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시대서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단 한 번도 전쟁에서 쉰 적이 없다. 옛날에는 6.25사변이라 불린 ‘잊혀진 전쟁’인 한국전도 그 중 하나다. 오는 30일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6.25동란을 돌이켜 보니 감회가 크다.
전쟁이 터지면서 G.I.들이 한국에 도착, 남한은 G.I. 문화의 물결에 휩싸여 들었다. 그 때 우리가 배운 미국은 바로 이 G.I. 문화를 통해서였다. 당시 꼬마였던 나는 G.I.들이 던져 주는 초컬릿과 껌 그리고 노천 장바닥에서 파는 부대찌개를 만나처럼 즐겼고 미국 활동사진을 보면서 천국과도 같은 미국을 동경하게 됐었다.
내가 영화광이 돼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분명히 내 어린 시절의 이 같은 경험이 원인이 되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부산 피난시절 난 돌아가신 어머니의 피눈물 나는 사랑과 고생 덕분에 학교를 다니고 끼니를 굶진 않았지만 일부 내 또래 아이들은 G.I. 구두닦이와 미제 깡통을 든 거지로 살아야 했다.
이런 구두닦이 전쟁의 아이들에 관한 감동적인 영화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의 ‘구두닦이’(Shoeshine·사진)다. 종전 후 폐허가 된 길에서 G.I.의 구두를 닦아주면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의 척박한 삶을 다룬 현실과 똑같은 작품으로 최근 DVD로 나왔다.
당시 G.I. 문화가 남한 땅에 미친 영향은 한국사의 뚜렷한 한 장으로 남을 만한 지대한 것이었다. 그런 경우는 우리보다 먼저 G.I.를 맞이한 일본도 마찬가지.
일본의 한 작은 섬의 아이들이 처음에는 점령군인 G.I.들에 반감을 가지나 이들로부터 야구를 배우면서 불신과 적대감이 우정으로 변하는 과정을 아름답고 정겹게 그린 영화가 마사히로 시노다 감독의 ‘맥아더의 아이들’(MacArthur’s Children)이다. 일본 아이들이나 나나 모두 미국은 신천지였다.
할리웃이 한국전을 얘기한 영화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매우 사실적이요 극적으로 강력하고 또 치열하고 긴박감 있는 두 영화가 모두 샘 훌러가 감독한 ‘철모’(The Steel Helmets)와 ‘착검!’(Fixed Bayonets!)이다. 이와 함께 그레고리 펙이 소대장으로 나오는 실전실화 ‘포크 찹 힐’(Pork Chop Hill)과 앤소니 맨이 감독한 ‘전쟁의 남자들’(Men in War)도 뛰어난 한국전 영화다.
요즘에는 할리웃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들도 많고 또 가급적 사실에 충실하게 영화를 만들어 그런 경우가 많진 않으나 옛날에는 한국전 영화를 만들면서도 극중 한국 사람으로 일본인이나 중국인 심지어 피부색이 우리 보다 더 짙은 인도인을 쓰기도 했다.
한국전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린 미 공군 딘 헤스 대령(록 허드슨)의 실화를 다룬 ‘전송가’(Battle Hymn)에는 주연급인 한국 여자로 인도계 배우 애나 카쉬피(말론 브랜도의 전 부인)가 나왔다. 다행히 조연급인 한국 남자로는 도산의 아들 필립 안이 나오는데 할리웃의 한국계 배우의 효시인 필립은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 등 여러 아시안 역을 해냈다.
필립이 중국인으로 나오는 한국전 영화가 윌리엄 홀든과 제니퍼 존스가 나온 비련의 드라마 ‘모정’(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이다. 홀든은 한국전 종군기자로 나와 순직한다.
한국 풍경이나(LA에서 찍었으니) 사람을 제 멋대로 묘사해 한국인들을 열나게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 1972년부터 1983년까지 장수한 인기 TV 프로 ‘매쉬’(MASH)다. 한국전에 파견된 군 이동 외과병원의 얘기인데 엿장수 마음대로 한국을 묘사해 한국인들의 집단적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 제트 파일럿에 관한 영화로 볼만한 것이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윌리엄 홀든과 그레이스 켈리 주연의 ‘도곡리의 다리’(The Bridges at Toko Ri). 여기서 인민군으로 나온 국적불명의 엑스트라들이 이상한 액센트로 한국말을 한다.
이와 함께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왜그너가 나온 ‘헌터스’(The Hunters)도 괜찮은 제트 파일럿 영화다. 역시 미치너의 소설이 원작인 로맨스 영화 ‘사요나라‘에서 말론 브랜도도 한국전 참전 파일럿으로 나온다. 이들 파일롯들은 모두 일본에 주둔했다.
한국전의 영웅인 맥아더를 그린 영화로는 각기 그레고리 펙과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한 ‘맥아더’와 ‘인천’이 있다. 펙의 것이 월등한데 나는 통일교가 만든 ‘인천’(남궁원 공연)의 촬영을 위해 지난 1980년 방한한 올리비에를 김포공항에서 단독 인터뷰 했었다. 영화는 LA에서 봤다.
한국전을 그린 한국 영화로 내가 인상 깊게 본 것은 둘 다 이만희 감독이 만든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7인의 여포로’. 김기영 감독의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도 훌륭하다.
요즘도 매주 말 LA 타임스 부음면에는 아프간전서 사망한 젊은 군인들의 기사가 난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나 배울 것인가. When will they ever learn?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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