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때문에 신세 망친 남자의 태두는 아마도 구약에 나오는 삼손일 것이다. 천하장사 삼손은 이교도인 절세미녀 요부 델릴라에게 빠져 두 눈마저 잃고 결국 자살을 하고 말았다. 삼손의 얘기는 세실 B. 드밀이 감독하고 빅터 마추어(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좋아했다)와 헤디 라마가 나온 ‘삼손과 델릴라’에서 화려하게 그려졌다.
여자 때문에 신세 망친 또 다른 역사적 인물이 로마의 장군 마크 안토니다. 명실 공히 시저의 후계자였던 안토니는 카리스마와 미모를 겸비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에게 반해 조국을 버리고 역시 자살을 하고 말았다. 무서운 게 여자다.
시저에 이어 안토니를 유혹해 동침한 클레오파트라 하면 대뜸 떠오르는 여자가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1963년에 폭스가 만든 스캔들로 얼룩진 243분짜리 초대형 사극 ‘클레오파트라’(Cleopatra·사진)의 주인공이 리즈였기 때문이다.
스테이시 쉬프의 전기 ‘클레오파트라’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의 미는 그녀의 얼굴보다 풍채와 개성과 태도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재위 때 나온 동전에 새겨진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매부리코인 것을 보면 리즈가 진짜 클레오파트라보다 훨씬 미녀임에 틀림없다.
영화 ‘클레오파트라’는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둘러싼 온갖 스캔들 때문에 더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세기의 스캔들로 불린 것이 유부녀 리즈와 안토니로 나온 유부남 리처드 버튼의 욕정에 불타는 혼외 정사사건.
당시 로마에서 촬영을 할 때 눈이 맞은 리즈와 딕(리처드의 단축형)은 각기 자신들의 짝이 현장에 있었는데도 이에 아랑곳 않고 정염을 불태웠다. 리즈의 남편은 ‘오 마이 파파’를 부른 유명 가수 에디 피셔였고 딕의 아내는 역시 배우인 시빌이었다.
교황청이 있는 로마에서 리즈와 딕이 불륜의 사랑을 불태우자 교황청은 이를 강력히 비난하는 공개서한까지 발표했다. 서한은 특히 당시 결혼을 네 번이나 한 리즈를 ‘에로틱한 유랑녀’라고 꾸짖었다. 리즈와 딕은 ‘사건’ 발생 1년 후 결혼, 10년 후 이혼했다가 곧 재혼했으나 결국 다시 헤어졌다. 그러나 리즈는 딕의 불멸의 여인이었다.
둘은 결혼 후 ‘샌드파이퍼’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는가’(리즈의 두 번째 오스카 주연상 수상작), ‘말괄량이 길들이기’ 및 ‘코미디언들’ 등 여러 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다. 그런데 지난 3월 1일 버튼의 별이 할리웃 명성의 거리에 있는 리즈의 별 옆자리에 올라 둘은 지금 죽어서 나란히 살고 있다.
조셉 L. 맨키위츠가 감독한 ‘클레오파트라’는 엑스트라가 1만여명이나 동원된 제작비가 당시로선 사상 최고인 4,400만달러나 든 작품으로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3억3,000만달러. 스캔들과 함께 영화가 개봉되자 흥행은 성공했으나 제작비에 비해선 약소한 이득인 데다가 폭스는 이 영화 이전 다른 영화들의 흥행부진으로 회사가 존폐의 위기에 처하자 스튜디오 부지를 팔아야 했다. 그래서 생긴 것이 현재의 LA의 스튜디오 시티다.
영화는 제작비 초과 외에도 제작 기일의 연장과 배우와 감독의 교체 및 스튜디오 사장과 제작자 해고 그리고 리즈가 독감에 걸려 죽다 살아나는 등 온갖 문제에 시달렸다. 영화는 비평가들의 엇갈린 반응을 받았으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시저 역의 렉스 해리슨) 등 총 9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촬영, 특수효과, 미술 및 의상상을 받았다. 특히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이야 말로 한창 때 로마의 영광처럼 장려하기 짝이 없으나 외화내빈의 영화다.
버튼은 실제로도 술고래였는데 영화에서도 계속해 포도주를 마시면서 자신의 과음에 대해 자아비판까지 하고 있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점은 클레오파트라가 조국의 부와 곡물을 탐하는 권력욕에 굶주린 로마 남자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미모와 섹스를 사용했던 비운의 여왕이라는 사실이다.
희랍어로 ‘그녀의 조국의 영광’이라는 뜻의 클레오파트라는 18세에 즉위, 22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뒤 예수 탄생 한 세대 전에 39세로 사망했다. 통상 그녀는 옥타비안의 로마군에 항복하기를 거절하고 독사를 이용해 자살했다고 알려졌으나 독사보다는 독극물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리즈와 딕의 열애는 할리웃의 옛 스튜디오 체제를 한숨에 무너뜨린 스캔들로 할리웃의 방종과 타락이 절정을 이룬 사건이었다. 둘의 스캔들이야 말로 요즘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광적인 집념의 효시와도 같은 경우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클레오파트라’가 개봉 반세기를 맞아 디지털로 복원돼 블루-레이로 나왔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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