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6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모두에게 골고루 상이 돌아간 크게 놀라울 것이 없는 쇼였다. 하비 와인스틴의 와인스틴사가 작품과 여우주연상 등 모두 6개의 상을 탔지만 나머지는 이 영화 저 배우들에게 상이 균배되다시피 했다.
이런 맥 빠지는 분위기는 이날 시상식 사회를 맡은 영국인 코미디언 리키 제르베스의 김 나간 맥주 맛 같은 진행 때문에 따분하기까지 했다. 이번 쇼에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됐던 것은 이번으로 시상식 사회를 세 번째 맡은 제르베스가 사회를 보면서 작년에 이어 또 어떤 독설을 내뱉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는 지난해에 사회를 보면서 자니 뎁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참석한 배우들과 함께 골든 글로브 시상식 주관처인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를 싸잡아 도가 지나칠 정도로 조롱하고 모욕을 해 HFPA에 의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낙인이 찍혔었다. 그 뒤로 지난해 11월 우리 협회는 제르베스의 복권문제를 놓고 투표에 들어가 그를 다시 사회자로 부르기로 했었다.
그런데 술을 마셔가며 사회를 본 제르베스의 농담은 뜻 밖에도 너무나 무덤덤했다. 다시 자니 뎁을 놀리고 HFPA도 희롱했지만 작년에 비하면 솜방망이 같아 도무지 따끔따끔한 자극을 느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술에라도 취했더라면 진짜 매운 농담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6년 전 HFPA 회원이 된 이래 이 날 처음으로 수상자들을 기자실로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시상식 전 레드 카펫을 어슬렁대면서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입장하는 것을 구경했는데 야외석에 앉은 팬들이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는 스타 중의 스타가 다리를 다쳐 지팡이를 짚은 브래드 핏과 앤젤리나 졸리 커플과 사람 좋은 만년신사 조지 클루니. 해리슨 포드, 더스틴 호프만, 니콜 키드만, 스티븐 스필버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마돈나와 미셸 윌리엄스 및 헬렌 미렌 등이 잇달아 레드 카펫을 밟고 입장했다.
졸리가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목 바로 아래 등에 ‘Know Your Rights’(당신의 권리를 알아라)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사진). 전쟁의 피해자들을 돕는 인본주의자로서의 졸리의 강한 의식이 느껴졌는데 졸리는 등뿐 아니라 양팔 안쪽에도 문신을 했다.
이 날 내가 기자실로 안내한 수상 배우들 중 깊은 인상에 남았던 사람이 ‘헬프’로 여우조연상을 탄 흑인배우 옥타비아 스펜서. 시상자인 브래들리 쿠퍼와 함께 기자실로 가던 스펜서는 너무 감격해 복도에서 “나 잠시 쉬어야겠다”면서 허리를 굽힌채 숨을 내쉬더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 마이 갓”이라며 울먹였다. 옆에서 이를 보는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스펜서와는 시상식 후 열린 파티에서 다시 만나 서로 끌어안고 “당신 정말 잘했어요”라고 축하했다. 내가 표를 던진 사람이 상을 받은 것이 흐뭇했다.
나는 영국 TV 미니시리즈 ‘루서’에서 어두운 내면을 지닌 형사 루서로 나와 이 부문에서 주연상을 탄 흑인배우 이드리스 엘바에게도 표를 던졌는데 식후 파티장 입구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내가 엘바에게 “내가 투표한 당신이 상을 받아 매우 기쁘다”고 치하를 했더니 그는 두 손으로 내 손을 부여잡고 “정말 고맙다. 나도 너무나 기쁘다”며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 날 시상식의 한 작은 특징은 많은 상이 외국인들에게 돌아간 것. 엘바와 케이트 윈슬렛(TV 미니시리즈 ‘밀드레드 피어스’로 주연상)은 영국배우요 최우수 TV 미니시리즈 상을 받은 ‘다운턴 애비’도 영국작품이다. ‘비기너즈’로 남우조연상을 탄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캐나다배우다. 또 작품(뮤지컬·코미디)과 남우주연(장 뒤자르댕) 및 음악상을 탄 ‘아티스트’는 프랑스영화다.
이 날 나를 크게 감동시킨 일은 원로배우 시드니 포이티에에 대한 참석자들의 뜨거운 반응. 흑인 최초의 오스카 주연상 수상자인 그가 같은 흑인인 모간 프리맨이 받은 생애업적 상인 세실 B. 드밀 상 시상자로 등단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우뢰와 같은 기립박수로 포이티에를 축하했다. 프리맨은 답사에서 “나는 이 상을 세실 B. 드밀 상과 함께 시드니 포이티에 상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해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기자실로 향하는 포이티에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악수를 나눴는데 많이 늙었다.
더스틴 호프만은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키가 매우 작은데 자기와 사진을 찍는 여자팬이 키를 낮추자 “그러지 말라”며 꼿꼿이 서라고 시정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인자한 미소로 대한다.
호텔 곳곳서 열리는 애프터 파티를 잠깐씩 돌다 보니 제라르 버틀러와 로브 로는 술이 좀 취한 모습인데 제레미 아이언스는 누구를 찾는지 인파로 붐비는 파티장을 계속 헤매고 다녔다. 캐메론 디애스는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 앳되어 보이고 귀엽다. 곰 같은 하비 와인스틴은 매우 행복한 자태로 파티장을 돌아다녔다. 자기 영화가 상을 6개나 탔으니 그럴 수밖에.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