로 나뉘어 주어지는 이 시상식에 매년 참여해 왔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특성이라면 수상자 천거와 결정이 모두 학생 비평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16개 지역과 캐나다의 3개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워싱턴지역의 경우, 올해에는 약 60개 정도의 공립, 사립고교에서 400명가량의 학생들이 비평가로 활동했다. 학생 비평가들은 각자 적어도 다섯개 이상의 고교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하고 이에 대한 비평을 써야 한다. 그리고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한 후 모여 작품에 대해 의견도 교환한다. 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비평을 씀으로써 저널리즘 공부도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우수한 비평 글들은 지역신문과 웹사이트에도 실린다. 올해 워싱턴지역에서 학생 비평가들이 쓴 글이 자그마치 2천500편정도 되었다고 한다.
캐피스상 시상식은 토니상과 같은 형태로 열리는데 워싱턴지역에서는 매년 케네디센터의 연주 홀을 입추의 여지없이 꽉 채운다. 대부분 학생들이 턱시도나 드레스를 입고 한껏 멋을 내는 갤라 형태의 행사이다. 이를 한 번 치르려면 상당히 많은 재정이 소요된다고 한다. 케네디센터에서 장소는 무료로 대여해 주지만 인건비, 홍보비 등의 비용들은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상식 참석 표를 팔아 필요한 재정에 보탠다.
이 프로그램은 1999년 이곳 워싱턴지역에서 시작됐다. 프로그램의 창안자는 빌 스트라우스(William (Bill) Strauss)인데 그는 현재 내가 의장으로 있는 버지니아주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의 제니 스트라우스 교육위원의 돌아가신 남편이다. 빌 스트라우스 씨는 원래 하버드 대학과 법학대학원, 행정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방의회에서 입법보좌관으로 여러 해 일했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었는데, 1981년 자기가 모시던 상원의원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직원들을 규합해 정치를 풍자한 노래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공연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아예 ‘Capitol Steps’라는 풍자극단을 설립하게 된다. 그 후 국회에서 일하는 것도 그만 두고 전적으로 작곡과 작품 만들기에 몰입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에게 항상 관심을 두었던 그는 1991년부터 시작해 세대 간의 차이를 분석한 책들을 7권이나 집필하고 강연 활동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가 1999년에 이르러 본인이 췌장암을 앓고 있음을 발견하고 또한 컬럼바인 고교 참사로 미국 전체가 정신적 공황에 빠졌을 때 학생들에게 창작예술을 통해 긍정적인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후 14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캐나다에서 학생 비평가로 참여하는 학생들 숫자만 2천명이 넘어 고등학교 연극과 뮤지컬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빌 스트라우스 씨는 2007년 8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투병하는 가운데에서도 작품활동과 젊은이들을 독려하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모교인 하버드대학 재단이 풍부한 자산 소유에도 불구하고 매년 학비를 인상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하버드 대학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재정지원의 확대를 유도해 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가 있음에도 두 명을 입양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서 입양했던 아들은 입양 당시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입양기관이 다른 아이를 권유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아이에게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라며 굳이 그 아이를 고집했다고 한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그 후 30년간 그 입양아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 주 일요일 캐피스 상 행사에 참여하면서 돌아가신 빌 스트라우스 씨가 많이 생각났다. 60년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길게 사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은 나로 하여금 어떻게 살고 있나를 살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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