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주 전 ‘Fairfax County Federation of Citizens Associations (FCFCA)’가 주최하는 연례 시상식에 참석했다. 올해로 63년째가 되는 행사이다. FCFCA는 훼어팩스 카운티 내의 여러 동네 홈 오너스, 콘도미니엄, 시빅 협회들의 연합체이다. 자원 가입 형태를 띠고 있기에 모든 협회들이 회원은 아니나 약 12만 가구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카운티 전체 가구수의 30% 정도가 된다.
FCFCA는 비정치 단체로 훼어팩스 카운티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 영향이 되는 모든 분야에서 주민들의 의견 수렴 및 전달을 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카운티 예산, 교육, 교통, 환경, 입법, 복지 등의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로비도 한다. 또한 매년 카운티 주민들 가운데 각종 분야에서 공헌한 사람들을 선정 시상한다.
올해 수상자 중에는 나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여럿 되었다. 우선 올해의 시민상을 받은 피터 머피(Peter Murphy)씨가 있다. 머피 씨는 도시계획 일을 맡아하는 훼어팩스 카운티 기획위원회 위원장인데 30년 이상 기획위원으로 그리고 위원장으로는 24년째 봉사하고 있다.
공헌상 부문에서는 보건분야에서 25년 이상 봉사해 왔던 로즈 추(Rose Chu) 씨와 중,고등학교 등교 시간을 늦추자는 캠페인에 앞장서 활동을 벌여 오고 있는 필리스 페인(Phyllis Payne)씨이다. 그러나 수상자들 가운데 나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수상자는 케이트 핸리 씨였다. 이 날 평생 성취상을 수상한 핸리 씨는 한 때 훼어팩스 카운티 민주당에서는 정치계의 “대모”로 여겨지던 분이다.
아직도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상당하다. 핸리 씨는 1984년 훼어팩스 카운티의 프로비던스 지역 임명직 교육위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1986년 보궐선거에서 같은 지역 수퍼바이저로 당선되어 봉직하다 1995년 보궐선거에서 수퍼바이저위원회 의장으로 당선되었다. 2003년까지 의장으로 있다가 훼어팩스 카운티 정치계에서 은퇴한 그는 2006년부터 4년간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 행정부에서 주 정부 총무처 장관직을 맡았었다.
내가 언제 핸리 씨를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그를 집무실로 처음 찾아 갔던 것은 1995년 봄이다. 그러니까 핸리 씨가 훼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 의장으로 당선된 직후이다. 당시 나는 그 해 11월에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처음으로 있게 되는 교육위원 선거에 출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 선거와 교육현안에 대해 아는 지식이나 지역사회에서의 지명도가 거의 전무했던 나로서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 때 마침 교육위원위원회가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바뀌면서 12명의 교육위원 중 두 자리의 광역위원을 6개월 임기로 보임해야 할 필요가 있던 상황이었다.
나는 교육위원 선거 후보자로 ‘투지’하나 밖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기에 나로서는 6개월의 짧은 기간이지만 그 자리에 임명을 받으면 현역이라는 프리미엄을 갖고 선거를 치룰 수 있겠다 싶어 핸리 의장을 찾았다. 광역교육위원의 임명 추천권을 수퍼바이저 위원회 의장이 갖고 있기에 추천을 부탁하고자 했던 것이다.
만나서 나의 선거 출마 계획을 밝히고 보임해야 할 자리에 천거를 부탁하자 처음에는 난감한 표정을 짓던 핸리 의장은 내 의기를 인정했던지 그러면 자신이 일러 주는 대로 따라서만 하라는 것이었다. 우선 임명 전에 주위의 후원자들로 하여금 각 지역을 대표하는 수퍼바이저들에게 나를 지지하는 서한들을 보내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임명이 결정되는 회의 때의 주민의견 발표시간 때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지 발언을 하도록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위 후원자들에게 샘플 지지 편지들과 편지봉투를 준비하여 10명의 수퍼바이저들에게 보낼 수 있도록 했다. 각 수퍼바이저들이 수십 통의 편지를 받고 놀랐음은 당연하다. 또한, 당시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검사와 변호사로 일하던 고등학교와 법대 동창 그리고 한인 동포 사회의 명망가로 하여금 수퍼바이저 회의에서 지지 발언을 하도록 했다. 결국 광역 교육위원 자리에 임명 받을 수 있었고 11월 선거에서 승리 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감사했던 일은 내가 1999년의 교육위원에서 재선에 실패한 후였다. 실의에 차 있던 나를 격려해 주고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핸리 의장은 전혀 경험이 없지만 나를 카운티 기획위원회에 광역위원으로 임명해 공직에 붙잡아 두었다.
버지니아에서 동양계 최초로 선출직에 당선되었던 내가 공직의 길을 포기하고 사라지는 것을 그냥 놔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결국 그의 격려로 다시 2003년에 교육위원 선거에 도전해 당선된 후 지금까지 4선 교육위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핸리 씨는 나의 어려운 고비마다 은인이자 정치적 멘토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3주 전 그 날 시상식에서 핸리 씨를 다시 보며 나도 그 누구에게 핸리 씨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것처럼 도움과 길잡이가 되어 주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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