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당신이 아내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당신 앞에 나타나 “내가 네 대신 너의 아내를 죽여주마”라고 제의한다면 당신은 이런 제의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유명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 가이는 천박하고 부정한 아내 미리암이 이혼을 안 해줘 속을 끙끙 앓고 있는데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브루노가 가이에게 교차살인을 제의한다.
브루노의 제의란 자기가 미리암을 죽여 줄 테니 가이는 대신 브루노의 아버지를 죽여 달라는 것. 전연 살인표적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둘이 서로 교차살인을 하면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이런 교차살인이 작품의 중심 플롯을 이루는 영화가 히치콕의 흥미진진한 심리 스릴러 ‘기차 안의 낯선 사람들’(Strangers on a Train·1951)이다. 가이(활리 그레인저)는 현재 미 연방 상원의원의 아름답고 정숙한 딸 앤(루스 로만)과 열애 중인데 앤과 결혼을 하고 싶어도 별거중인 미리암이 이혼을 해주지 않아 미리암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
한편 부잣집 외아들로 마마보이인 탕자 브루노(로버트 워커)는 자기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를 죽인 뒤 유산을 받으려는 것이 목적이다.
가이는 브루노의 교차살인 제의를 고약한 농담 정도로 알고 무시하는데 브루노가 밤에 유원지에 놀러 온 미리암을 진짜로 교살한(잔디 위에 떨어진 도수가 높은 미리암의 안경 렌즈에 반사되는 교살장면을 찍은 로버트 벅스의 흑백촬영이 작품과 감독과 함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사진) 뒤 가이 앞에 나타나 “이젠 네가 내 아버지를 죽여야 할 차례”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브루노는 앤의 집 파티에 나타나 교살실습을 보여준다.
괴물적 성격을 지녔던 여류 작가로 ‘재주꾼 리플리’를 쓴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뛰어난 스릴러로 어떻게 보면 가이와 브루노는 한 인물로 봐도 되겠다. 영화에서는 둘 사이에 호모 에로틱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영화에는 히치콕의 딸 패트리샤가 앤의 동생으로 나오는데 기막히게 연기를 잘 하는 것이 워커다. 알콜중독과 정신질환으로 32세로 요절한 워커가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뱀처럼 미끈미끈한 연기를 하면서 인간의 악마성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라이터가 내용의 중요한 소도구로 등장하는 영화는 기계가 고장 난 회전목마가 미친 듯이 회전하면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서스펜스의 장인’ 히치콕의 천재성이 완연히 드러나는 복잡하면서도 지적인 최고급 스릴러다.
히치콕이 교살을 살인수단으로 쓴 또 다른 영화가 입체영화인 ‘다이얼 M을 돌려라’(Dial M for Murder·1954)이다. 묘하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도 테니스 선수다. 영국의 극작가 프레데릭 놋의 연극이 원작인데 그레이스 켈리의 첫 히치콕 영화다.
런던에 사는 부유한 아내 마고(켈리)의 남편으로 전직 프로 테니스 선수인 백수 토니(레이 밀랜드)는 마고가 미국인 범죄소설 작가 마크(로버트 커밍스)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고 원한과 질투와 재산 때문에 아내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토니는 캠브리지대 동창생으로 서푼짜리 범법자인 스완을 협박하고 회유해 마고를 살해하라고 지시한다. 토니가 준 열쇠로 마고가 혼자 있는 아파트에 잠입해 리빙룸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스완은 밖에서 토니가 건 전화를 받기 위해 침실에서 나온 마고를 뒤에서 스카프로 습격한다.
스카프에 목이 졸려 “캑 캑”대던 마고는 테이블 위에 있는 가위를 집어 들어 스완의 등에 깊이 꽂는다. 마고가 숨통이 막혀 고통 하는 장면이 오래 계속되는데 영화에서 금발 미녀들을 학대하면서 쾌감을 느끼던 히치콕의 악취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가이와 토니에게서 볼 수 있듯이 부부는 늘 서로를 살해할 수 있는 용의를 갖고 있다. 그래서 경찰도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살해되면 제일 먼저 살인용의자로 꼽는 사람이 남은 한 쪽이다.
보통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이유는 돈과 질투와 새 여자 때문이다. 질투 때문에 아내를 살해한 가장 극적인 남편은 오텔로이다. 오텔로는 질투에 눈이 멀어 아내 데스데모나를 교살한다. 지난 1980년대 돈 때문에 아내를 약물로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세계적 뉴스거리가 됐던 남자가 유럽의 귀족 백수 클라우스 본 뷸로다. 그는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아내 서니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이 얘기는 제레미 아이언스(오스카 주연상 수상)와 글렌 클로스 주연의 ‘행운의 반전’에서 지적인 블랙 코미디 식으로 재미있게 재현됐다.
새 여자 때문에 아내를 제거한 가장 유명한 남자는 영국의 헨리 8세다. 그는 제인 시모어를 새 아내로 맞기 위해 당돌한 왕비 앤 볼린(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을 형장으로 보내 목을 잘라버렸다. ‘천일의 앤’이다. ‘기차 안의 낯선 사람들’과 ‘다이얼 M을 돌려라’가 블루-레이로 나왔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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