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의 2막짜리 오페라 부파 ‘이탈리아의 터키인’(A Turk in Italy·1814)은 마치 슬랩스틱이나 보드빌처럼 경쾌하고 어리석고 속도 빠르며 또 위트와 익살이 넘치는 난장판이었다. 마치 하워드 혹스의 매드캡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시종일관 즐기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이탈리아의 터키인’은 “보고 죽으라”는 나폴리를 무대로 어리석은 남편과 변덕스런 아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랑과 부정과 신원오인 그리고 궁극적인 용서와 화해를 그린 일종의 풍습 코미디이자 성적 도덕불감증(특히 여자)에 대한 풍자극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로시니가 바로 전 해에 작곡한 오페라로 섹스의 자유를 추구하는 여주인공이 나오는 또 다른 오페라 부파 ‘알제이의 이탈리아 여인’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제목도 헛갈린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터키인’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로 역시 변덕스런 여자가 나오는 ‘코지 판 투테’도 많이 닮았을 뿐 아니라 터키인이 나오고 사랑의 도주가 있다는 점에서 모차르트의 또 다른 희가극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도 연상케 한다. 오페라 부파의 내용은 이렇게 서로 비슷하다.
함부르크 스테이트 오페라의 현대판을 LA 오페라가 수입해 공연하는데 음악과 내용이 혼연일치가 된 흥겹고 경쾌하고 활기차며 매우 재치 있는 연출이다. 로시니의 음악이야 다 즐겁지만 특히 이 오페라의 음악과 노래는 금방 휘파람으로 따라 부를수라도 있을 것처럼 멜로디가 곱고 서정적이며 또 엉덩이가 들썩거려질 정도로 신이 난다.
처음 듣는데도 금방 친숙해질 수 있는 음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으로 제임스 콘론의 바톤 아래 LA 오페라 오케스트라도 쾌속으로 에너지 가득한 연주를 했다.
오페라는 일종의 해설자로 새 작품을 구상 중인 시인(바리톤 토마스 앨런)에 의해 얘기가 진행된다. 시인은 말하자면 1인 그릭 코러스로 극중 인물들의 행동거지를 관찰하고 설명하고 기록하고 또 드라마에 직접 참가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부상의 정도가 심해져 폭소를 자아낸다. 앨런의 노래가 폭과 깊이가 넉넉하다.
주인공들은 터키의 왕자 셀림(베이스-바리톤 시모네 알베르기니·사진 왼쪽)과 그의 애인으로 오해를 받아 이탈리아로 도주, 집시들 틈에서 점쟁이로 사는 자이다(소프라노 케이트 린지). 그리고 돈 많고 어리석지만 착한 나이 먹은 돈 제로니오(바리톤 파올로 가바넬리)와 그의 변덕스럽고 성적으로 자유방한 젊은 요부형 아내 피오릴라(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사진 오른쪽). 여기에 피오릴라의 청바지 입은 젊은 정부로 겉멋이 잔뜩 든 돈 나르시소(테너 막심 미로노프)가 끼어든다.
셀림이 매직카펫을 타고 나폴리에 놀러오면서 그를 둘러싸고 자이다와 돈 많고 늠름한 셀림의 이국적 매력에 끌린 바람둥이 피오릴라가 맹렬한 사랑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 삼각관계 때문에 속을 썩이는 것은 물론 돈 제로니오로 그는 터키인을 저주하는데(인종문제의 거론) 날건달 돈 나르시소 역시 속상하기는 마찬가지.
이들이 감나무에 연줄 감기듯 서로 얽혀들면서 신원오해의 포복절도할 일들이 벌어지는데 사랑 때문에 남자들은 박싱 쇼츠를 입고 권투결투를 하고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육박전을 벌인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단연 피오릴라. 피오릴라는 섹스의 파워를 십분 파악해 그 것을 무기로 남자를 사로잡고 또 자신의 위치를 뚜렷이 부각시키는 섹스폭탄이자 시대를 앞서 가는 여자다. 그런데 피오릴라는 구두가 이멜다 마르코스만큼이나 많다.
마차이제가 정열과 힘 그리고 섬세성과 감미로움을 잘 조화시켜 열창하는데 그는 노래뿐 아니라 몸을 이리저리 배배 꼬면서 교태부리는 연기도 아주 잘 한다. 코미디 배우 해도 크게 성공 하겠다.
모두 노래를 잘 불렀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미로노프. 달콤하고 아름다운 벨칸토 창법이 질리와 뵤를링의 노래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 오페라는 앙상블 오페라로 유난히 다중창과 합창이 많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노래가 오버랩 되는 것도 슬랩스틱 닮았다.
클라이맥스는 가면무도회에서 일어나는 신원오인 해프닝. 3명의 셀림과 2명의 피오릴라가 나와 서로 누가 누구인지를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흥분한 음악에 맞춰 코믹한 연기와 함께 제 각각 사정 얘기를 하느라 난리법석을 떨어댄다.
간단하면서도 할 것 다하는 세트와 의상도 좋은데 나폴리 해변을 수영복 차림의 늘씬한 선남선녀들이 슬로모션으로 걷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해주는 재미 만점의 오페라로 “관객도 나처럼 만족하길 바란다”는 시인의 소망이 이뤄진 셈이다. “브라비 투티!”
오는 3월13일까지 LA 다운타운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된다.
(213)972-8001
박흥률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