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26일에 거행될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제작자인 영화감독 브렛 래트너(42·사진)가 도중하차한 데 이어 사회자인 코미디언 에디 머피도 사표를 제출, 지금 할리웃에선 때 이른 오스카 쇼가 벌어지고 있다.
이 줄사표 소동의 근원은 래트너의 게이에 대한 혐오감이 섞인 발언에 기인한다. 그는 지난 주말 자신의 최신작 액션 코미디 ‘타워 하이스트’ 상영 후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리허설은 패그스(fags)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게이를 비하하는 실언을 했다. 래트너는 이 발언에 대해 곧 사과했지만 동성애 옹호단체들과 많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강력한 항의에 못 견뎌 지난 8일 아카데미에 사의를 표명한 것.
래트너가 사표를 낸 다음날 ‘타워 하이스트’에 주연한 머피도 오스카 쇼 사회자직을 물러났는데 머피를 사회자로 뽑은 사람은 래트너다. 한편 아카데미는 래트너의 후임으로 공교롭게도 ‘타워 하이스트’의 제작자로 오스카상 수상자인 브라이언 그레이저(‘뷰티플 마인드’)를 선정했다. 그리고 사회자는 과거 오스카 쇼 사회를 여덟번이나 본 베테런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탈이 맡는다. 그의 마지막 사회는 2004년도 오스카 쇼.
아카데미가 지난 8월 래트너를 오스카 쇼 제작자로 선정했을 때 아카데미 회원들이나 언론의 반응은 뜻밖이라는 것이었다. 오락영화 전문으로 재키 챈이 나온 ‘러시 아워’ 시리즈를 만든 래트너는 할리웃의 ‘배드 보이’로 파티와 여자 좋아하기로 유명한 철이 덜 난 아이 같은 사람이다. 그는 특히 생각 없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말을 하는데 지난 2일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와의 인터뷰 때도 이런 즉흥적 반응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래트너는 오스카쇼 제작자로서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한 오스카 쇼 중의 하나인 오스카 바로 다음에 이 쇼를 맡게 돼 매우 행복하다”면서 “덕택에 내 일이 훨씬 쉽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악평을 받은 젊은 두 배우 제임스 프랭코와 앤 해사웨이가 공동사회를 본 지난 2월의 오스카 쇼를 두고 한 말이다. 래트너는 또 게이 혐오발언에 대해 사과한 다음날에는 하워드 스턴의 라디오 쇼에 출연, 오럴섹스를 들먹여가며 자신의 성적 습관을 노골적으로 털어놓았다. 그런데 래트너는 한 때 할리웃의 또 다른 말썽꾸러기인 린지 로핸과 관계를 가졌었다.
아카데미가 일부 언론으로부터 ‘날 사기꾼’이라는 말을 듣는 래트너를 쇼의 제작자로 선정한 것은 갈수록 시청률이 떨어지고 구태의연하다는 말을 듣는 오스카 쇼의 내용과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놓겠다는 뜻에서였다. 비록 래트너는 할리웃의 ‘배드 보이’이긴 하나 파격적이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어서 그를 기용해 이번 쇼를 흥미진진한 버라이어티 쇼처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가 입이 걸고 입심 좋은 에디 머피를 쇼의 사회자로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래트너는 인터뷰에서 “내가 제작자로서 잘한 첫 번째 일은 코미디언인 에디를 사회자로 뽑은 것”이라면서 “내 쇼를 재미있고 우습고 감정 충만하며 또 사람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는 이어 “시상식이 절반쯤 끝나면 극장 안은 패배자들로 가득 차게 마련”이라면서 “이들을 즐겁게 해줄 사람은 코미디언밖에 없다”고 말했다. 래트너는 머피와의 콤비에 대해 “우리는 서로 믿고 있어 든든하다”면서 “에디 머피는 전설적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한편 인터뷰에서 머피는 “오스카 사회를 처음 맡게 돼 흥분된다”면서 “내 최선을 다해 최고의 쇼로 만들고 싶다”며 다소 감정이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어 “브렛은 재주꾼으로 그가 만드는 쇼가 잘못 될 리가 없어 난 비록 첫 번째 사회지만 조금도 위압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를 칭찬해 가며 오스카 쇼를 ‘지상 최대의 쇼’로 만들어 보겠다던 래트너와 머피의 꿈은 래트너가 세치 혀를 잘못 놀리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 당분간 쥐 죽은 듯이 처신할 래트너는 과연 할리웃의 전면 무대로 컴백할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은 반 유대인 및 동성애 발언을 해 언론의 뭇매를 맞았던 멜 깁슨이 유대인 전사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판에 래트너가 한 번의 말실수로 할리웃에서 영원히 매장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할리웃은 돈만 잘 벌어다주면 모든 잘못은 금방 잊어버리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이번 래트너의 실언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발 물러서는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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