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내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가 2011년도 각 부문 베스트를 뽑는 모임이 동료회원 마이론 마이셀의 집에서 있었다. 마이론은 나와 악수를 나누면서 “올해도 좋은 한국영화들이 있었지. 특히 ‘포에트리’”하며 내 손을 꽉 쥐었다.
난 그 순간 문득 작년과 같은 경사가 다시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우리가 베스트를 뽑을 때 동료회원 여럿이 내게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나온 김혜자씨의 영어 스펠링을 묻더니 결국 그가 최우수 주연여우로 뽑혔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날 내 예감은 적중했다. 최우수 주연여우를 뽑는데 계속해 ‘시’(Poetry)에 나온 윤정희씨의 이름이 거명됐다. 최종 후보는 윤정희씨와 한 여인의 우울증과 세계 종말을 대비시킨 ‘멜란콜리아’에 나온 커스튼 던스트 2명으로 압축됐다.
윤정희씨가 압도적으로 던스트를 제치고 2011년도 최우수 주연여우로 뽑히는 순간 내 뒤에 앉았던 밥 스트라우스(LA 데일리 뉴스)가 내 등을 치면서 “헤이, 2연패로구나”라며 치하를 했다. 이제는 세계가 알아주는 장족의 발전을 한 한국 영화의 결실을 인정하는 자리에 함께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았다.
던스트는 올해 ‘멜란콜리아’(Melancholia-상영중)로 칸영화제서 최우수 주연여우상을 탄 젊은 연기파. 윤정희씨는 이런 던스트뿐 아니라 얼마 전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의 전기영화 ‘아이언 레이디’(The Iron Lady-16일 개봉)로 뉴욕 영화비평가 서클에 의해 최우수 주연여우로 뽑힌 메릴 스트립과 쟁쟁한 연기파들인 미셸 윌리엄스 및 틸다 스윈튼 등을 누르고 영광을 차지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 여배우를 베스트로 뽑고 또 이번에 이란 영화에 각본상을 줌으로써 LAFCA는 다시 한 번 진취적이요 모험적이며 테두리를 벗어나 좋
은 것의 정수를 찾는 비평가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윤정희씨는 이창동이 감독하고 각본을 쓴 ‘시’(사진-DVD)에서 혼자 손자를 돌보며 시 창작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 치매 초기증세 할머니의 모습을 고요하고 민감하며 또 섬세하고 곱게 표현했다. 한편 ‘시’는 최우수 영화, 최우수 외국어 영화 그리고 감독 및 각본 부문에서도 여러 명의 회원들에 의해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이날 최우수 주연 남우로는 올해 섹스 중독자의 고뇌를 다룬 ‘수치’(Shame-상영중)와 ‘제인 에어’ 등 총 4편의 영화에서 활약을 한 마이클 화스벤더가 선정됐다. 최우수 작품상은 식물인간인 아내 대신 두 딸을 돌보는 하와이의 한 가장의 드라마 ‘후손들’(The Descendants-상영중)에 돌아갔다. 최우수 감독으로는 ‘생명의 나무’(Tree of Life-DVD)를 만든 테렌스 맬릭이 뽑혔는데 이 영화는 최우수 촬영작으로도 선정됐다.
최우수 조연여우로는 올해 ‘생명의 나무’와 ‘헬프’ 등 모두 6편의 영화에서 호연한 제시카 채스테인이 선정됐다. 최우수 조연남우로는 ‘비기너스’(The Beginners)에서 불치의 병을 앓는 70대남자가 뒤늦게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고 짧지만 행복한 삶을 즐기는 모습을 자비롭고 다정하며 우습게 보여준 베테런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선정됐다.
최우수 각본상은 쟁쟁한 미국 영화들을 물리치고 이란의 ‘별거’(A Separation)가 차지했다. 이혼 수속중인 중년부부를 통해 이란의 신분 차이와 전통과 보수의 충돌을 실팍하게 그렸다.
최우수 만화영화로는 자니 뎁이 음성연기를 한 파충류 웨스턴 ‘랭고’(Rango)가 뽑혔고 최우수 외국어 영화로는 일본군의 난징 양민 대학살을 끔찍하도록 적나라하게 표현한 ‘삶과 죽음의 도시’(City of Life and Death)가 선정됐다. 이 영화에 비하면 장이머가 감독하고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하는 곧 개봉될 같은 내용의 ‘전쟁의 꽃들’(The Flowers of War)은 신파극에 지나지 않는다.
최우수 음악상은 소녀 킬러의 스릴러 ‘해나’(Hanna-DVD)가 받았고 최우수 기록영화로는 베르너 헤르조그의 ‘잃어버린 꿈들의 동굴’(Cave of Forgotten Dreams-DVD)이 선정됐다. 한편 생애업적상은 히치콕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 주연하면서 오스카상을 받은 노래 ‘케이 세라 세라’를 부른 도리스 데이가 받는다.
LAFCA 2011년도 베스트 시상만찬은 오는 1월13일 센추리시티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서 열린다. 파리에 살고 있는 윤정희씨가 피아니스트인 남편 백건우씨와 함께 참석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브라바 윤정희!
<박흥진 편집위원> /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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