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기 할리웃의 귀염둥이 수퍼스타 데비 레널즈(79)는 영화에서처럼 여전히 귀엽고 예쁘고 명랑했다. 그의 대표작 ‘빗속에 노래하며’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데비(사진)가 스크린 밖으로 걸어나와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난 잠시 망연자실해졌다.
지난 13일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동료들과 함께 베벌리힐스의 페일리센터에 전시된 데비가 그동안 수집한 영화의상과 소품 등 각종 컬렉션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 갔다.
난 데비를 보자마자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나는 한국서 온 H.J.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이에 데비는 “나 한국전 때 한국에 갔었지. 안 좋은 때였어”라며 반가워했다. 뮤지컬 코미디 배우인 데비는 그 때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들을 위한 공연 차 방한했었다.
이 날 페일리센터 방문은 데비의 소장품을 18일에 경매하기 전 우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뤄졌다. 총 5,000점의 컬렉션 중 먼저 600점을 처분한 뒤 오는 12월3일에 나머지를 경매한다. 총 예상 판매액은 400만~600만달러.
소장품은 의상이 주지만 그밖에 소품과 편지와 카메라 및 자동차까지 다양하다. 데비가 지난 1970년부터 수집해 지금까지 보관하고 관리해 온 소장품들을 팔기로 한 것은(이를 위해 지금까지 든 비용이 자그마치 수백만달러) 이들을 영구 보관하고 전시할 뮤지엄 설립이 불가능해졌기 때문. 우리들을 이끌고 소장품 하나하나를 설명하던 데비는 “모두가 내 아이들과 같아 이것들과 헤어지는 것이 정말 슬프다”며 목이 메었다.
소장품들은 할리웃의 화려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것들이다.
*마릴린 몬로의 백색 ‘서브웨이’ 드레스(7년만의 외출) *채플린의 트레이드마크인 모자 *율 브린너의 임금님 의상(왕과 나) *그레타 가르보의 짙은 녹색 벨벳 드레스(안나 카레니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이집트 여왕 머리장식(클레오파트라) *헵번의 우아하고 화사한 백색 드레스(마이 페어 레이디) *찰턴 헤스턴의 ‘벤-허’ 의상 *줄리 앤드루스의 서명이 적힌 기타와 드레스(사운드 오브 뮤직) *말론 브랜도의 나폴레옹 적색 가운(데지레) *주디 갈랜드의 드레스와 루비구두(오즈의 마법사) *잉그릿 버그만의 갑옷(잔다크) *마를렌 디트릭의 드레스(데스트리 라이즈 어겐) 등.
옅은 자줏빛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작고 아담한 데비는 마치 연기하고 춤추듯 두 손으로 제스처를 써가면서 소품들과 얽힌 에피소드를 청산유수 식으로 설명했는데 한 마디 한 마디 마다 소슬한 추억이 배어 있었다. 동그란 두 눈을 깜빡이면서 위트와 농담을 섞어가며 과거를 줄줄이 펼쳐 놓았는데 나이답지 않게 생기발랄하고 신선해 그의 자태에서 향내마저 나는 듯했다.
데비는 소품의 주인공들을 회상하면서 “클라크 게이블과 라나 터너, 케리 그랜트와 그레이스 켈리 그리고 프레드 애스테어 등이 모두 그립다”면서 적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금방 “요즘 배우로는 자니 뎁이 귀엽다”며 활짝 웃었다.
데비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어렸을 때 나온 ‘녹원의 천사’에서 입은 경마복에 대해 얘기할 때였다. 그는 얼마 전 작고한 “엘리자베스와는 좋은 친구였다”면서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그에게 내 남편을 줬으니까”라며 깔깔대고 웃었다. 데비의 남편으로 가수이자 배우였던 작고한 에디 피셔는 엘리자베스에게 반해 데비를 버려(그런데 셋은 친구였다) 당시 큰 화제가 됐었다.
데비는 이어 “난 아직도 피셔라는 성이 싫다”며 피셔에 대한 원망의 심정을 드러냈다. 내가 “정말로 아직도 피셔가 싫으냐”고 물었더니 데비는 단호히 “예스”라고 답했다.
데비가 소장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0년 재정난에 빠진 MGM이 소유한 의상과 소품들을 경매에 부치면서부터. 전성기 MGM의 전속 배우였던 데비는 MGM을 찾아가 내놓은 물건들을 몽땅 사겠다고 제의했으나 거절당해 일부만 샀다.
이어 폭스와 패라마운트가 경매한 의상과 소품들을 샀는데 폭스로부터는 이 회사 전속배우였던 몬로의 의상을 모두 다 샀다. 몬로가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와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입었던 의상도 이번에 경매된다.
데비는 “이것들과 헤어지기 싫으나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아들의 권유
로 자신이 주연한 뮤지컬 ‘언싱카블 말리 브라운’의 가운 하나만 빼고 모두 처분한다고 말했다. 데비는 이어 “이것들이 모두 함께 있어야 하는데 뿔뿔이 헤어지게 돼 가슴이 아프다”면서 “그렇지만 장래 소유주들이 잘 돌봐주겠지”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데비는 대화중에 자주 자신의 늙음과 죽음에 대해 내던지듯이 말했는데 그것들을 직접 거명함으로써 그에 대한 염려를 걷어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보고 즐기며 함께 자란 영화 속의 밝고 맑고 고운 데비의 피치 못할 죽음을 생각하자니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박흥진 편집위원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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