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그의 독보적 생존전략이었던 미사일과 핵, 테러라는 벼랑 끝 작전도 수명이라는 생명체로서의 한계 앞에서는 무력했다. 오는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해 ‘강성대국’을 이루려던 그의 야심은 현실로서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에게 2012년이라는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매일 24시간씩 꼬박꼬박 찾아드는 시간,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는 시간, 망망대해 같아서 때로 익사해버릴 듯 넘쳐나는 시간 - 그 ‘시간의 손님’이 어느 순간 발길을 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존재는 시간에 얹혀서만 가능하고, 시간의 배급이 끊기는 순간 존재는 사라진다. ‘시간의 신’이 꿀꺽 삼켜버리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고야와 루벤스의 그림 중에 봉두난발한 노인이 어린 아이를 잡아먹는 무서운 그림이 있다. 특히 고야의 그림은 아기의 머리통과 어깨부분이 이미 먹혀서 몸통과 다리만 남아있는 처참한 광경이다. 제목은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이다. 보통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데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낫으로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해 몰아내고 신들의 세계를 장악하지만 항상 두려움이 있었다. 그 자신도 자식의 반란으로 밀려난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내 레아가 아기를 낳을 때마다 꿀꺽 꿀꺽 삼켜버렸다. 5남매를 남편에게 잃은 레아는 지혜를 짜냈다. 막내를 낳은 후 크레타 섬에 감추고 돌을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건넸다. 이렇게 해서 목숨을 건진 아기가 바로 올림포스 신들의 왕, 제우스였다.
‘시간의 신’이 자식을 잡아먹는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시간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권력, 부, 명예, 사랑 그리고 생명 … 어느 것도 시간과 더불어 영원하지 못하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그렇다고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1분, 한 시간, 하루, 한 달 … 누구에게나 동일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시간 외에 우리에게는 다른 시간이 있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시간, 카이로스이다.
전자가 재깍재깍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이라면 후자는 우리가 예리하게 의식하는 시간, 감정과 의미가 담긴 질적인 시간이다. 수십년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특별한 기억들은 바로 카이로스의 경험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막내아들이다. 순식간에 휙 지나가는 ‘순간의 신’ 혹은 ‘기회의 신’으로 불린다. 젊고 아름다운 청년 카이로스는 용모가 특이하다. 풍성한 머리카락 한 타래가 이마를 덮을 뿐 뒤통수는 완전 대머리이고 알몸으로 다닌다. 아울러 양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 쏜살같이 사라진다.
그를 붙잡는 길은 이마의 머리타래를 부여잡는 길밖에 없다. ‘기회’는 다가올 때 잡아야지 일단 지나가고 나면 잡을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새해가 밝았나 했는 데 어느새 연말이다. 하루하루는 너무도 긴데 세월은 왜 이렇게 빠르냐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시간도 건너뛰지 않고 한발짝 한발짝 지루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크로노스, 살같이 빠른 시간은 카이로스이다. 크로노스가 우리 삶의 길이, 수명이라면 카이로스는 삶의 내용을 이룬다.
올 한해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수십년 우리에게 친숙했던 소설가 박완서, 세기의 미인으로 꼽혔던 엘리자베스 테일러, 9.11 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 ‘죽을 권리’ 옹호에 앞장섰던 잭 키보키언, 형사 콜롬보로 더 알려진 피터 포크, 디지털 세계를 주머니 속에 넣어준 스티브 잡스, 리비아의 독재자 가다피, 한국 산업발전의 대부 박태준…
그리고 이름 없는, 그러나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 소중했던 특별한 인연의 사람들이 2011년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들 모두 사라졌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그들이 살았던 삶, 그 삶이 남긴 흔적은 제각각이다. 불가항력인 크로노스의 시간 중에 어떤 카이로스의 시간을 얼마나 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사람과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담는다면 매순간이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래서 “생이 끝났을 때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생애동안 나는 경이로움과 결혼한 신부였다고/ 세상을 두 팔에 안은 신랑이었다고/ 단지 이 세상을 방문한 것으로/ 생을 마치지는 않으리라.”<메리 올리버 ‘생이 끝났을 때’>고 새해를 앞둔 이 연말 우리 모두 다짐했으면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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