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부터 사흘간 해리슨 포드(‘카우보이와 외계인’)와 함께 스티브 카렐, 줄리언 모어, 라이언 가슬링 그리고 엠마 스톤(‘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 등을 인터뷰하기 위해 뉴욕엘 다녀 왔다.
도착한 날 센트럴팍 앞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서 가까운 플라자 호텔의 ‘오크 바’에 들렀다. 이 바는 내가 프레스 정킷 때문에 1년에 몇 차례씩 뉴욕에 갈 때마다 찾아가는 곳이다. 히치콕의 멋있는 스릴러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때문이다. 여기서 대낮에 광고회사 중역으로 플레이보이인 케리 그랜트가 신원 오인으로 괴한들에게 납치돼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죽을 곤욕을 치른다.
바에 앉아 바텐더와 얘기를 나누는데 바텐터가 ‘오크 바’와 식당을 새 주인이 사 오는 8월1일부터 문을 닫는다며 “새 직장을 찾아야 할 신세”라며 한숨을 짓는다. 옛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남의 일 같지 않게 섭섭했다.
이튿날 인터뷰가 끝난 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동료들과 함께 브로드웨이의 알 허시펠드 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노력하지 않고 사업에 성공하는 법’(How to Succeed in Business without Really Trying·사진)을 보러 갔다. 비잔틴 양식의 허시펠드 극장은 지난 2003년 작고한 유명 삽화가 허시펠드의 이름을 따 명명한 극장으로 지난 1981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연극 ‘작은 여우들’로 여기서 브로드웨이 데뷔를 했다.
‘노력하지 않고…’는 현재 빅히트를 하고 있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파트 2’에서 해리 포터로 나오는 대니얼 래드클립(21)이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이다. 평일인데도 만원을 이룬 극장 안으로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온 해리 포터의 열렬 팬들인 여고생들이 몰려 들어가고 있었다.
뮤지컬은 간교하고 비도덕적이요 무자비한 젊은 빌딩 유리창 청소부 J. 피에르판트 핀치가 뮤지컬 제목과 같은 책의 지침에 따라 처신, 삽시간에 회사 우편물 배달원에서 이사장으로 승진한다는 내용이다.
아카데미와 토니상 수상자인 프랭크 로서의 음악과 노래가 멋있고 흥겨운데 그는 팝, 재즈, 스윙, 삼바, 록, 그리고 심지어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과 함께 헨리 맨시니의 음악을 연상케 하는 온갖 장르의 음악을 혼성했다. 즐거운 노래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커피 브레이크’ ‘어 세크리타리 이즈 낫 어 토이’, 신나는 ‘그랜드 올드 아이비’ 및 달콤한 ‘로즈메리’와 ‘신데렐라 달링’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야단스럽게 흥나는 ‘브라더후드 오브 맨’ 등이 좋다.
지난 1961년 초연, 퓰리처와 토니상을 받은 이 뮤지컬은 그 뒤로 지금까지 두 차례 리바이벌 된 인기작품으로 초연 때 핀치 역은 로버트 모스가 맡아 토니상을 받았는데 지난 1967년에 모스 주연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또 지난 1995년에는 매튜 브로데릭 주연으로 리바이벌 돼 브로데릭이 역시 토니상을 받았다.
막이 오르면서 핀치가 유리창 청소용 그네를 타고 무대 아래서 위로 오르며 등장하자 소녀 팬들이 “와, 와”하며 요란한 박수와 함께 아우성을 친다. 간교하고 야심 찬 핀치는 성공 교본의 지침에 따라 아첨과 거짓과 술수를 동원, 어수룩한 사장 J.B. 비글리(TV 시리즈 ‘나이트 코트’의 존 라로켓-비글리 역으로 올해 토니상 수상)를 속이고 농락하면서 그의 총아가 돼 순식간에 회사의 우두머리로 올라간다. 핀치는 시궁창 쥐 같은 인간이다.
뮤지컬은 핀치의 이런 고속 승진과정에서 일어나는 그의 권모술수와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 그리고 여비서 로즈메리와의 로맨스 등을 명랑하고 힘차게 그렸다. 1960년대가 시간대로 당시의 기업 풍토와 직장 내 여성에 대한 차별대우를 풍자했는데 요즘 빅히트를 하고 있는 TV 시리즈 ‘매드 멘’을 풍자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번 공연은 래드클립의 뮤지컬 브로드웨이 데뷔지만 그는 일찌감치 지난 2008년 피터 셰이퍼의 심리연극 ‘에쿠스’로 브로드웨이에 데뷔, 호평을 받았다. 지난 10년간 해리 포터로 성장한 래드클립은 마치 이 뮤지컬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해리 포터의 이미지를 떨쳐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너무 애를 써 측은해 보일 정도였는데 그 노력은 가상했지만 노래 솜씨와 얼굴 표정 그리고 대사 발성 등은 그저 무난한 정도였다.
그러나 춤 솜씨는 대단했다. 래드클립은 탭댄스와 볼룸댄스에 재주넘고 물구나
무까지 서면서 잽싸고 유연하게 춤을 춰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벌집 모양의 세트와 다채로운 의상도 좋았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다듬어지지 않은 음성이어서 듣기에 편하지 않았다.
래드클립은 공연 후의 인터뷰에서 이 뮤지컬을 위해 지난 3년간 노래와 춤 연습에 매달렸다면서 앞으로 다른 뮤지컬 특히 신작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수퍼스타 티를 안 내는 매우 겸손한 청년이다.
과연 그가 해리 포터로 성공한 아역배우의 이미지를 깨고 성인배우로서 앞으로 어떤 방향 전환을 해나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인터뷰 후 래드클립이 극장을 나서자 극장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던 그의 팬들이 일제히 아우성을 치면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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