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전쟁스릴러 ‘허트 라커’를 감독한 캐스린 비글로(오스카상 수상)와 각본을 쓴 마크 보알(사진 왼쪽)이 다시 손 잡고 만들 오사마 빈 라덴 암살작전을 그릴 영화가 실제작이 시작되기도 전에 백악관을 비롯한 정부당국의 특혜를 받았다는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제로니모 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해군특공대(SEAL)와 CIA요원이 합동해 파키스탄에 은신 중이던 빈 라덴을 살해한 과정을 정치적 배경과 함께 액션 스릴러 식으로 만들 예정이다. 마치 할리웃 영화의 각본 내용을 그대로 따다 옮긴듯한 이 작전의 영화는 콜럼비아사가 배급한다.
그런데 비글로와 보알이 영화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백악관이 둘에게 적들이 유용히 쓸만한 특급비밀을 공개했다는 신문보도가 나가면서 영화는 제작 초기단계부터 역풍을 맞고 있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얼마 전 비글로와 보울이 미 역사상 가장 철저한 비밀 속에 진행된 작전에 관한 특급정보를 열람했다고 보도하고 비글로의 영화가 오는 2012년 대통령선거 불과 수 주 전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피터 T. 킹(공화) 하원 국가안보위 위원장은 국방부와 CIA에 서한을 발송, 타임스 보도의 사실여부를 조사해 줄것을 요청했다. 그는 이와 함께 영화의 개봉일이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빈 라덴 암설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한 오바마의 재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물론 백악관은 타임스 보도를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부인하고 “국가 안보위는 영화보다 좀 더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라”고 조언했다. 한편 타임스의 보도에 대해 국방부는 “군당국의 비글로 감독의 영화에 대한 협조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비글로와 보알이 국방부 정보관계 고위 인사를 인터뷰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자신들의 영화가 이 같은 정부의 특혜논란에 휩싸이자 비글로와 보알은 성명을 내고 “우리의 영화는 클린턴과 부시와 오바마 세 행정부의 결집된 노력과 함께 국방부와 CIA의 협동작전을 취합해 묘사할 것”이라면서 “빈 라덴 암설작전은 당의 차원을 떠난 미국의 승리로 우리는 이 승리를 결코 본래 뜻과 달리 그릴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 군당국과 할리웃은 오래 전부터 서로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전쟁영화를 만드는 영화사들은 영화의 사실성을 위해 장비와 인력과 정보 및 장소를 제공해 줄 군당국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군당국은 나름대로 젊은이들의 자원입대와 군의 사기진작 및 대 시민 홍보를 위해 할리웃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군당국은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해 줄만한 영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협조를 하고 있다. 그 좋은 예가 ‘트랜스포머즈’ 시리즈와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과 싸우는 미해병들의 활약을 그린 ‘전투:LA’다. 또 곧 촬영에 들어갈 이 번 작전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SEAL의 납치된 CIA요원 구출작전을 그릴 ‘용기의 행위’(Act of Valor)에는 SEAL대원들이 직접 출연한다.
그러나 군당국은 자신의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지 못할 영화는 철저히 배척하고 있다. 특히 협동을 강조하는 군당국은 할리웃이 좋아하는 독불장군 식의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기피하고 있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이단자 같은 폭파물 제거반원의 활약을 그린 ‘허트 라커’도 군당국의 외면을 받았다. 비글로와 보알은 이 영화제작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군당국과 상의 했으나 각본 속 주인공의 위험한 독불장군 식의 행동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고 그 결과 군당국의 협조를 받지 못했다고 LA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의하면 군당국이 ‘허트 라커’의 주인공 만큼이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물들은 조지 C. 스캇이 묘사한 으스대는 패튼장군(‘패튼’)과 로버트 두발이 보여준 깡패 두목 같은 베트남전의 미 헬기공격조 지휘관 킬고어(‘지옥의 묵시록’) 및 무법자들의 집단이나 마찬가지인 인기 TV시리즈 ‘매쉬’의 군의관들이다. 이들은 모두 독단적이요 오만하고 협동과 단결을 중요시하는 군인정신을 저버린 이단자들이기 때문이다.
군당국이 ‘허트 라커’와 달리 빈 라덴 암설작전 제작에 적극 협조할 의사를 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특수훈련을 받은 군인들이 정보기관과 행정부와 삼위일체가 되어 전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미 시민들이 잘 모르는 베일 속의 군 특공대와 함께 시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정보당국과 정부가 고루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빈 라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나는 그가 암살 됐다는 뉴스를 들은 미 시민들이 길거리로 떼지어 쏟아져 나와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빈 라덴이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 할지라도 한 인간의 죽음을 집단으로 기뻐한다는 것은 비인간적인 행위다. 인간은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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