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은 예수의 부활을 기리는 부활절이다. 그의 근본 가르침은 사랑과 용서인 반면 구약은 보복과 살육과 피의 역사라고 해도 되겠다. 나는 요즘 구약을 읽고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적의 온 가족과 그들의 가축까지 살육하는 내용이 종종 나온다.
성경 특히 구약은 드러매틱한 얘기로 가득하다. 기적과 스펙터클이 일어나고 형
제 살인과 간통과 전쟁 그리고 부자 갈등과 욕정과 탐욕 및 질투와 음모와 배신 등 흥미진진한 극의 온갖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성경은 무성영화 때부터 지금까지 할리웃의 좋은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성경영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세실 B. 드밀이 감독한 ‘삼손과 델릴라’다. 나의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이다. 내가 중학생 때 나와 함께 이 영화를 본 어머니는 삼손으로 나온 근육질의 빅터 마추어에게 반해 그 뒤로 내게 “야, 그 삼손이로 나온 배우의 이름이 무어냐”고 묻곤 하셨다.
역시 성경영화라고 할 수 있는 ‘쿼바디스’도 어머니와 함께 국도극장에서 봤는데 눈물을 질질 짜던 비겁자 네로 역의 피터 유스티노프의 연기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창세기를 다룬 ‘바이블’은 광화문에 있던 시네마 코리아에서 봤는데 크게 실망했었다. 존 휴스턴이 감독하면서 노아로 나오고 에이바 가드너, 조지 C. 스캇, 피터 오툴 및 리처드 해리스 등 올스타 캐스트인데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에 비하면 ‘소돔과 고모라’는 훨씬 재미있는데 이 영화를 비롯해 그레고리 펙과 수전 헤이워드가 공연한 ‘다윗과 바스세바’와 ‘룻의 이야기’ 및 볼륨 있는 육체미가 농염한 라나 터나가 나온 ‘돌아온 탕자’ 등 대부분의 성경영화들은 외화내빈인 편이다.
또 다른 이런 영화들로 ‘팜므파탈’ 리타 헤이워드가 눈알이 돌아가게끔 선정적인 ‘7색 베일의 춤’을 추는 ‘살로메’(‘살로메’는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도 있는데 ‘7색 베일의 춤’의 음악이 관능적이다)와 율 브린너(미남 타이론 파워가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바람에 교체됐다)와 육체파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나온 ‘솔로몬과 시바’ 그리고 미스터 유니버스 스티브 리브스가 주연한 ‘폼페이 최후의 날’ 및 베드로 얘기 ‘위대한 어부’와 폴 뉴만의 데뷔작 ‘은배’ 등이 있다.
이들에 비하면 리처드 버튼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백부장으로 나온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성의’는 A급이다. 여기서 버튼의 노예로 나온 빅터 마추어를 주연으로 만든 속편 ‘데미트리어스와 검투사들’은 액션이 볼만하다.
성경영화의 제1인자는 드밀이다. 그는 무성영화(‘십계’ ‘왕중 왕’)로부터 시작해 ‘십자가의 징표’ ‘삼손과 델릴라’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십계’를 만들었는데 찰턴 헤스턴이 모세로 나온 ‘십계’는 쇼맨 드밀의 쇼맨십이 절정을 이룬 영화다. 드밀의 성경영화는 성적으로 야한 것이 특징으로 그는 이것을 상품판매용으로 썼다.
성경영화의 금자탑은 ‘벤-허’인데 찰턴 헤스턴이 벤-허로 나온 것과 라몬 나바로가 주연한 동명의 걸작 무성영화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예수를 모델로 한 영화는 부지기수다. 그 중 대중에게 잘 알려진 클래식이 ‘말리부 예수‘라 불린 제프리 헌터와 스웨던 배우 맥스 본 시도가 각기 예수로 나온 ‘왕중 왕’과 ‘가장 위대한 이야기’.
윌렘 다포가 예수로 나와 막달라 마리아와 동침해 기독교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마틴 스코르세지 감독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은 예수의 신과 인간으로서의 이중적 신원을 고찰한 작품. 장-뤽 고다르의 ‘헤일 메리’에서는 주유소 종업원 마리아가 택시 운전사 애인 요셉의 아이를 임신, 교황의 비난까지 받았다.
예수의 입장을 바라바의 눈으로 본 영화가 앤소니 퀸이 주연한 ‘바라바스’다. 내 중고교 친구인 황석영은 중학생 때 예수의 얘기를 유다편을 들어 쓴 ‘부활 이전’으로 교내 문예대회에서 1등을 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권하는 예수 영화가 타살된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마태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1966·사진)이다. 비배우들을 쓴 검소하고 엄격하며 또 표현력 강한 마치 성경을 그대로 화면에 떠다 담은 듯한 흑백명화다.
요즘 기독교계에서는 돈 선거를 하는 한국의 한기총이 화제가 되고 있다. 내가 나가는 동부장로교회의 초보수적인 이용규 목사님의 말처럼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다. 이처럼 빗나간 성직자의 얘기로 화끈하게 재미있는 것이 버트 랭카스터가 달변과 교언을 쓰는 가짜 전도사로 나와 오스카상을 탄 ‘엘머 갠트리’다. 예수의 가르침을 잊은 마음은 성전에 있지 않고 콩밭에 가 있는 거짓 목자들이 보고 회개할 교본이 될 만한 영화다.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은 부활절에 들을 만한 장엄한 곡이다.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음악으로 듣고 있으면 앉아서 승천하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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