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님을 제 멘토로 생각합니다” “놀랍습니다. 저는 생활의 리듬을 지킬 뿐인 걸요” “바로, 그 점이 교훈을 줍니다” “아닙니다, 나무는 나무일 뿐입니다” “좋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지켜보며 배우겠습니다” 나무가 멘토라면 의외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첫째, 나무는 생명력이 강하다. 작고 여린 씨앗이 흙 속에서, 바위틈에서, 꿋꿋이 자라며 웬만한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삶을 이어간다.
둘째, 나무는 사계절의 자연 변화에 순응한다. 봄에는 새 싹이 움트고, 여름에는 정열의 전성기를 이루다가,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나목의 아름다움을 보이며 휴식을 취한다. 기후에 따라 자기 자신을 맞춰 가는 지혜가 있다.
셋째, 자기의 개성을 지킨다. 결코 다른 종류의 나무와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넷째, 나무들은 쉴 새 없이 주위에 베푼다.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보낸다.
또 목재나 과일, 펄프재나 섬유의 원료 등을 준다. 홍수를 막고 사철 맑은 물을 쓸 수 있게 도우며 경치를 아름답게 한다. 또 특이한 것은 자기 자신의 성장 과정을 나이테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검증으로 나무는 우리들의 멘토가 될 수 있음이 충분하다.
어린이들이 읽는 책 중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 by Shel Silverstein)가 있다. 널리 알려진 책이지만 그 내용을 간추리면, 나무와 한 소년과의 사랑 이야기다. 소년이 어릴 때부터 그가 늙을 때까지 나무는 한없이 잔잔한 애정으로 그를 적신다. 늙고 피곤한 소년이, 그루터기만 남아있는 나무를 찾는다. 늙은 소년은 쉬고 싶었고, 나무는 그를 자기의 그루터기에 앉히고 두 사람은 행복했다. 편안했다.
이 이야기는 어린이들과 그 부모가 같이 여러 번 읽어도 좋겠다. 이 나무의 아낌없는 사랑이 바로 부모의 끝없는 사랑이다. 어린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부모의 애정을, 부모는 자녀 사랑의 참모습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다. 조용한 서술문이 이처럼 감동을 주는 경우가 드물 것 같다. 이 나무도 우리의 멘토가 되기에 충분하다.
대나무의 직선으로 뻗쳐오른 줄기는 아름답다. 거기에 알맞는 간격의 마디가 없다면 얼마나 불안할까. 혹시 부러질까봐, 혹시 빗방울이나 벌레가 미끄러질까봐 염려될 것이다. 그런데 규칙적인 마디가 있어서 든든하고 보기도 좋다. 이것이 대나무의 지혜이며 우리의 멘토가 될 수 있는 자격이다.
나무조차 우리의 멘토가 될 수 있는데, 요즈음은 본받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개탄한다.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배울 일은 얼마든지 있다. 한 사람을 송두리째 본보기로 삼기 어려우면, 몇 사람의 부분적인 생각이나 언동을 배울 수 있다.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온갖 사물이 내 모범이 될 수 있다.
대나무의 마디 만들기는 섣달에 할 일을 알려준다. 아무 것이라도 그냥 뜻 없이 흘러 버리지 않게 정리하라고 말한다. 나무의 나이테는 지난 한 해를 깔끔하게 정리하라고 말한다. 간직할 것과 버릴 것을 구별하여 지난 일 년을 상자 속에 넣으라고 한다. 연말이 피곤하면 가족들이 나무 그루터기에 모여 앉아 쉬는 것이 좋다. 거기서 서로 위로하면서 새해맞이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휴식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출발점을 찾는 과정이다.
허병렬 /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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