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매년 1월 주관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오스카와 달리 느슨한 분위기 속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즐기는 명실 공히 ‘할리웃 최고의 파티’로 유명하다.
골든 글로브 쇼는 한동안 호스트 없이 진행돼 오다가 2년 전부터 영국의 코미디언 릭키 제르베스를 호스트로 초빙, 그의 무차별 입담에 흥청망청한 파티 분위기가 더욱 무르 익어가고 있다.
그런데 올 1월 시상식에서 호스트로 나타난 제르베스(사진) 가 쇼에 참석한 스타들을 비롯해 자기를 초청한 HFPA와 필립 버크 당시 HFPA 회장 등을 싸잡아 가차 없는 농담의 표적으로 삼아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제르베스는 작품상(코미디/뮤지컬) 후보에 오른 ‘투어리스트’로 각기 남녀 주연상 후보로 선정된 자니 뎁과 앤젤리나 졸리를 “2차원적 인물들”이라고 비아냥댄 뒤 “이들이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스튜디오가 HFPA에게 뇌물을 준 덕택”이라고 거의 모욕이나 다름없는 농담을 했다.
그는 또 약물 중독자였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과거를 들춰내는가 하면 탐 크루즈와 존 트라볼타가 믿는 사이언톨로지를 들먹이면서 크루즈가 게이임을 시사하는 말을 했다. 제르베스는 이밖에도 멜 깁슨과 찰리 쉰 및 브루스 윌리스 등에 대해서도 독설에 가까운 농담을 해 쇼 참석자들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이어 버크 회장의 노령을 조롱, 약간 까다로운 성격의 버크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기도 했다. 어쨌든 제르베스의 이런 독약이 묻은 비수 같은 농담 때문에 NBC-TV가 방영한 쇼의 시청률이 올라가 전 미국서 1,700만여명이 쇼를 관람했다.
그러나 쇼가 끝나면서 버크 회장(그는 나의 HFPA 가입 스폰서다)을 비롯한 일부 HFPA 노장파들이 제르베스의 농담이 선을 넘었다고 강력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제르베스의 골든 글로브 시상식 호스트는 올해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버크 회장은 “자기를 초청한 주인을 모욕하는 객이 어디 있느냐”면서 “제르베스는 다시는 우리 쇼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시상식이 끝난 뒤 우리 회원들은 과연 제르베스의 농담이 그를 HFPA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만들만큼 도를 넘어선 것이냐는 점을 놓고 논란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농담이 때로 선을 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흥겨운 파티를 위한 코미디언의 유머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올 시상식 후로 최근까지 우리는 과연 제르베스를 다시 호스트로 부를 것이냐 말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 찬반토론을 계속해 왔다. 그의 컴백을 반대하는 노장파들은 제르베스가 다시 호스트로 나타나면 그의 농담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한 스타들이 대거 쇼에 불참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나를 비롯한 제르베스의 컴백 옹호자들은 그의 독한 농담이야 말로 코미디언이 할 직분이니 너그럽게 그를 받아들이자고 반론을 제기했다.
결국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 지난 16일 투표에 들어갔다. 결과는 찬 46대 반 16. 이 같은 결과가 발표되자 제르베스는 비디오를 통해 자기가 한 올 시상식 호스트 모습을 보여주면서 “당신들이 날 네 번째 호스트로 더 이상 초청할 마음이 없게 만들기 위해 내가 한 농담의 10배는 독한 농담을 할 것”이라는 응답을 보내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농담이고 제르베스는 그로부터 며칠 뒤 “당신들과 다시 함께 일하기를 학수고대한다”면서 “내년 1월에 만나자”고 다시 불러줘 고맙다는 뜻을 표했다.
HFPA는 제르베스 초청에 대한 투표를 하기 전에 과연 그가 컴백하면 정말로 많은 스타들이 시상식에 불참할 것이냐는 사실을 조사했다. 스타들을 대표하는 20여개의 홍보회사를 상대로 문의한 결과 불참 의사를 표한 스타는 한 사람도 없었다.
단 하나 예외가 존 트라볼타. 열렬한 사이언톨로지 추종자인 그는 올 해 제르베스가 사이언톨로지를 걸고넘어지는 농담을 한 뒤 버크 회장에게 전화로 자신의 불쾌감을 표한 바 있다. 그러나 ‘후 케어즈 트라볼타’라는 것이 내 소견이다.
여하튼 제르베스의 컴백으로 내년 1월15일 베벌리 힐튼호텔에서 거행될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물론 TV 시청률도 올해보다 훨씬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HFPA의 재정은 이 TV 방영권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청률은 거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릭키 제르베스가 내년 시상식에서 과연 또 어떤 독설을 해댈지 자못 궁금하다.
그가 어떤 농담을 하든지 나는 굿이나 보면서 떡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느긋이 쇼를 즐기겠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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