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간 할리웃의 바이블로 불리며 영화인들의 필독신문으로 군림해 온 일간 버라이어티(Variety)가 지난 19일자(사진)를 끝으로 인쇄를 중단했다. 이로써 버라이어티는 웹사이트판(무료)과 주간 버라이어티만 남게 됐다.
매일 2만8,000부씩 찍어내던 버라이어티가 발행을 중단키로 결정한 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같은 모빌 웹 때문이다. 사람들이 신문을 안 보기 때문에 독자수가 갈수록 급격히 줄어들면서 신문의 재원인 광고 수익도 하락, 사실 폐간은 예견된 것이었다. 버라이어티는 지난 2006년만 해도 연 수입이 3,000만달러였으나 이것이 지난해에는 달랑 600만달러로 줄어들었다.
버라이어티의 폐간은 포터블 디지털 음악 때문에 레코드 산업이 크게 타격을 받으면서 타워 레코드를 비롯한 굴지의 음반 가게들이 문을 닫은 경우와 같은 것이다.
초록색 제호의 일간 버라이어티(LA 본부는 윌셔의 LA카운티 뮤지엄 건너편에 있다)는 지난 1933년 9월6일 뉴욕에 본부를 둔 주간 버라이어티가 쇼 세계의 뉴스를 현장에서 신속히 보도한다는 취지로 첫 호가 나왔다. 할리웃의 광고 수익을 노린 서부 진출이었다.
이후 버라이어티는 영화평과 뉴스와 칼럼과 함께 스튜디오의 내부사정을 신속 정확히 보도, 배우와 제작자와 감독 및 홍보인들 같은 할리웃 실력자들의 명심보감과도 같은 구실을 해왔다. 영화기자인 나도 일간과 주간 애독자인데 마지막 호 1면에 실린 ‘시간은 변화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폐간기사를 읽으면서 섭섭한 마음이 컸다.
버라이어티 하면 유명한 것이 눈에 확 띄는 재치 있는 제목과 암호 같은 특수용어. 흥행성적을 말하는 ‘보포’(boffo)나 해고를 뜻하는 ‘앵클’(ankle)은 다 버라이어티가 만든 말들이다.
버라이어티의 폐간은 역시 트레이드(전문지)로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할리웃 리포터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발행부수와 영향력 면에서 버라이어티에 뒤지던 할리웃 리포터는 이미 지난 2010년에 일간을 폐지하고 주간으로 변신했다. 웹사이트 판은 무료다.
할리웃 리포터의 편집방향은 할리웃의 쇼 비즈니스 종사자 뿐 아니라 할리웃의 화려함을 좋아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어필하도록 하자는 것인데 현재 인기가 아주 높다. 이 주간을 만들고 또 성공시킨 장본인이 한국계 편집국장 재니스 민이다. 민은 연예전문 주간 어스(Us)의 편집국장 시절 보여준 탁월한 실력 때문에 할리웃 리포터에 발탁됐다.
그러니까 버라이어티는 2등을 하던 할리웃 리포터의 뒤를 따라 가고 있는 셈이다. 선견지명과 아이디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는 경우다.
뒤늦게 웹사이트와 주간에 총력을 경주하기로 결정한 버라이어티는 최근 웹사이트를 새로 디자인하고 오는 26일부터 새로 모양을 가꾼 주간을 발행한다. 지령이 108년인 빨간색 제호의 주간은 현재 발행 부수가 3만부 정도. 신문은 할리웃 리포터와 차이를 두기 위해 연예산업의 내부 역학구조와 활동에 관해 분석하고 심층 보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버라이어티는 최근 편집진을 보강했는데 뉴욕에 본부를 둔 연예 종합지 빌리지 보이스의 수석 영화비평가 스캇 화운다스를 같은 직책으로 스카웃했다. 나는 스캇이 USC를 막 졸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내온 사이인데 매우 겸손하고 총명하며 또 필력이 뛰어난 기자다. 스캇과 함께 버라이어티의 다른 영화비평가들인 저스틴 챙과 피터 드브루지 등은 모두 나와 함께 LA 영화비평가협회 회원들이다.
버라이어터는 할리웃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영화와 TV에 캐미오로도 나왔다. 최근의 경우는 올해 오스카 작품상을 탄 ‘아고’다. 또 이 신문은 배우들의 구직과 자기선전용으로도 종종 쓰였다. 오스카상을 탄 연기파 베티 데이비스가 나이가 먹으면서 스튜디오의 외면을 받자 ‘노련한 배우 베티 데이비스가 일자리를 구한다’는 광고를 자기 사진과 함께 낸 것도 버라이어티였다.
나는 버라이어티 폐간이 알려진 지난 19일 할리웃 외신기자협회 친구인 스웨덴 태생의 마그너스와 활자매체의 앞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디지털에 능통한 그는 아날로그 세대인 내게 “너도 빨리 디지털에 적응해. 활자매체는 이제 끝났어”라고 충고를 했다.
그러나 펜을 들고 신문기자 생활을 38년간 해온 나로선 종이의 무게와 감촉과 함께 잉크냄새를 좀처럼 쉽게 저버릴 수가 없다. ‘기계가 신문 잡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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