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앤디 윌리엄스가 감상적으로 부르는 ‘웨어 두 아이 비긴’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웨어 두 아이 비긴/ 투 텔 더 스토리 오브 하우 그레잇 어 러브 캔 비’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수많은 여학생들을 울린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제가다. 윌리엄스가 부드럽고 달콤하고 또 감칠맛 나면서도 약간 까칠까칠한 음성으로 가슴을 저미듯 불러 듣는 마음이 공연히 센티멘탈해 진다.
지난 25일 아침에 TV 뉴스를 보는데 갑자기 앤디 윌리엄스의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다. 나는 그 즉시 ‘아, 또 한 사람 갔구나’하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아쉬움에 속이 허전해졌다. 컴퓨터를 열고 유튜브로 윌리엄스의 ‘문 리버’와 ‘웨어 두 아이 비긴’을 듣고 있으니 3년 전에 본 그의 공연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토니 베넷과 알 마티노의 음성을 섞어 놓은 듯한 이지 리스닝 가수로 듣는 사람의 가슴을 형형색색으로 흔들어 놓을 줄 아는 앤디 윌리엄스(사진)가 지난 25일 이 달에 하기로 한 공연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미주리주 브랜슨의 자택에서 방광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84세.
윌리엄스 하면 대뜸 생각나는 노래가 오드리 헵번이 나온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가로 지난 1962년 오스카상을 받은 ‘문 리버’다. 이 노래는 윌리엄스의 대표곡으로 브랜슨에 있는 그의 극장 이름도 ‘문 리버’다. 윌리엄스는 1963년도 오스카 주제가 상을 탄 ‘데이즈 오브 와인 앤 로지즈’도 불러 빅히트했다.
윌리엄스의 또 다른 유명한 영화 주제가들로는 ‘대부’의 ‘스피크 소프틀리 러브’와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온 ‘샌드파이퍼’의 ‘더 쇄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 그리고 ‘텐더 이즈 더 나잇’과 ‘야생의 엘사’의 ‘본 프리’ 등이 있다.
11세 때부터 4형제 보컬그룹 ‘윌리엄스 브라더스’의 멤버로 가수생활을 시작, 죽기 1년 전까지 73년간 노래를 부른 윌리엄스는 지난 1950년대 후반기부터 1960년대 끝까지 주옥같은 노래들을 줄줄이 발표, 18개의 골드 앨범과 3개의 플래티넘 앨범을 내놓았다. 레이건도 그의 열렬 팬으로 윌리엄스를 ‘국보’라고 찬양했었다.
윌리엄스는 또 지난 1960년대 방영된 자신의 TV쇼 ‘앤디 윌리엄스 쇼’로 에미상을 세 번이나 탔으며 라스베가스의 시저스 팰리스 카지노에서 무려 20년간이나 쇼를 했었다.
윌리엄스가 26세에 솔로로 독립해 처음으로 빅히트한 곡이 경쾌하고 로맨틱한 ‘커내디언 선셋’. 그의 또 다른 빅 히트곡들로는 ‘디어 하트’와 그의 노래 스타일에서 다소 벗어난 ‘버터플라이’ 그리고 ‘더 하와이안 웨딩 송’, 크리스마스 캐롤 ‘더 빌리지 오브 세인트 버나뎃’, ‘해피 하트’, ‘론리 스트릿’ 및 ‘캔트 겟 유스트 투 루징 유’와 ‘스트레인저 온 더 쇼’ 등이 있다.
앤디 윌리엄스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전국 팬들의 큰 사랑을 받던 시즌 단골 ‘크리스마스 스페셜’이다. 그는 무려 8개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냈는데 빅히트한 캐롤 ‘이츠 더 모스트 원더풀 타임 오브 더 이어’ 때문에 ‘미스터 크리스마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내가 지난 2009년 12월 앤디 윌리엄스를 본 것도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쇼’ 때였다. 검은 정장에 안경을 낀 윌리엄스는 백발에 늙어 보이고 수척했었는데 한창 시절의 음성보다는 다소 모자랐지만 특유의 이지 리스닝 창법으로 자신의 히트곡들과 캐롤을 열창했었다. 82세의 나이에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농담하면서 아이들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팬들과 정을 나누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윌리엄스는 그 때 나이에 관한 농담을 많이 했는데 “나이가 몇 살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동안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나 아직도 여기 있어요”라고 말해 올드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이제 윌리엄스는 여기에 더 이상 있지 않지만 그는 그 시간동안 부른 노래들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고교와 대학시절 음악 감상실과 다방을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애청하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이 하나씩 세상을 떠날 때마다 마치 내 청춘의 비늘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듯한 가벼운 통증이 온다. 미국에 와서 직접 노래와 연주를 들은 레이 찰스와 진 피트니와 태미 위넷 그리고 로저 윌리엄스도 다 갔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뒤 미국에 와서 본 폴 앵카와 토니 베넷, 닐 세다카와 팻 분 그리고 탐 존스와 엥겔버트 험퍼딩크 또 알 마티노와 제리 베일 및 패티 페이지 등도 이젠 모두 늙었다.
윌리엄스는 오바마를 “막스주의자로 나라를 망칠 사람”이라고 비판한 골수 공화당원이었지만 바비 케네디와는 절친한 친구였다. 윌리엄스는 바비가 LA의 앰배서더 호텔에서 저격당했을 때도 그와 함께 있었는데 바비의 장례식에서 ‘아베 마리아’와 ‘공화국 전송가’를 불렀다.
‘크리스마스 쇼’를 끝내면서 윌리엄스는 우리들에게 “굿 나잇 에브리바디.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작별인사를 했었다. 나도 “굿 나잇 앤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답을 했었다. 그것이 그와 나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굿 바이 앤디.’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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