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초 우연히 TV로 클립 로벗슨이 나온 두 영화 ‘피크닉’과 ‘PT-109’을 다시 봤는데 이 영화들을 본지 불과 며칠 안 돼 지난 10일 로벗슨이 88세로 사망했다.
내가 로벗슨을 처음 본 것은 중학생 때 명동극장에서 본 아찔하게 로맨틱한 ‘피크닉’(1955)에서였다. 주연은 윌리엄 홀든으로 로벗슨은 조연인데 로벗슨보다 키도 크며 근육미도 좋고(그래서 홀든은 자주 웃통을 벗어 제쳐 소녀에서부터 과부에 이르기까지 온 동네 여자들의 넋을 빼앗아 놓는다) 또 얼굴도 잘 생긴 떠돌이 홀든이 부잣집 아들인 로벗슨의 약혼녀 킴 노박을 가로챈다.
로벗슨 하면 언뜻 떠오르는 영화가 ‘PT-109’이다. 이 영화는 케네디가 2차 대전 때 모터 어뢰보트 정장으로 남태평양 전투에 참전, 혁혁한 무공을 세운 실화인데 케네디는 이 때 등에 입은 부상으로 평생 고생을 했다.
케네디가 암살당한 1963년에 개봉된 영화에서 케네디 역을 맡은 로벗슨(사진)은 케네디가 개인적으로 승인, 화제가 됐었는데 영화는 비평가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받았고 로벗슨의 경력에 큰 도움이 되지도 못했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생 때 대낮에 텅 빈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재미가 없어 꾸벅꾸벅 졸면서 봤다.
로벗슨은 TV와 무대작품과 함께 많은 영화에 나오면서 ‘찰리’(Charly․1968)로 오스카 주연상 까지 받았지만 결코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배우다.
정신박약자로 나온 ‘찰리’(오스카상은 아프거나 정신박약자라로 나와야 탄다는 말이 맞다)를 제외하곤 특별히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영화가 별로 없다. 그나마 그의 연기가 돋보였던 영화는 말년에 ‘플레이보이’ 창립자인 휴 헤프너로 나온 ‘스타 80’다.
연기와 함께 생김새도 별 특색이 없는 전형적인 미국 남자 얼굴이어서 그는 오스카상을 받고도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에 나오질 못했다. 그래서 로벗슨 자신도 생전 스스로를 ‘만년 들러리’라고 자조했다.
이런 로벗슨이 할리웃의 센세이셔널한 화제의 주인공이 된 사건이 지난 1977년에 일어난 데이빗 베이글만 사건이다. 그 해 로벗슨은 국세청으로부터 컬럼비아사에서 일하고 받은 1만달러에 대한 소득신고 미필의 통지를 받았다.
같은 해 컬럼비아사에서 일한 적이 없는 로벗슨이 알아본 결과 베이글만 컬럼비아사 사장이 수표에 로벗슨의 서명을 위조한 뒤 회사 돈을 횡령한 것을 발견, 이를 연방수사국(FBI)에 고발했다.
그 결과 베이글만은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기이한 것은 그 후 베이글만은 MGM 사장으로 취직했지만 로벗슨은 3년반 동안 블랙리스트에 올라 배역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로벗슨이 ‘메이저 영화사의 세력자에 맞서지 말라’는 할리웃의 불문율을 깼기 때문이다. 그런데 MGM을 떠난 뒤 제작자로 활동하던 베이글만은 지난 1995년 LA 인근 센추리시티의 센추리 플라자 호텔에서 자살했다.
베이글만 사건은 하도 유명해 1982년 데이빗 맥클린틱이 ‘꼴사나운 폭로: 할리웃과 월스트릿의 실화’라는 책으로 써내 베스트셀러가 됐었다. 나도 이 책을 읽었는데 할리웃의 부패와 내막과 이면 폭로가 흥미진진하다.
로벗슨이 나온 영화들로는 둘 다 전쟁영화인 ‘악마의 여단’(역시 윌리엄 홀든 주연)과 노만 메일러의 소설이 원작인 ‘나자와 사자’ 그리고 스파이 스릴러 ‘콘도르의 3일’과 서핑영화 ‘기젯’ 등 연기생애 50여년에 걸쳐 60편에 이르나 대부분 조연이거나 신통치 못한 영화들이다.
그는 영화보다 TV서 더 각광을 받은 배우로 드라마 ‘게임’으로 에미상을 받았는데 오스카상을 받은 ‘찰리’도 TV 드라마가 원작이다. 로벗슨은 ‘찰리’ 전에 역시 영화화 된 연극 ‘오르페우스 내려가다’와 TV 드라마 ‘포도주와 장미의 날들’에 주연했다.
그런데 막상 ‘오르페우스 내려가다’가 ‘도망자’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주연은 말론 브랜도에게 주어졌고 ‘포도주와 장미의 날들’도 스크린의 주연은 잭 레몬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로벗슨은 ‘찰리’의 TV 드라마 원제인 ‘찰리 고든의 두 세계’에 주연으로 발탁돼 제작을 준비할 때 작품의 영화화 판권을 사 주연해 마침내 오스카상을 탔다.
로벗슨은 어떻게 보면 영화보다 TV에 더 잘 맞는 배우라고 하겠다. TV 배우가 영화배우로 성공하기가 힘든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탓인지 오스카상을 타고 최근까지 활동을 한 배우치곤 로벗슨은 대중의 기억에 뚜렷하게 남지 못하는 배우 중 하나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스파이더-맨 3’(2007)로 스파이더-맨의 삼촌 벤 파커로 캐미오 출연했다.
로벗슨은 1923년 9월9일 LA에서 대목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대졸 후 극작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가 여름극단에서 일하면서 TV와 무대를 거쳐 할리웃에 진출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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