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바닷가 포장마차 어항 속의 개불 들은 넓은 바다가 그립다는 듯이 서로 몸들을 비비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 동 반자인 독일인 친구 엘마와 나는 매일 밤 어 항 앞에 앉아 소주에 맥주를 곁들여 마시면서 ‘춤추는 개불들’ 을 감상했다.
한국영화기자협회(KOFRA-회장 김호일)와 부산국제영화제(BIFF-집행위원장 이용관)의 초청으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장 아 이다와 전 부회장 엘마 그리고 회원인 나 등 셋이 지난 주 해운대에서 열린 부산 국제영화 제엘 다녀왔다. 매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6일 야외극장서 개막식이 열린 새로 개관한 부산 시네마센터는 아름답고 웅장했다. 건물모 양은 필름을 담는 원통형인데 순전히 영화만 을 위한 건물로선 세계 어느 영화제 건물과 비 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영화제 심사위원 장인 호주의 영화감독 질리안 암스트롱도“ 시 드니엔 오페라 하우스가 있지만 이렇게 훌륭한 영화건물은 없어 샘이 난다”고 말해 참석자들 의 큰 박수를 받았다.
개막식 파티 후 호텔로 돌아가는 해변길로 밤파도 소리가 스토커처럼 나를 쫓아온다. 그 소리가 내가 예전에 졸병으로 야간보초를 서 던 동해안 밤파도의 그것과 똑같다. 엘마와 나 는 이날부터 돌아오는 전날까지 매일 밤 엘마 가‘ 벌레’라고 부른 개불을 안주 삼아(나만 먹 음) 술과 함께 해운대의 밤기운에 취했다. 엘마는 후에 “눈만 감으면 춤추는 개불들이 눈앞 에 나타난다”며 껄껄대고 웃었다.
영화제는 매년‘ 한국영화 회고의 밤’을 열고 한국영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영화인들을 기 리는데 올해는 김기덕 감독(작은 김기덕이 아 님)이 선정됐다. 김 감독은‘ 맨발의 청춘‘’ 가정 교사’ 및 ‘5인의 해병’ 등 생애 70편의 영화를 만든 베테런.
나는 작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계 의 거목 정창화 감독(사진 오른쪽-샌디에고 인 근 라호야 거주)의 소개로 김 감독(사진 왼쪽) 그리고 또 다른 베테런으로 김기덕 감독과 호 형호제하는 김수용 감독 등과 함께 꼭두새벽 까지 포장마차에서 개불 등을 안주로 술을 마 시면서 영화 얘기를 해 그와는 구면인 사이.
원로 평론가 김종원씨의 사회로 진행된‘ 회 고의 밤’에서 김 감독은 답사를 하면서 눈물 을 글썽거릴 만큼 순진하고 때가 안 묻은(본 인 말) 사람인데 답사 후 “진심으로 축하드린 다”는 나의 손을 잡고 “술 한 잔 하세”라고 붙 들었다. 최희준이 부르는‘ 맨발의 청춘’이 흘러 나오는 ‘회고의 밤’에는 역시 작년에 만난 원 로배우 윤일봉과 남궁원씨 등이 참석, 반갑게 수인사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정 감독의 초청으로 원로 감독들과 신진감독 및 제작자와 배우들이 김 감독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임권택, 정 지용, 이두용, 이장호, 박철수 및 이정향 감독 등과 함께 배우 안성기, 강수연, 엄지원 등 많 은 영화인들이 모였다.
나는 안성기의 옆에 앉아 함께 영화와 배우 들의 조로현상에 관해 얘기를 나눴는데 사람 이 매우 점잖고 겸손했다. 안성기는 홀짝 홀짝 소주만 마셨다. 목에 십자가를 건 자칭‘ 술 마 시는 장로’ 이장호 감독과는 국도극장에서 본 ‘별들의 고향’ 그리고 임권택 감독과는 그의 최신작‘ 달빛 길어 올리기’에 관해 환담했다.
임 감독 곁에 앉은 강수연(45)의 얼굴을 보 니 몹시 젊어 보이고 깜찍하게 예뻤다. 나는 그 에게“ 무슨 젊음의 비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강수연은 “아마 시집을 안 가서 그럴 거 예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이튿날은 KOFRA가 마련한 우리 3인에 대 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기자생활 37년 만에 공 식 인터뷰 대상이 돼보긴 처음이다. 회견의 내 용은 할리웃에서 본 한국영화의 위상과 한국 영화가 HFPA가 주는 골든 글로브 및 오스카 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길에 관한 것이었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이튿날 불국사 와 석굴암을 찾았다. 아이다와 엘마는 모두 이 번이 첫 한국 방문. 둘 다 불국사의 건축양식과 다채로운 장식무늬에 “원더풀”을 연발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가톨릭 신자인 아이다는 신발 을 벗고 절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숙여 불상에 경의를 표했다.
이어 석굴암으로 가기 전 우리는 추수를 앞 둔 황금빛 논가에 앉아 소주와 함께 오리고기 를 포식했다.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푸 른 산이 둘러싼 마을이 순결하고 고요했다.
석굴암 구경 후 피로에 찬 아이다를 위해 스 님에게 차편을 부탁하니 몸소 차를 운전해 우리를 아래까지 실어다 주었다. 가는 중에 내가 스님에게 “종교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더니 스님은“ 그 것은 진리 탐구이지요”라고 답한다.
떠나오기 전날 밤 엘마와 나는 개불에게 작 별인사차 다시 포장마차엘 들렀다. 술이 거나 해진 엘마가 “여행을 하고 떠날 때의 기분은 늘 조금씩 죽는 느낌”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동감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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