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교향악단의 ‘빅5’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지난 16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파산신청 챕터 11을 내기로 결정했다. 감소하는 청중과 기부금 그리고 이로 이한 재정적자 때문이다. 그러나 연주는 계속한다.
‘패뷸러스 필라델피언스’라 불리는 이 오케스트라의 파산신청은 현 미 교향악단이 겪고 있는 재정적 곤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기 불황과 청중의 감소로 미 교향악단들은 사방에서 파업을 하거나 폐업까지 하고 있다.
최근 디트로이트 심포니는 장장 반년 간의 파업을 끝냈고 루이빌 심포니는 지난해에 파산했다. 그리고 호놀룰루와 시라큐즈 심포니는 아예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파산신청이 남달리 충격적인 것은 창립한 지 1세기가 넘는 이 오케스트라가 미국은 물론이요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악단이라는 점 때문이다. 미국의 국보나 다름없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파산신청은 미 클래시컬 음악계의 쓰나미와도 같은 것으로 그 여파가 뉴욕과 LA를 비롯해 미 대도시의 오케스트라들에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필라델피아 사운드’로 잘 알려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1900년에 창립된 이래 지금까지 단 7명의 지휘자들이 이끌어왔다. 이 오케스트라의 일사 분란한 연주는 이런 안정된 지휘자와의 오랜 공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로 하여금 음악적 탁월성을 배양시켜 미 클래시컬 음악계에 명함을 내밀게 한 사람이 화려한 스타일의 맨손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우스키다. 그는 지난 1912년부터 1938년까지 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창조해 낸 사람이다.
스토코우스키가 신생아나 다름없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과 기량을 닦아 성숙된 앙상블로 키워 놓은 지휘자라면 이런 소질을 더욱 넓히고 세련미로 가꾸어 현재 이 교향악단이 갖고 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성과 음악적 소리를 마련해 준 지휘자는 유진 오르만디다.
헝가리 태생으로 스토코우스키의 대를 이어 1938년부터 1980년까지 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오르만디는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정련시켜 거기에 품위를 갖춰 준 사람이다.
‘필라델피아 사운드’는 맑은 음과 뛰어난 기교 그리고 따뜻한 음조와 정확한 타이밍이 결합된 연주를 일컫는데 특히 현악기 부분에 강조를 두고 있다. 오르만디가 바이얼리니스트 출신이었기 때문인데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필라델피아 사운드는 바로 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8년 전에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제6대 지휘자인 볼프강 자발리쉬의 지휘로 슈만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들은 적이 있다. 윤기 나는 ‘필라델피아 사운드’가 황금빛 물결을 이루며 나의 가슴에 아름다운 파랑을 일으켰던 기억이 난다.
오르만디에 이어 리카르도 무티(현 시카고 심포니 상임지휘자)와 자발리쉬 그리고 크리스토프 에센바하로 바톤이 이어졌고 현재는 샤를르 뒤트와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그런데 뒤트와는 상임지휘자가 아닌 수석지휘자로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문제는 재정적인 것 외에도 상임지휘자와 최고 경영자의 부재 등 리더십 결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다행히 2012~2013년도 시즌부터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야닉 네제-세깅이 상임지휘자의 바톤을 이어 받는데 이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매스터는 한국계인 데이빗 김이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파산신청에 반대를 하고 있다. 이들은 파산신청은 교향악단의 질과 명성을 해칠 뿐 아니라 기부자들과 함께 뛰어난 연주자들이 악단을 외면하는 구실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지난 16일 파산신청 결정 직후 오케스트라의 공식 연주장인 킴멜센터에서 말러의 제4번 교향곡을 연주했다(사진). 이를 취재한 뉴욕타임스는 청중들에게 배부한 프로그램 속에 “당신들이 우리를 염려하신다면 지금 우리 오케스트라를 버리지 말고 포옹해 주십시오”라면서 기부와 함께 표를 사 줄 것을 호소하는 전단이 삽입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비하면 앤젤리노들은 복 받은 편이다.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LA필은 매 콘서트 때마다 많은 청중들이 참석한다고 리사 화이트 LA필 홍보담당자가 E-메일을 보내 왔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오는 하반기부터 챕터 11에서 빠져 나올 예정. 예정이 현실이 되어 ‘필라델피아 사운드’의 전통을 지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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