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본 삼국지연의는 빼어난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삼국지연의를 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읽되 여기에서 영웅상을 그려 낸다거나 어린 아이들이 음모와 모사와 폭력을 당연시 하는 길잡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다.
유학을 온 한 중국인 교수의 얘기를 첨가하여 예로 삼는다.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삼국지를 많이 읽느냐, 나는 삼국지의 본 고장인 중국의 역사학자이지만 한국 젊은이들의 삼국지 실력에는 명함을 내밀 수 없다”며 “그런데 그 젊은이들이 한국사 실력은 별로 없어 어안이 벙벙했다”고 실토했다는 얘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갈공명, 방통, 주유, 육손은 잘 알면서 을두지, 을파소, 명림답부, 최치원은 잘 모른다. 장비, 관우, 조자룡, 마초, 위연, 황충, 하후돈, 허저는 잘 알지만 부분노, 을지문덕, 흑치상지, 이순신은 잘 모른다. 적벽, 허창, 건업, 형주는 줄줄 외우지만 비류수, 백천강, 비사성, 관미성은 잘 모르는 한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삼국지는 알면서도 우리 삼국사기는 모르는 정신없는 백성들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소위 삼국지연의의 삼국시대에 근접한 고구려의 재상 을두지와 국상 을파소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을두지는 고구려 3대 대무신왕(서기18~44년) 때의 재상으로서 서기 25년 7월 후한의 대 공격 때 ‘잉어계책’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했던 재상이다. 을파소는 서기 191년에 국상이 되어 9대 고국천왕과 10대 산상왕을 거치는 국상이 되었다. 국상이 되기 전에는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고국천왕의 인재등용정책으로 인재추천을 명했는데 모두가 안유를 추천하였고, 안유는 자기보다 더 훌륭하다며 농부 을파소를 적극 추천하여 귀족들의 강한 반대를 극복하고 국상으로 임명되었는데 “교육제도 개편”, “부정부패 방지”, “인재선발 활성화” 그리고 “진대법”을 시행하는 등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처음 실시한 진대법은 춘궁기인 3월에서 7월까지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가 끝나는 10월에 돌려받는 제도로서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제하였다는 칭송을 오늘날까지 받고 있다. 이는 인재등용에 과감함을 보인 고국천왕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다른 이에게 돌린 안유 모두에게 보내는 칭송이기도 하다.
을두지 시대로부터 170여 년이 지난 을파소 때 후한의 사정은 어떠했는가! 여전히 이곳 저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있었고, 184년 황건적의 난 이후에도 동한 왕조에 반기를 든 장연의 흑산군, 익주에서 일어난 장수와 장로 형제의 오두미도, 그리고 청주, 서주의 황건적 잔존세력 등이 여전히 동한의 왕조를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189년 유굉이 죽자 외척 하진이 정권을 장악하고 어린 유변을 왕으로 세워 조정을 농단하고 있었다. 환관들의 만만치 않은 세력에 불만인 하진이 원소와 결탁하여 환관들을 없애려 한 계획이 사전 발각되어 하진이 환관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원소는 군대를 이끌고 궁성에 난입하여 환관 2천여명을 살상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이에 동탁은 그동안 키워온 대군을 이끌고 원소를 몰아낸다. 그리고 영재의 아들 유협(헌제)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서기 192년 동탁의 수하 왕윤과 여포가 동탁을 살해하면서 동탁의 수하들끼리의 혈투가 벌어지게 되고 이로부터 각처에서 군벌들의 세력다툼이 번지면서 동한은 몰락하고 소위 삼국지연의의 배경인 삼국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3국 모두가 60년도 못 간 단명의 국가들이어서 기록도 많지 않거니와 중국 스스로 전혀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 젊은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우리나라 미래의 주인공이 될 젊은이들이 50년짜리 단명 국가들의 전쟁얘기와 모사를 일삼는 얘기를 모방하며 그 속에서 영웅상을 그려낸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서길수 교수는 못을 박는다.
이러한 삼국지연의는 우리에게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이기면 된다는 옳지 않은 관념을 심어주었고, 승리를 위한 배신은 미덕일 수도 있다는 빈약한 구실을 삼게도 하였으며 즉 권모술수에 능해지고 속임수에 강한 기회주의자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뻔뻔한 사고력을 키워 주면서 우리들을 야금야금 사대주의자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삼국지의 공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보다 더한 치욕의 역사도, 주변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영웅적 역사도 모두 가지고 있다. 이제 남의 나라의 역사소설을 옮겨 각색하는 단계를 벗어나 우리의 것을 더 재미있게 더 멋있게 쓰는 것이 이의 대안일 수 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우리의 대 서사시를 그려내는 우리의 노력이 없었던 것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의 이 무궁한 소재를 가지고 더 훌륭한 소설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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